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왕에게로의 초대 Altkönig, Kronberg

나의 작은 공간 in Frankfurt am main

by 봄희

5월 들어서면서 날씨가 많이 좋아졌다. 쌀쌀하다고 느끼기 날보다 겉옷을 입지 않아도 될 정도의 따뜻한 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지난달까지 조금은 신경 쓰이던 일들도 정리되었고 조금씩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그러다 보니 점점 도심 밖으로 눈길이 가기 시작하였다. 독일에 들어와서 사귄 친구로부터 듣게 된 프랑크푸르트 근처의 산이 생각났다. 독일에서는 산을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나라는 도시마다 작은 동산이라도 하나씩 끼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데, 여행을 다녀봐도 산이 쉬이 눈에 띄지 않았다. 그래서 멀지 않은 곳에 등산을 할 만한 산이 있다는 말이 반가웠다. Kronberg근처에 위치한 Altkönig. 이름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자면 늙은 왕이라는 뜻이다. 그런 의미로 붙여진 이름인지는 확실히 알진 못하지만, 언제 꼭 한번 늙은 왕을 뵈러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등산을 좋아한다. 누군가 ‘너 취미가 뭐야?’라고 물어오면 곧 잘 대답하는 목록 중의 하나가 바로 등산이다. 그리고 약간의 자랑을 섞자면 체력도 꽤 좋아 산을 잘 타기도 한다. 물론 시간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을 나의 관절들을 생각한다면 빠르게 오르고 내려온다는 것이 좋은 것만 것 아닐 것이다. 어렸을 적 집 근처의 뒷산에서 뛰어놀던 기억 때문일까. 내 몸은 산에 잘 맞았다. 한국에 있을 때에도 곧 잘 산을 찾곤 하였다. 엄마와 함께 근처의 산을 찾기도 하고, 때론 몇 날에 걸쳐 지리산 종주를 하거나 바다 건너 한라산을 찾아 오르기도 할 정도였다. 산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특성이 그대로 내 몸에 배어 있었다.


토요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커튼을 걷어 날씨를 확인하였다. 파란 하늘. 맑다. 마음이 설렜다. 오랜만에 산에 오른다는 설렘에 긴장이 될 정도였다. 아침을 차려 먹고 그동안 한쪽 구석에서 휴식만 취하고 있던 카메라를 잘 정돈해서 집을 나왔다. 오랜만에 타는 전철의 어색함은 나의 여행에 대한 설렘을 극대화시켰다. 우리 동네에서 S4로 갈아타고 종점 Kronberg역까지 가서 거기서도 Falkenstein까지 들어가야 산에 오를 수가 있었다. 위치는 대충 구글 지도로 검색을 해놓고 Kronberg역에 가서 길을 물어 찾아가 보기로 하였다. 발걸음이 가볍다.
Kronberg역에서 내려 밖으로 나왔다. 그리 많지 않은 사람들이 전철에서 내렸다. 그중 몇몇 사람은 등산을 하는 듯한 복장이었다. 낯설지 않은 그 모습이 반가워 웃음이 났다. 조금 올라가니 Viktoria공원이 나왔다. 파릇파릇한 5월의 초록빛으로 가득한 아름다운 공원이었다. 풀들과 나무들의 밝은 푸른빛으로 눈이 부실 정도였지만, 주말을 맞아 공원을 찾은 가족들의 웃음소리와 아이들의 함박웃음은 그것보다 더 아름답고 눈부셨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것들이 정말 많지만, 이런 순간만큼은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존재라고 생각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의 모습은 정말 아름다워 보인다.

초록에 이끌려 공원을 거닐다 보니 Viktoriapark라는 표지판을 보고 공원 이름이 Viktoria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름부터 심상치가 않아 보여 표지판을 자세히 들여봤지만 독일어 능력이 부족한 내가 이해할 가능성이란 애초부터 없었다. 다만 Viktoria Kaiserin Friedrich라는 인물과 관련이 있는 공원이라는 점만 겨우 알 수 있을 뿐이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검색을 통해 알아낸 사실은 그녀가 독일제국의 황비였다는 것이다.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의 첫째 딸로 태어난 빅토리아는 훗날 독일제국의 황비 겸 프러시아 왕비가 된다. 그러나 남편 프리드리히 황제가 세상을 떠나자 홀로 된 빅토리아는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의 근처에 있는 크론버그(Kronberg) 언덕에 프리드리히호프(Friedrichshof)라는 저택을 짓고 그곳에서 살았다. 1901년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나던 마지막 장소도 프리드리히호프였다. 사후 그녀는 포츠담에 있는 프리덴스키르헤(Friedenskirche)에 그녀의 남편과 함께 나란히 안치되었다. 프리드리히 황제의 뒤를 이어 빅토리아의 아들이 새로운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데 그가 바로 독일제국의 마지막 황제, 빌헬름 2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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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을 빠져나와 마을 쪽으로 걸어 올라갔다. 꽤 멋진 집에 작은 정원을 가꾸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을을 지나자 큰 도로를 지나는 다리가 나왔다. 이쯤 되면 의심이 되기 시작한다. 과연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맞는 것일까.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모를 때는 그 길을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괜히 혼자서 해결해보겠다고 자만하다가는 길을 잃기 십상이다. 어디를 가더라도 도움을 주고자 하는 친절한 사람들이 많다. 여행을 다니다 보니 내가 그동안 얼마나 불친절하고 배려가 부족했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주변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오지랖 넓다며 핀잔을 받을 정도로 낯선 사람들에게도 친절하던 나였지만 비교하자면 나는 친절한 축에도 끼지 못하였다. 친절은 오지랖이 아니다. 서로를 배려하고 도움을 주고받는 것은 사람이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나는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동네 주민으로 보이는 할머니께 길을 여쭤보았다.
“저 Altkönig 에 가려고 하는데 어느 쪽으로 가야 하나요?”
그런데 할머니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할머니께서는 놀란 얼굴로 나의 목적지를 다시 한번 물으시더니 나를 한번 쭉 훑어보시고는 고개부터 저으시는 것이 아닌가.
“너 혼자니? 그곳은 너 혼자는 못 간다. 그 산은 꽤 높아서 너 혼자서 그곳에 가봤자 너는 절대 좋아하지도 만족스럽지도 않을 거야. 다른 곳을 가거나 그냥 돌아가는 것이 어떻니?” 라며 나를 말리셨다. 그래도 나는 포기할 수 없어
“만약 제가 그래도 가고 싶다고 한다면 어디로 가야 하나요?” 라며 여쭤보았다. 나를 걱정스러운 눈빛 반, 못마땅하다는 눈빛 반을 보내며 살짝 한숨을 내쉬더니
“Falkenstein 쪽으로 가면 그곳에서 올라갈 수 있단다. 하지만 너는 그곳에 오를 수 없어. 돌아가거라. 돌아가는 길은 알고 있니? Kronberg역으로 가면 돼. 어떻게 가는지 알고 있니?”라며 끝까지 나를 말리셨다. 이쯤 되니 나도 포기하듯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돌아가겠다고 할머니를 안심시켜 드리고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며 돌아섰다.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돌아갈 거면 처음부터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구글 검색에서 본 그곳에 대한 평가는 꽤 만족스러워 보였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 주변의 산들은 우리나라의 산들과 비교하면 그리 높게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할머니의 걱정스러운 말이 떠올랐지만 그래도 한번 가보기로 하였다. 가다가 아니다 싶으면 그때 발길을 돌려도 늦지 않을 것이다. 시도도 해보지 않고 이렇게 돌아선다면 나중에 후회하게 될 것이 분명하였다.
길을 걸었다. 버스정류장에서 동네 지도를 찍어 온 덕분에 지름길이 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었다. Falkenstein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약간의 언덕과 짧은 숲을 지나니 금방 도착하였다. 그리고 마을을 가로지르자 산으로 이어지는 숲길이 보였다. 한적한 편이었지만 이따금씩 자전거를 타고 산길을 오르는 사람도 보이고 걸어 오르는 사람들도 볼 수 있었다. 이 정도면 혹시라도 나에게 사고가 생긴다면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은 충분해 보였다. 그렇게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하였다.


숲길은 완만하게 산을 오를 수 있도록 지그재그로 잘 나있는 넓은 길이 있었고, 사이사이로 가파르게 나있는 좁은 산길도 있었다. 나는 좁은 산길을 이용해 오르기로 하였다. 딱딱한 돌이 아닌 부드러운 흙의 느낌을 전해 받으면서 오르고 싶었다. 사실 가파르다고 해도 숨이 헐떡거리거나 땀이 날 정도의 가파른 길도 아니었을 뿐 더러 조금 비탈진 흙 길이었기에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산을 오르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독일은 도시에도 인구밀도가 그리 높지 않을 뿐 더러 공원도 많고 크고 오래된 나무들도 많아서 그런지 산에 들어왔을 때의 변하는 공기의 상쾌함을 즉각적으로 느끼기가 쉽지 않았지만 천천히 산의 기운에 적응하고 나니 시내의 공기와는 분명 다름을 느낄 수 있었다. 독일인들처럼 크고 늘씬한 나무들이 듬직하게 숲을 이루고 있었다. 이렇게 보면 사람들은 살아가는 지역의 자연환경에 영향을 받아 성장하고 진화해 나가는 것이 맞는 것 같다. 독일의 자연은 독일 사람들을 닮았다. 한국사람들이 한국의 자연을 닮아 있는 것처럼. 오랜 시간에 걸쳐 환경에 맞도록 대대로 유전되는 부분인 것인지, 한 사람들이 태어나고 살아오면서 자연스레 그 환경에 영향을 받고 적응하게 되는 것인지 그냥 둘 다인 것인지는 나의 전공이 아니므로 깊이 얘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결국 사람도 자연의 일부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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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쉬엄쉬엄 2시간을 오르다 보니 정상에 도착하였다. 사실 오르던 중에 길을 헷갈려서 정상은 밟아보지도 못하고 하산할 뻔도 하였지만, 다행히 산을 오르는 독일인 여성을 만나 그 뒤를 쫓아 무사히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느덧 3시가 다 되어갔기에 오랜 시간 정상에서 머물기는 어려웠다. 독일은 해가 길어 어두워질 것을 염려하지는 않았지만, 아침을 두둑이 먹었다고 하지만 배꼽시계가 비상식량이라고 챙겨 온 약간의 간식거리 가지고 얼마 동안이나 버텨줄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잠시 동안의 쉼을 청하고 발길을 돌려 내려가고자 하였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해 곧 자리를 잡고 주저앉아 버렸다. 눈 앞에 펼쳐진 낯선 풍경, 구름이 낮게 깔린 파란 하늘, 조용하다가도 갑자기 쏵-하고 지나가는 바람, 조금이라도 하늘 가까이에 다가선 그 느낌이 좋아 쓰러진 나무에 걸터앉아 한참을 자리에 앉아 그 풍경을 눈에 담았다. 다시 이 풍경을 볼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나의 발걸음을 더 잡아두게 하였다. 장수풍뎅이로 보이는 벌레가 혼자인 내가 외롭지 않도록 내 앞에서 자리 잡고 한참 동안이나 떠나지 않았다. 노(老)하신 왕께서 젊은 친구가 성질 급하게 떠나려는 것이 못내 못마땅해 보여 산의 정령에게 일러 잠시 잡아두도록 이끄신 것은 아닐까. 멀리 타지에서 온 친구에게 자신이 품은 세상을 보여주기 위해, 어쩌면 자랑하고 싶으셨는지도 모르겠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결국 먼저 자리에서 일어선 것은 나였다. 함께해준 고마운 친구에게 인사를 하고 산을 내려왔다.
참으로 신기하고 대단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반 정도는 자전거를 타고 오르내린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젊은 축에 드는 남성들은 연인이나 가족과 함께 온 것이 아닌 이상 자전거로 산을 올랐다. 그중에는 여성도 종종 눈에 들어온다. 처음으로 산악자전거를 타고 산을 내려오는 여성을 봤을 때는 놀라움에 “너 정말 대단해!”라고 소리치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정말이지 독일인의 체력과 도전정신에는 두 손 두발 다 들어 버렸다. 그저 감탄스러울 뿐이다. 한국에서도 이따금씩 산악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지만, 차원이 달랐다. 그렇다고 부럽다는 말은 아니다. 나는 그냥 내 두 다리로 발바닥을 땅을 느끼면서 산에 오르는 것에 충분히 만족하고 행복함을 느끼고 있으니까.

조금이라도 하늘 가까이에 다가선 그 느낌이 좋아 쓰러진 나무에 걸터앉아 한참을 자리에 앉아 그 풍경을 눈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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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의 산행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피로하였다. 산에서 내려와 Kronberg마을을 천천히 둘러보며 기차역까지 걸어왔다. Kronberg는 berg(독어:산)가 붙은 마을답게 고지대에 위치해 있어 마을이 윗마을에서 아랫마을까지 비탈진 언덕에 집들이 오밀조밀하게 자리 잡은 조용하고 예쁜 마을이다. 역에 도착하여 전철이 오기를 기다리며 벤치에 털썩 주저앉으니 피로감이 급격히 몰려왔다. 시원한 맥주 한잔이 간절하였다. 시내에 가서 맥주를 한잔 하고 들어갈까, 냉장고 안에 시원하게 냉각되어 있을 Schöfferhofer를 마실까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그 고민은 중앙역에서 도착하자 쉽게 결정이 날 수 있었다. 축구 유니폼을 입고 서성이는 사람들을 보니 술집도 사람들로 북적거릴 것이 분명해 보였다. 역시 집이 최고다. 굶주린 배를 채워 줄 막 구워낸 따뜻한 감자라자냐와 시원한 흑맥주 한잔에 산행의 피로함을 날려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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