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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미화 Feb 26. 2024

날마다 부딪치는 것들

 '뭘 써야 될까'라는 고민에 대한 답은 자연스레 독서로 이어졌다. 다행히 책을 펼치면 생각들이 날아다닌다. 마치 꽃밭에 날아다니는 나비처럼 말이다. 폴폴 거리며 사뿐사뿐 날아다니는 생각들을 채집망으로 잡아채, 가지런한 언어로 반듯하게 적어내는 것은 내 능력의 한계였다. 그래서 1년 동안 책을 많이 읽었다. 읽기만 한 것이 아니라 흩어지는 생각들을 다듬기 위해 sns라는 수집통에 차곡차곡 남겨놓았다. 말이 독후감이지, 감상문을 빙자한 나의 일상과 생각으로 채워진 그 공간은 해우소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해우소라는 표현이 참 적절한 것 같다. 형식도 없고, 어떨 때는 문맥도 없이 쏟아낼 때도 있었으니까. 책을 제대로 소화했을까에 초점이 맞춰진 게 아니라, 휘발되는 생각들을 어떤 형식으로든 내뱉어 남겨놓고 싶었다는 목적이 더 강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딱 일 년을 읽고 썼다.

  사실 오랫동안 독서를 재미로 즐겨만 왔지, 아웃풋을 내기 위해 채운다는 목적으로 독서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까지의 독서와 작년 한 해 동안의 독서는 결이 완전히 달랐다. 작년 한 해는 조금 더 치열했다고 해야 되나. 목적이 분명한 독서는 이전의 독서와는 조금 더 다른 재미로 다가왔지만, 솔직히 생각보다 힘들었다. 혼자 몰래 쓰는 일기였다면 덜 힘들었을 수도 있지만 공개된 곳에서의 글쓰기, '계속 쓰기'에 대한 확언은  힘들어도 꾸역꾸역 할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해가 바뀌면서 변화를 주고 싶었다. 1년 동안 내 안에 무슨 변화가 있었는지 확인해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나의 이야기를 써보자.'



  잠시 책 읽기를 멈추고 오래도록 나에 대해 생각했다.

좀처럼 생각들이 날아다니질 않는다. 깜깜한 벽 앞에 서있는 기분이 들었다.


'살면서 큰 역경을 겪은 사람도 아니고, 놀랄만한 에피소드를 가진 것도, 특출 난 재능을 가진 것도 아닌 지극히 평범하고 소소한 사람도 좋은 글이란 걸 쓸 수 있을까.'라는 고민만 수천번을 했다.



  답이 나올 리가 없다.

그래서 일단 써보면서 알아보기로 했다. 쉽지 않겠지만 늘 그렇게 그냥 읽고 쓰했던 것처럼.

하찮고 사소한 일상들에 조금 더 관심을 가져보기로 한다.







나의 글은 다만 글이기를 바랄 뿐, 아무것도 도모하지 않고 당신의 긍정을 기다리지 않는다. 나는 나의 편견과 편애, 소망과 분노, 슬픔과 기쁨에 당당하려 한다. 나의 이야기가 헐겁고 어수선해도 무방하다. 나는 삶을 구성하는 여러 파편들, 스쳐가는 것들, 하찮고 사소한 것들, 날마다 부딪치는 것들에 대하여 말하려 한다.
생활의 질감과 사물의 구체성을 확보하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았다.



                                             김훈 산문집 <연필로 쓰기> 프롤로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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