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꼭 씹어 읽기 _ 0071724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사 온 첫날 밤, 살 집에 들어섰습니다.
지어진 지 1년이 안 되는 공간이었습니다.
청소 업체의 말끔한 일 솜씨 덕분이겠죠.
마치 한 번도 손대지 않은 아껴둔 그릇을 촥촥 쏟아지는 물로 한 번 씻고 처음으로 사용하는 기분이었습니다.
뽀드득 소리가 날 것 같은 창틀, 화장실 도구들, 조명, 블라인드를 만졌습니다.
'이사 온 거 맞네!'
신도시 시가지만 걸어도 새로운 기대감이 일어났습니다.
아침 9시에 마시는 '첫 커피의 크레마'를 30초 즈음 바라본 마음 기억하시나요?
익숙하지만 크레마는 우리에게 그날의 신선한 위로와 안식을 깊게 담아줍니다.
기대감입니다. 당신을 기대합니다. 저를 기대합니다.
우리의 하루를.
집에서 3분이면 잘 정돈된 공원에 속할 수 있습니다.
자유와 기쁨을 한껏 들이마실 수 있는 정원인 셈이죠.
설레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공원에서 1시간 정도 달렸습니다.
이사 오기 전 날 아침, 한강을 달리던 습관처럼요.
서울에서든 신도시에서든, 여행지가 어디든 달립니다.
달리기만 할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마음이 듭니다.
그 마음을 붙잡기 위해 달립니다.
간판을 걸고 학원을 열었습니다.
한 번 문을 열고 나면 문을 여는 일은 반복 재생하는 일이 됩니다.
몇 해도 아니고 며칠 반복했을 뿐인데, 구름 위를 걷는 날의 설레는 마음은 닫아야 했습니다.
동업자 남동생 '한책임'씨(저자 허니가 지어준 별명이자 페르소나입니다)는 이런저런 서류마다 저와 함께 대표 이름에 사인을 요구했습니다. 서류 작업이 일단락 지었습니다. '잡아놓은 대표 동업자였을까요?' 책임씨의 언행은 가끔 돌변했습니다. 야구하자며 동업한 게 아닌데 전문 투수처럼 변화구가 장난 아닌 수준이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변화구와 돌직구에 대한 저의 반응도 진지해졌습니다. 서로 많이 싸우고 언성도 높아졌습니다. 싸우면서 자란 남매답게, 다 성장한 나이라 어른답게 이제는 사업자라는 명함을 걸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개원한 학원에 영어 과목 원생은 1명.
다름 아닌 한 책임씨의 친 자녀 '한자스민'이었습니다.
3개월 정도 해가 뜨면 학원 문도 오픈했습니다.
변화는 없었습니다. 학생 자스민 1명과 영어쌤 허니와의 단독 수업을 어김없이 지속했습니다.
정부 방침이 강력해졌고 다른 수많은 학생들은 기존에 다니던 학원도 멈추고 쉬어야 했으니까요.
그때 제가 학원을 견뎌낸 이유는?
책임감만 강하고 대화가 전혀 안 통하는 '저 인간, 한 책임씨'를 이기리라는 불타는 복수심이었습니다.
'내가 아빠 살아오신 인생 생각하며 사업은 망설였는데 말야.
너랑은 성격 차이가 심해서 안 한다 안 한다 했고 말야.
어쩌다 저 괘씸한 동생 말에 홀라당 넘어가서 말야.
일단 발은 들여놨다.
네 덕에, 그런데 너 지금? 와~ 나 ~
허나, 내가 시작한 이상 너는 이기고 만다.
너보다 몇 배 큰 성공을 할 때까지 절대 그만둔다는 소리는 안 한다.
(물론 그 뒤로 이 다짐은 지키지 못했죠. 주로 엄마와 친한 친구 2-3명 정도에게는요. 하하. 멋쩍어라!)
그때 멋있게 용서는 해주마. 와 진짜~ 저 쉐리~'
1년이 지나고 코로나도 잠잠해졌습니다.
학원생도 몇 배 성장했습니다.
시작이 1명이었으니 성장 속도는 꽤 좋았습니다.
1명만 더 들어와도 100% 성장이니까요.
'한괘씸'씨와는 싸움을 계기로 그동안 서로 미뤄 둔 '대화의 장'을 열띠게 열었습니다.
한책임씨의 속마음이 읽어졌습니다.
'누나 나 너무 아프고 힘들어. 인생이 이렇게 힘든 건지 몰랐어. 토끼 같은 아내도 좋은 사람 맞아. 그런데 쉽지 않아. 첫 째 낳고 얼마나 내가 많이 웃었는지 알지? 자스민만 보면 너무 행복해했잖아. '딸바보'가 나였고 말야. 둘째는 또 얼마나 귀엽고 애교가 많아. 이렇게 예쁘고 사랑스러운 가족들을 위해서 더 열심히 살았어. 최선을 다했지. 그런데 나의 열심 때문에 가족은 불만이야. 같이 놀 시간이 없다는 거지. 누나도 알다시피 아내와 나, 둘 다 가진 거 없이 출발했잖아. 아이 둘 키우면서 사업을 유지하는 게 이렇게 어려운지 알았다면? 누나처럼 혼자 살걸 그랬어. 어디 어촌이나 내려가서 낚시나 하고 싶어. 마음 편히 살고 싶어. 사업 동업자라는 친구 놈도 결혼을 하더니 의견 차이가 많아졌어. 누나와는 달리 나는 인간관계를 넓게 사귀고 알아가지는 않아. 그 녀석이랑 원룸하나 빌려서 이렇게 까지 왔는데, 불화가 심해져서 2년 전에 결국 서로 갈라섰어. 이게 나에게는 너무 큰 충격이자 스트레스였나 봐.
누나, 누나라도 나를 좀 인정해 줘. 인정받고 칭찬받고 싶은가 봐. 그래야 힘을 좀 내지. 갈 길이 아직 먼데, 힘드네. 쉬고 싶고 기대고 싶은데 기댈 곳도 없어. 누나는 혼자 살면서 참 꿋꿋해. 여행도 잘 가고 재밌어 보여.'
한책임씨와의 관계에도 벚꽃 피는 계절과 같은 '평화'가 왔습니다.
평화로운 시기 즈음에야
책임감의 무게에 눌려 있는 외롭고 처량한 가장의 마음이 읽어졌습니다.
저와 동업을 시작한 시기에는 이미 지쳐있었던 것입니다.
지치고 아프니까 자꾸 짜증 내고 부정적으로 얘기를 했던 것입니다.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은
모든 어려움을 어떻게 해서든 거의 이겨낸다.
참고도서 : 퓨처셀프
지은이 : 벤저민 하디
옮긴 이 : 최은아
싸워서 이겨야겠다는 이유가 개원하고 힘든 시간 1년을 이겨냈습니다.
1년 넘고 4년을 채워갑니다.
지금의 이유는 훨씬 부드러워졌습니다.
이유의 개수도 많아집니다.
그러면, 저자의 문장처럼
오늘을 살아야 할 이유가?
너무 단순합니다.
생명이라는 24억보다 더욱 가치 있는 선물이 제게 주어졌습니다.
생명의 본질은 사는 것입니다.
다음의 이유들은? 위의 책의 저 한 줄에 따르면 '소명'같은 것입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로 유명한 저자 벤자민 프랭클이 <의사와 정신>을 쓰겠다는 일념으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고통의 시절을 이겨낸 예를 들고 있으니까요.
여러분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소명도 좋습니다.
소명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우리는 아우슈비츠에 끌려가는 고통이 없어서 가벼울까요?
이제 태어난 갓난아이에게 물어보겠습니다.
엄마 뱃속 밖으로 나오는 여정이 가벼웠냐? 고 말입니다.
살기 위해 그 숨 막히는 탈출을 해냈습니다.
건강하지 않으면 절대 해낼 수 없는 그 일을 말입니다.
'깨끗한 병원에서 사랑가운데 이뤄졌으니..
가벼웠겠구나 아가야'
아닐 겁니다.
어떤 아기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죽을힘을 다해서요.
당신의 이유는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