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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니 Jul 11. 2024

토하다

브런치북 <지구는 아파도 다시 사랑하는 걸> 연재 뒷 이야기_1화








또 시작되었다.

잠을 청했고 잠이 들었다. 하지만 비슷한 시간에 정신이 깨어나 버렸다. 비슷한 증상이 3일 밤 계속되었다. 증상을 뚜렷이 감지한 첫날 밤에는 '왜 이러지?'라는 의문만 가졌다. 잠을 자야 한다는 일념 하나에 남은 의지를 모았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왔다. 어김없이 5시 조금 넘어서 일어났다. 화요일 아침이었다. 더 상세하게 표현자면 일요일 밤과 월요일 새벽 사이 시간도 마찬가지였다. 깊이 잠들지 못했다. 일요일 저녁 식사를 통해 '밀려둔 욕구'를 거하게 풀었다.


혼자 살다 보니 마음이 통하는 대화가 그립다. 

가족들과 함께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이긴 하더라. 맞다. 사람은 언제나 마음이 통하는 관계가 그리운 존재다. 마음을 함께 나누는 공동의 '무엇'을 하면서, 우리는 함께 살 새로운 힘, 용기와 의미를 발견하는 존재다. '무엇'에는 함께 나누는 티타임, 함께 하되 각 자의 독서나 컴퓨터 작업 등의 각 자의 일, 같이 정하여 읽은 책 나눔, 함께 마시는 와인과 그로 인한 여러 빛깔의 대화 시간, 함께 등산, 함께 꽃꽂이, 함께 악기 연주나 노래 부르기, 침묵을 할지언정 좋은 마음으로 함께 같은 공간에 편안히 머무르는 것, 그 어떤 것이든 굉장히 많다. 그렇게 할 게 많아지는 관계가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의 관계다. 이 관계는 단 둘이어도 좋고 3 명도, 그 이상 많아도 좋다. 서로서로를 향한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만 있으면 된다. 그 마음과 마음 위에 서로의 작은 배려가 덧 입혀지면 그만이다. 관계의 규모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렇다.

우리는 마음을 나누어야 살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때, 존재 자체에 대한 순수한 가치를 스스로 믿게 된다.



그 가치는 독보적인데 그 믿음이 자주 시험당한다. 인류는 그런 연약함을 가졌다.


일요일 밤에 우리는 함께 마음을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가족과 함께 살지만 가족보다 나와 마음이 더 잘 통해 보이는 친구님과 만났다. 여기서 친구는 한국적 정의는 아니다. 한국은 친구를 유교적 관점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태어난 년도로 나누어서 친구라는 테두리로 설정한다. 사회적 테두리가 '나이'나 태어난 시기로 결정되어 가는 면이 다소 있다. 하지만 나는 서양적인 관점의 '친구'개념을 좋아한다. 한글로 쓰고 있지만 나의 글에서 '친구'개념은 태생의 숫자 의미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마음의 거리다. 영어권에서 친구 관계는 10대 아이와 70대 할아버지 사이에서도 가능하다. Buddy라는 단어가 그렇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는 물론이다. 여기 나의 글에서 친구는 버디 개념이다. 일요일 저녁 식탁을 함께 나눈 버디의 별명은 '코트니'다. 책 모임에서 만났고 이렇게 마음이 잘 통하는 친구일 거라 코트니도 나도 기대하지 않았다. 우리는 책 모임에서 서로의 별명을 부른다. 코트니~! 허니~!  


코트니는 신랑님 한 분과 두 명의 성인 아드님과 함께 행복하게 산다. 행복하게 사는 것은 나의 관점일 뿐이다. 코트니의 관점은 코트니의 고백을 듣다 보면 생각해 볼 여지가 생긴다.


"세 분의 남성과 나는 너무 달라요.

요즘 나의 크지만 작은 소망은 '세컨 하우스'같은 '나만의 공간'에서 분리해서 사는 거에요. 그들도 그들만의 삶의 방식을 원하잖아요. 나 또한 내가 원하는 일과 방식에만 집중하고 싶어요. 그러자니 공간부터 분리하고 싶은 거죠. 연예인 *** 가 세컨 하우스를 지어 살더라구요. 그분은 자기 거주하는 집에서도 혼자 살아서 특별히 세컨 하우스가 필요한 상황은 아니겠지만 말야. 좋아 보였어요. 서로의 영역에 서로 간섭을 줄이는 가장 좋은 해결책이라는 생각이 들고, 막 꿈꾸게 돼요."


"좋은 아이디어예요. 너무 좋은 데요. 간섭을 원하지 않는 세 남성들도 본인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살라구 하구요. 코트니 님도 남은 삶은 코트니 님이 좋아하는 것에만 시간을 쏟는 거죠. 그리고 서로 잘 살고 있는 확인은 종종 할 수 있는 거리에 지어질 세컨 하우스 너무 멋있어요. 꼭 이루실 거예요. 꿈꾸면 이뤄지잖아요."


이런 우리가 만나면 '마음이 통하는 존재에 대한 그리움'이 채워진다. 

서로의 마음의 빈 그릇이 채워지는 통하는 대화, 주고 받는 서글한 눈빛과 경청을 통해 차고 넘친다. 신이 나서 웃고 떠들고 소곤거리다 보면 시간이 흐르는 속도조차 가늠하기 어렵다. 다행이다. 어떤 일부 남성분들처럼 '바'에 가서 가치를 지불하고 이런 비슷한 애정을 사서 누리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그분들을 옹호하거나 비난하려는 마음 어떤 쪽에 기울어진 의견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생각이 불쑥 떠올랐다.


다만 안쓰러운 마음으로 말이다.

남성분들끼리도 격 없이, 틀 없이 이런 관계를 쉽게 만들어 갈 수 있는 서울과 한국이 되어가길 바란다. 혹은 부부와 연인 관계에서도 말이다. 더불어, 좋은 부부모임을 통해서 이런 문화가 번성하길 바란다.

  



https://brunch.co.kr/brunchbook/earth-loves


코트니와 잘 통하는 게 '대화'말고 몇 가지 더 있다.

신난다. 좋아하는 음식이 딱딱 맞는다. 음식 주문할 때 서로 고민따위는 필요없다. 둘 다를 온전히 만족시켜 주는 음식만 주문할 수 있다. 일요일 저녁 식사 테이블에서 '부라타치즈 샐러드'와 '토마토버터 링귀니 해물 파스타' 2가지 요리를 주문했다. 대만족! 그 다음에 추가 1 접시 더. 구수한 맛에 곡물 빵이 먹음직스럽게 구워져서 버터와 함께 나왔다. 대화는 계속되고 흐름을 느낄 수 없는 시간도 계속 흘렀다. 맛이 좋으니까 기분은 더 좋아져서 주문탭을 다시 두드렸다. 화이트 와인 한 잔 골랐고 내 장단에 코트니도 생각난 맛을 선택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 각자 마시고 싶은 음료를 주문했다. 건너편 테이블에 신메뉴인지, 못 보던 접시 하나가 눈에 갑자기 들어왔다. 한 접시 더 추가했다. 초당옥수수로 만든 스몰 디쉬였지만 막상 작은 느낌이 아니었다. 둘 다 옥수수는 먹는 게 귀찮아서 평상시에 잘 안 먹게 된다는 말까지 공감이었다. 또 꺄르르 웃음이 나왔다. 귀찮다던 우리는 귀찮은 그 대상이 만들어낼 그 '맛'이 너무 궁금해서 함께 기다렸다. 버터를 바른 게 분명한 옥수수가 잘 요리되어졌다. 근사한 모양으로 나온 접시의 옥수수들은 귀찮은 존재에서 맛있는 예술품으로 등장해 주었다. 한 입 깨물자 두 사람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 흘렀다. 버터처럼 부드럽게 목소리도 바뀌었다.


"맛있다."

"호호 맛있어요. 초당 옥수수는 원래 맛있는데..."

"저는 옥수수 귀찮아서 안 먹거든요. 근데 요건 맛있어요. 그래서 먹어 본 옥수수 중 제일 맛있는 걸로."


이러다 보면 또 대화가 한없이 흐른다.

대화가 흐르는 사이 우리의 묶인 감정도 풀린다. 각 자의 삶의 공간에서 조금 빡빡하게 바라보던 '시선'이 여유롭게 바뀐다. 타이트하게 관리하던 일주일간의 삶의 스케줄에 긴장을 풀고 조금 넉넉해진 관점으로 바라보는 마음도 열린다.





그러다 보면 옹졸하게 생각했던 일에 다른 관점이 열리고 이기심인 줄 모르고 나만 옳다 했던 방식에 타인의 다름을 받아들일 여유로운 공백이 생긴다.


식사가 마쳐질 때 코트니도 나도 인지한다.

평상시 식사량에 비해 많은 양을 먹었다. 계산을 하고 돌아가는 발걸음에 인지한 사실로 인한 후회는 전혀 없다. 집에 가서 잘 자면 하루 정말 행복하게 마무리하는 것어었다. 걱정은 없다.






그런 상태로 집에 들어와 쉬다가 고이 잠들었어야 했다.

혼자라는 조건이 성립되면 다시 '혼자'가 집중하고 있는 '일 목록'에 생각이 집중된다. <브런치 작가로서 연재할 브런치 책> 잘 써보기가 지난 몇 주간, 나의 일상 우선순위 넘버 3중 하나였다. 좋은 글 잘 쓰려면? 안 보던 드라마도 보고 필사도 하고. 또 등등? 선택한 드라마는 명대사들이 많아 작가의 필력이 드러나는 드라마였다. 학습자 마음으로 보자니 작가들이 존경스럽다. 그 드라마 다시 본다며 평상시 취침 시간을 넘기는 줄도 몰랐다. 좋은 문장과 서체를 찾아 이런저런 정보와 책들도 면밀히 읽었다. 이미 위대한 작가님들로 보이는 다른 작가님들의 브런치 글도 읽는다. 비교안할 래도 작가로서 내 존재 의미가 미천해지는 그런 글들이 수두룩하다.


결국, 밤 10시면 수면제 먹은 사람처럼 졸려서 잠드는 내가 자정을 넘겼다.

부자가 되고 싶어서 노력하는 습관 하나가 있다. 잠들기 전에 '행복하고 기쁜 생각'을 하라는 '부자에 관한 자기계발 리더분'의 권면이 있었다. 여러 해 꿈속에서 힘든 시간을 보낸 나에게 더없이 좋은 치료 방법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노력 중인데 <브런치 작가>로서 <글에 대한 야망>이 생기다 보니 10일 넘게 이 연습을 못하고 있다. 매일 밤 취침 시간을 어기면서 12시 넘어서 잠들었다. 일요일도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2-3번 깼다.


일요일 밤의 초조함은 월요일 아침 달리기와 그다음 갖은 휴식 시간으로 잘 메꾸었다.

에너지가 다시 좋아졌다. 월요일 밤도 화요일 밤도 비슷한 활동과 많은 생각을 하면서 자정 근처까지 깨어 있던지 자정 넘어서 잠들었다. 항상 밤 10시와 10시 30분 사이에 잠드는 습관을 위해 노력해 왔기에 9시만 넘어도 하품이 나오는 나였다. 이상했다. 10시가 넘었는데 하품은커녕 눈이 말똥 말똥했다.





그렇게 잠든 밤마다 새벽에 깨었다.

위에 뭔가 묵직한 게 들어가서 소화가 여전히 안 된 느낌이었다. 평일 나의 식사 습관은 대개 오후 4시 30분에서 5시까지다. 그 이후로 물이나 탄산수 외에 먹거나 마지지 않는다. 저녁에 먹는 음식은 최근 애정하는 샐러드 레스토랑, '파지티브호텔'의 '샐러드 한 그릇'과 밀가루 중독자로서 언제나 오후 시간되면 땡기는 빵 한 두 개다. 소금빵 종류다. 그럼에도 스트레스가 도파민을 더 원하면? HBAF 에서 판매하는 '와사비 아몬드' 작은 한 봉지를 뜯어 그 자리에서 다 먹는다. 식감도 좋지만 와사비 맛이 아주 좋다. 많이 섭취한 것이겠지? 그렇다 해도 이미 오후 5시는 한 참 지난 시간이었다. 자정과 새벽 2시 사이니까.


그 불편하면서도 불쾌한 반응과 느낌이 '장'이 아닌 '위'에서 부터 오는 것 같았다.

화요일 밤에는 메슥거운 느낌까지 들었다. 토할 거 같았다. 모르는 채 하면서 계속 '잠'이라는 목적에 집중했다. 화요일까지는 집중하려는 의지가 통해서 별 일없이 아침을 맞이했다. 맞이한 아침마다 자동적으로 하던 일을 했다. 트레이닝 복을 입고 밖으로 나가 달린다. 달리고 나면 당연 허기감을 느낀다. 허기감에 맞춰 그날 먹고 싶은 대로 아침을 먹는다. 그리고 다음 할 일을 계속해 나간다.


글에 관한 일을 계획하자 잠들기 전에 특히 더욱 고민되었다.

잠든 중에 계속된 모양이다. 과학자들의 뇌 기능 설명에 의하면 발생 가능한 일이다.

'잘할 수 있겠어?'

'너 진심으로 너의 과거와 가족들의 얘기에 대해 위로나 감동을 담을 수 있겠어?'

'너 매주 연재할 수 있겠어?'

'아니 그걸 왜 쓰려고 해?'

'꼭 써야지 완전한 치유가 일어나냐고?'

'이미 많이 치유되었어.'

'네 가족 얘기잖아.'

'브런치 여기에 담긴 사연들 너보다 힘든 사람들 많아. 굳이 명함 내밀 이유 있어?'

'부끄러울 거야. 끝까지 못할 수도 있어.'

'네 이름으로 책 갖고 싶다더니 결국 이 이야기야?'

'가족이잖아.'

'차라리 소설로 써.'

'너 성공하고 싶잖아. 미래지향적으로 살아야지. 과거는 왜 돌아보려고 그래?'


이렇게 고민할 일인가?

무슨 일을 시작하던지 나는 항상 야망가로서 시작하는 성향이 있다. 이것조차 본성이 일부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형성된 교육관이 일부 원인이다. <브런치 작가>로서의 일도 있지만 <자영업자>로서의 일도 고민할 꺼리가 크게 와닿았던 게다.


어젯밤은 수요일 밤과 목요일 새벽을 통과하는 시간들이다.

취침 시간은 의지적으로 10시30분으로 앞당겼다. 끝내 12시 자정이 지나자 저절로 눈이 떠졌다. 속이 너무 메스꺼웠다. 그 느낌이 불안감도 동반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엎드려 기도하는 자세도 취했다가 이 메슥거리는 기운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마음의 소리도 잠잠히 기다려줬다.


그 순간, 화장실로 뛰어가다시피 급하게 몸을 움직였다.

메스꺼움을 해결하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 '토일렛'쪽으로 허리를 구부리고 얼굴을 내밀었다. 몇 분이 지났다. 저녁에 식사로 먹은 '미트파이', '디카페인 크림라떼', 주인장의 친절함으로 선물 받은 '에그타르트'의 목록도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거울을 봤다.


'신기해. 이런 상황에는 '두 눈'에서도 무언가가 같이 흘러 나오잖아.'


눈물을 닦았다.

표정은 덤덤했다. 다음 할 일을 알지만 일단 밖으로 나와 몇 숨 돌렸다. 전화기를 들어서 '위 암 초기 증상'을 이리저리 찾아 읽거나 영상으로 확인했다. 대응 방식도 확인했다.



https://brunch.co.kr/@honey5ria/68




'아니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 많아.'



그제야 칫솔질을 했다. 개운했다. 다시 누웠다. 일단 자야지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든, 연재하겠다던 '털어놓기'프로젝트 <지구는 아파도 다시 사랑하는 걸> 1화를 연재하던 할 테니까.


이게 이럴 일이구나.

예민한 사람 '허니' 맞는 모양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약속한 달리기를 위해 약속 장소에 갔다. 코트니와 달리기 하면서 지난밤 있었던 상황을 솔직히 나눴다. 코트니의 개인 경험담을 듣는 것만으로 '위암'에 대한 걱정은 눈 녹듯 사라졌다. 예민한 사람들의 특징이라는 생각으로 전환되었다. '암'이라도 해도 실상 '암'을 위한 완벽한 치료법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가장 좋은 치료는 '야채 위주의 좋은 식습관'으로 '몸'이 기뻐하는 일상을 사는 것이다. 마음도 편하게 갖고 사랑도 잘하고 말이다. 특히 '위'는 우리의 습관에 따라 '반응'을 빠르게 변화시키는 기관이다. 이건 코트니의 지식이었다. 좋은 습관만 가져도 빠르게 좋아지고 나쁜 습관을 가지면 빠르게 나빠질 수 있는 게 '위'란다. 변화가 다이나믹하다는 의견이 희망도 빠르게 주었다.



'좋아 습관 교정하지 뭐.'



브런치 작가나 자영업자로서의 성취 목표가 건강보다 중요한가?

아니라는 건 알지만 뭘 하려 들면 스트레스받고 은연중에 몰입해 가는 본성을 완전히 바꾸기에는 내 자신의 능력은 역부족이다. 알지만 진정으로 중요한 '나 자신의 생명과 건강'을 위해서는 노력할 이유는 충분하다.


개선을 위한 선택들_

1. 이미 자영업자로 성공했다고 믿는다.

2. 이미 성공하고 인기있는 브런치 작가가 되어 책도 출판했다고 믿는다.

3. 연재하려는 그 주제를 통해 좋은 글, 위로되는 글, 사랑이 오고 가는 글이 완성되었다고 믿는다.

4. <지구는 아파도 다시 사랑하는 걸>이라는 기획은 후회 천만이 아니라,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믿는다.

5. 야채 위주의 좋은 식습관, 더 쉽게 즐겁게 완벽하게 내 생활이 되었다고 믿는다.

6. 아플 때 함께 위로하고 공감하고 힘주는 친구들도 더불어 바라던 메이트도 함께 하고 있다고 믿는다.


지금 나의 선택들이다.

나는 맘에 든다.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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