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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미화 Mar 08. 2024

어른은 없다

단지 아이로서 나이를 한 살씩 먹을 뿐

“너는 육아를 참 쉽게 하는 것 같아!”


 모르고 하는 소리다.

 내가 얼마나 치열하게 나 자신과 싸우며 육아했는지.

사람이 사람을 키운다는 게 얼마나 부담스러운 일인지.

아마 가장 가까운 사람도 나를 모를 거다.

너무나 부족한 사람이고, 자꾸만 배워야 한다는 걸 알고 나니 오히려 육아를 하면서 내가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것만 같아, 한편으로는 이상하리만큼 신기하기도 하다. 물론 살림은 여전히 영 꽝이지만 말이다.



 예상치 못한 순간은 언제든 찾아온다. 그래도 계산을 두며 잘 살아내고 있다 생각했다. 결과 값에는 오차가 생겨도 내 뜻대로 수정할 수 있는 정도의 오차범위라 생각했다. 당황스러운 상황은 항상 생각지도 못한 변수에서 온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감정, 그리고 오해, 상처.



 이제 10년 육아를 했으며, 여전히 진행 중이며, 매일이 오차의 한계 밖을 넘나드는 일을 마주하는 내가 육아는 이러이러하다라며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고백하자면, 첫 아이를 가지고 낳기 전까지 육아를 잘할 자신이 있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했던가. 경험해보지 않은 일을 쉽게 말하지 말라 했던가. 지금 생각해 보니 뭔 자신감이었나 싶다. 육아에 대해 너무나 무지했었다. 막연한 그 자신감은 3킬로그램 밖에 안 되는 작디작은 아기를 집으로 데리고 오면서부터 삐거덕거리며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무너지는 건 하루면 족했다. 어느 하나 내 맘대로 되는 건 없었고, ‘저 괜찮아요. 힘들지 않아요.’라고 지인들에게 말하는 내가 오만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쓸데없이 인정을 받는다고 해서 내 아이가 잘 크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얼마나 감정적으로 약한 사람인지 감정이 어디까지 내려가는지 바닥을 치고 더 내려갈 곳은 있는지 불안했다.


‘특이점’


 그때 나는 누구나 마음속에 블랙홀이 있다고 생각했다. 구부러진 시‧공간처럼 마음에도 그러한 굴곡진 곳에 나도 모르게 숨어있는 블랙홀이 있다고 생각했다. 절대 떨어지면 안 돼.

멀리 있는 수평선을 바라볼 때 그 너머로 아무것도 볼 수 없듯이 블랙홀의 사건 지평선 너머로는 어떤 것도 볼 수 없다. 절대 떨어지면 안 돼.

 시커먼 구멍이 마음의 빛을 죄다 끌어내려 가슴에 진짜 구멍이 날 것 같아 조마조마했던 기억이 난다. 내 감정이 어디까지 떨어지며 내가 어떤 모습, 어떤 사람일지 가늠이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때 나는 감정의 지평선을 아슬아슬하게 걷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남편이 육아휴직을 했다. 남편은 또 남편대로 힘들었을 것이다. 아이가 커가면서, 직접 부딪히고 깨지고, 처음부터 배워가며 조금씩 나를 찾기 시작했다.

나에게 육아가 힘든 이유는 ‘무지’ 때문이었다. 육아라는 실체를 조금씩 알수록, 나를 똑바로 쳐다볼수록 바닥을 치던 감정들이 서서히 올라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육아라는 세상에서 엄마이면서 나답게 행복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부모라는 이름으로 완벽하려고 하지 말고 같이 성장한다는 생각으로
아이와 삶을 함께 걸어 나가길 바란다.
이은희 <육아가 힘든 이유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중에서




 온종일 '나'라는 사람의 효용성에 대해 의심이 드는 날에 나는 '행복하게 살 방법'을 찾는 책을 읽고 있다. ‘내가 좀 더 신경 써야 되겠다’라는 말에 이제까지 꾹꾹 눌렀던 서러움이 잔뜩 밀려와 맥이 탁 풀려 모든 게 다 싫어진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쩌겠는가.

'엄마이기 이전에 사람'이라는 말보다,

'그래도 엄마인데'라는 말이 더 앞서

오늘도 싸움의 절정으로 가는 아이들 앞에서 어금니 꽉 물고 목구멍으로 이 말을 삼켜본다.


'육아,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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