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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미화 Mar 06. 2024

당신도 이 정도는 해줘야 하지 않나요?

소심하지만 만만한 사람은 아닙니다

 상냥하고 다정한 모습으로 다가와 원하지 않는 호의를 베푸는 사람이 있다. 경계의 눈초리, 적당한 선긋기의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조금 지나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당신도 이 정도는 해줘야 되니 않나요?' 하며 호의를 강요한다. 관계의 어떠한 누적도 없이 기브 앤 테이크만이 목적인게 눈에 뻔히 보이는데도 말이다.


'죄송하지만, 제 사정과 형편상 어쩔 수 없을 것 같습니다만'


거절을 불편해하는 사람의 마음을 간파했다는 오만함일까. 정중한 거절에도 되려 무례하게 나온다.

'당신은 이제 효용가치가 없습니다. 더 이상 호의는 없습니다.' 라며 얼굴색 바꾸면 돌아서니 말이다.


애초에 호의를 바란 것도 부탁을 한 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하면 그만이지만 묘하게 기분이 별로다. 의도치 않게 상처받은 마음에 괜스레 괜찮은 척, 강한 척을 해본다. 소심함과 나약함을 간파당하지 못하도록 대범한 척을 하고 산다. 부조리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관계에 있어서 나를 지키는 방법 중 하나라 생각된다.


'소심하지만 만만하지는 않습니다.'




대가를 바라는 관계는 피곤하다.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갈 때 우리는 어느 정도는 목적을 가지고 사람을 만나는 건 인정한다. 다만, 너무나 노골적이고 무례한 관계에 대해서는 거절을 하는 편이다. 이왕이면 정중하고 직설적으로 거절을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최대한 핑계를 대며 피하기도 한다. 거절해야 하는 상황은 영 부담스러워 마음이 불편해진다.  하지만 거절을 못해서 내가 더 불행해지는 상황을 막아야 하지 않을까.


 인간관계, 너무나 깊게 생각하면 피곤하고 힘들다. 지나고 보니 호의를 베풀어도 거절을 해도 '내 사람'들은 곁에 남는다는 걸 알았다. 내가 살아온 맥락을 이해하고 나와 이해관계를 함께 해나가는 사람들. 나 또한 그들의 맥락을 이해하며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다만 상처받기를 바라지 않을 뿐이다. 소심하지만 만만하지 않게 살려다 보니 그 또한 너무 피곤하게 사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좋은 것이든 싫은 것이든 그냥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아니면 흘려보내면 되는 것을.




우리 모두가 못 박혀 사는 일상이라는 틀은 아름답고 좋은 것만으로 채워지지 않고, 대부분 지난한 반복과 피곤한 부조리를 포함하고 있다. 게다가 내가 겪는 부조리는 남의 것보다 더 보여서 그 주관적 상대성에 집착하다 보면 '나는 왜?''내 삶은 왜?''사는 게 뭐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명백한 사실이 한 가지 있다. 부조리 없는 인생은 없다는 것.
인간은 그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부조리를 견딜 뿐이다.  
- 박웅현 저서 <문장과 순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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