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고 온 문제를 같이 들여다본다. 문제도 잘 끊어 읽었고, 조건도 잘 정리했고, 개념과 공식도 잘 가지고 왔는데도 해결방법이 도무지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빨간펜으로 연장선을 하나 그어줬다. 아이는 그제야 ‘아!’라는 탄식과 함께 문제를 풀어가기 시작했다. 선 하나 그었을 뿐인데, 아이는 그 밑에 있는 비슷한 유형의 두 문제도 거뜬하게 풀어냈다.
“쉬운 거였네요.”
알면 쉽고 모르면 그렇게 어렵다. 보조선을 그어야 풀리는 문제들이 있다. 연장선 긋기는 감각이다. 타고난 감각일 수도 있지만, 보통은 훈련된 감각이라고 생각한다. 보조선을 그을 곳을 찾아내느냐 못 찾아내느냐.
브런치 작가 신청할 때 이야기를 잠시 해본다. 말하자면 ‘고백’이다. ‘글을 쓰고 싶어서’라기보다는 프로필에 ‘이력을 추가하고 싶어서’ 도전한 게 더 정확하겠다.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하고 그다음 날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메일이 왔다. 한껏 들떠 ‘저 브런치 작가가 됐어요’라고 요란스럽게 자랑을 했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그리고 나에게 남은 건 몇 문장 끄적이다 만 일기 같은 글들과 서랍장에 쌓여있는 목차들뿐이었다. 알맹이 없는 빈 껍질들. 공개에 대한 두려운 마음, 꾸준히 쓸 수 없는 불성실함, 필력과 같은 큰 벽에 부딪히며 호기롭게 시작한 브런치는 깡통 브런치가 되었으며, 몇 개월 동안 방치 상태로 있었다. 가장 고민을 했던 부분은 글의 ‘정체성’이었다.
‘그래서 네가 말하고 싶은 게 뭐니?’
매번 스스로 묻고 답을 찾아서 헤맸다. 답을 찾기는커녕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일기 같은 잡동사니 파일은 쌓여가는데, 글의 분량도 글의 흐름도 글의 주제도 뒤죽박죽 엉망진창이었다. 꽤 오랫동안 혼자서 낑낑거렸다. 이러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되겠다 싶던 와중 <쓰기의 책장>이라는 글쓰기 모임이 마침 눈에 들어왔고, 자석에 이끌리듯 참여하게 되었다. 다른 이의 글쓰기를 접하고 싶었고, 그 속에서 나의 문제점을 찾고 싶었다. 매일 쓰는 그 과정이 힘들지만, 매일 써내고 있다는 사실에 재미가 들었다. 글을 쓰면서 타인의 글을 읽으면서, 피드백하는 과정에서 내가 배우고 싶은 것들을 하나씩 빨아들이듯 흡수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타적인 글 벗들의 삶의 태도에서도 성장을 제대로 배워나갔다.
시나브로 글감이 쌓이고 습관이 잡히기 시작하면서 연재를 시작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이번 브런치 북의 글들 대부분은 글쓰기 모임에서 썼던 글들을 모아 퇴고를 하여 올린 글들이 대부분이다. 그다음은 연장선 긋기가 필요했다. 보조선이 그어져야 풀리는 문제처럼 내가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을 풀기 위해 어떻게 연장선을 그어야 하나 고민해야 했다.
결국, 브런치 북 연재를 시작했다. 고민만 하다가 끝날 것 같아서 일단 시작했다. 미흡했던 과거의 시작과 끝의 한 부분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며 지금 당장 또 다른 시작을 할 수도, 하다가 영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건 또 그런대로 잘 마무리를 하고 또다시 시작하면 될 뿐이라는 결론이 나왔기 때문이다. 인생은 무한한 시작과 끝의 반복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게 아닐까. 그 시작과 끝 자체가 하나의 과정이 되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수많은 시작과 끝이 존재하기 때문에. 결국, 태도, 마음가짐의 문제다. 좋은 시작과 좋은 끝이 있을 수도, 나쁜 끝이 있을 수도 있다. 인생의 수많은 장 속에서 단 하나의 장이 별로라고 해서 그 인생이 소위 말하는 망한 인생이라면, 그래서 포기해야 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는가. 실패하면 또다시 하면 될 일이니.
글을 올리는 내내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마음에 드는 끝이 아닐지라도 나는 이번 장을 여기서 끝내려고 한다. 다음 이야기의 시작을 위해. 자기만족일지라도 이렇게 마무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