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꿀언니 Nov 30. 2022

2년간 카카오톡에서 생일 알림을 꺼 보았다.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받는다고 행복할까요



카톡에서 내 생일을 안 보이게 한 지 두 해째다.


카톡 선물하기를 자주 사용하고 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생일날 많은 선물을 받는 것은 고맙지만 기쁨도 잠시였다. 카카오톡 선물하기와 생일이 연동되면서 나의 마음이 선물의 가격으로 측정되는 것 같아 유쾌하지 않았다. 받은 것은 꼭 돌려줘야 했기에 한 달에만도 몇 십만 원씩 들어가는 선물 비용도 부담스러웠다.


게다가 이 전 국민 메신저는 연락처에 저장된 사람을 모두 ‘친구’라고 눙치며 ‘생일인 친구’를 무려 최상단에 보여준다. 생일을 까먹지 않게 도와주려는 좋은 의도는 알겠으나 문제는 꽤나 애매한 사이인데도 모두 ‘친구’로 뭉뚱그려진다는 것이다. 모임에서 한번 연락처를 주고받았을 뿐인데 알람이 떠 축하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되기도 했고, 연락을 한지 기억할 수 없을 만큼 오래된 지인에게서 축하를 받는 뜻밖의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일이 어그러져 서로 데면데면한 거래처나 친구의 전 남친 등 그야말로 동네방네 내 생일이 알려지는 것이 몹시 당혹스럽다.


이미 주변에는 조용히 카카오톡 생일 알림을 꺼둔 사람들이 있었다. 어려운 사회와 이웃을 생각해 자기 자신만 축하받는 무드가 되고 싶지 않다는 사회운동가 같은 사람도 있고, 아예 알림 서비스가 나왔을 때부터 꺼두고 한 번도 켠 적 없다는 반골들, 나처럼 내성적인 사람들 등 이유도 다양했다. 이런 상황들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갈팡질팡하며 스스로의 행동의 기준을 아직 정하지 못했기에 나는 실험이 필요했다.




생일 알람이 안 뜨면 어떻게 될까?


어떻게 될까? 내 생일을 안 보이게 꺼 둔 첫 해에는 일단 호기심이 앞섰다. 남의 생일은 어찌 보면 굳이 신경 쓰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365일 중의 하루일 뿐이다. 가족 연락처도 기억하지 못하고 핸드폰에 아웃 소싱하는 디지털 치매 시대인데, 하물며 생일은? 메신저가 알려주는데 이미 길들여지고도 남지 않았을까?


축하해 온 사람들이 있었다. 가족과 오랜 친구들이었다. 알거라 생각하긴 했지만 기대를 안 해서인지 더 고맙게 느껴졌다. 또, 소수의 가까운 지인들과 축하를 나누니 쌓인 메일을 처리하듯 기계적으로 답하지 않아도 되고 축하 한 마디 한 마디가 다수 속에서 희석되지 않고 특별해지는 기분도 들었다.  


당연히 축하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았다. 대신에 연락처만 등재된 피차 애매모호한 관계에 대해 나도 영혼 없는 축하나 의례적인 답례를 하지 않아도 되어 깔끔했다. 그중에서는 축하해주고 싶어도, 내가 일방적으로 알림을 꺼두었기 때문에 축하 금지를 당했던 사이도 있었을 것이다. 인정한다. 이 부분은 순전히 나의 이기심 때문이다.


가장 친한 친구에게서 연락이 없었다


문제는, 정말 ‘친구’라고 생각해 축하해줄 것이라 기대다가 연락을 못 받은 친구들이었다. 물론 모든 지인의 생일을 기억하는 것은 나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바쁘기라도 하면 축하할 기회를 며칠이나 지나쳐 버리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는 생일 알림의 도움을 받는 셈이다. (대신 수수료를 조금 받고.) 그래도 씁쓸함은 남았다.


공교롭게도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에게서 연락이 없었다. 스무 살 대학 때부터 울고 웃고 싸우고 화해하며 친해져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해오던 십년지기 찐친이었다. ‘바쁘더라도 친구에 대한 생각을 한 톨 정도는 해줄 수 없었던 것 일까?’ 싶었다. 평소 ‘아무리 바빠도 시간은 쪼개서 내는 것!’이라는 시간 관리론을 실천하던 친구였기에 더 아연했다. 내가 먼저 친구에게 생일이라고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궁리하느라 코를 씩씩거리고 마음을 들썩였다. ‘내적 관종’이라고, 관심이 싫으면서도 관심이 없으면 또 바라게 되는 마음이 생기는 건 뭔 심보인지 모르겠다.


곰곰이 내 마음을 들여다보니, 쿨한 척 카톡에서 내 생일을 꺼둔 후에도 여전히 생일에 집착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생일이 뭐라고. 365일의 아름다운 날들 중 하루인데 단 하루 만으로 십 년 우정을 실추해 버릴 만한 일일까? 그러기엔 친구와 진심 어린 우정을 나눈 추억이 더 깊었다. 생각해보니 친구는 아이 키우면서, 일 하면서, 요즘엔 대학원 입학 준비까지 하며 주경야독하고 있었다. 며칠 후, 친구는 놀라며 생일을 왜 얘기 안했냐고 몹시 미안해하며 축하를 해주었다.


올해는 그만 실험을 멈출까 고민했다...


나조차도 메신저에 알림이 없으면 지인의 생일을 기억할 자신이 없다. 나의 막무가내 실험으로 인해 ‘모르는데 어떻게 축하하나요’ 억울한 이들도 생기겠다 싶었다. 그럼에도 두 번째 해에도 알람을 다시 켜지 않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작년에 축하해주었던 가족과 십년지기 친구들은 물론, 마음이 맞는 사촌 동생과 함께 수년간 야근을 이겨오던 전우와도 같은 전 직장의 선후배들이 축하를 이어주었다.


특별히 올해부터는 새롭게 가족이 된 시부모님, 지금의 남편과 나의 중매를 서 준 후배, 그리고 마음을 다해 공부하고 있는 그림책학교의 동기들까지 생일을 알려준 적이 없는데도 어떻게 아시고 축하를 전해와 깜짝 놀라기도 했다.


알림을 껐더니, 선물보다 더 소중한 것을 받았다


2년간의 실험을 통해 ‘카카오톡 선물하기’에 대처하는 나름의 기준이 생겼다. 카톡에서 내 생일을 안 보이게 끄자, 첫째. 고민할 거리가 심플해지니 해피해졌다. 복잡도가 늘어날수록 삶이 힘들어진다. 둘. 기프티콘 대신 섬세하고 사려 깊은 사람들이라는 귀한 선물을 얻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나 스스로가 생일에 연연하지 않게 됐다. 더 중요한 것은 일상 속에서 나누는 따뜻한 말 한마디와 즐거운 추억, 배려와 헌신이었다.


꽤 거창했지만 이렇게 써놓고 소심한 나는 스마트폰 달력에 따로 적어 놓지 않은 소중한 사람들의 생일이 없나 다시 한번 점검해본다. 아무튼 생일 알림 끄기 실험은 꽤 재밌었있다.




사진출처: twitter @조아 님

——

‘브런치 추천글’ 감사합니다! 이 글을…카카오는 싫어하지 않는군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