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전. 남편이 굽는 베이컨 냄새가 안방까지 퍼지고, 원이가 거실을 누비며 준비물 챙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공개수업만 아니었다면 주말의 여유를 만끽하며 이대로 침대에 머물렀을 텐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올봄부터 원이는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직장을 핑계로 학교 공개수업에 가보지 못한 나는 아이의 수업 장면이 궁금했다.
공개수업 장소인 과학실로 들어섰다. 뿔테 안경을 쓴 젊은 남자 선생님이 말했다.
“오늘의 수업 주제는 ‘인공지능 햄스터봇’입니다. 부모님께서는 아이들 곁으로 오셔서 지켜보셔도 됩니다.”
원이는 오늘 수업에서 사용하는 블록 코딩은 자신 있다고 했다. 가슴을 앞으로 쭉 내밀며 말하던 아이를 떠올리니 내 가슴도 활짝 펴졌다.
“내년에는 대학 부설 영재교육원에 도전해 볼까 봐. 소프트웨어 분야가 있대요.”
남편에게 속삭였다.
아이들이 코딩을 마치고 로봇을 조작했다. 아이들만큼이나 앙증맞은 로봇들이 시차를 두고 전진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걸어 나가는 로봇들 사이로 로봇 한 대가 슬금슬금 뒤로 빠졌다. 부모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나 역시 흥미롭게 바라보다가, 그게 원이의 로봇임을 알아챘다. 입꼬리가 올라간 채로 얼굴 근육이 굳었다.
아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크롬북을 조작했지만, 로봇은 계속해서 마이클 잭슨처럼 뒷걸음질 쳤다. 원이 옆자리 아이 아빠는 진작부터 아들 곁에 바짝 붙어 서서 응원하고 있었다. 남편은 그저 진지한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그를 향해 눈을 살짝 흘기고 원이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선생님께 도움을 청해 봐.”
아이의 어깨가 굳어지더니, 단호하게 말했다.
“엄마, 이러지 마세요.”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니, 머리에 찬물이 부어진 것 같은데, 얼굴에는 뜨거운 기운이 퍼졌다. 로봇처럼 어색하게 후진하여 자리로 돌아왔다.
로봇이 말을 안 들어서 예민해졌구나.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고자 애쓰며 아이를 관찰했다. 원이는 미소 띤 채 자기 크롬북 화면을 친구들에게 보여주더니 여유롭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뭔가가 이상했다.
선생님이 지나가시자 아이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선생님, 로봇 뒤로 가는 문제 해결했어요.”
아이의 로봇이 앞으로 천천히 나아가고 있었다.
“다음으로는 미로를 만들어 로봇을 탈출시키겠습니다.”
‘그래, 원아. 이번에는 네 실력을 제대로 발휘해 봐. 파이팅!’
원이 옆자리 아이 아빠는 이젠 목소리 낮춰 조언까지 해주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 아이는 미로 탈출도 빠르게 성공했다. 남편에게 원이 곁에 나가보라고 고갯짓 했다.
“원이 혼자 컨트롤할 거야.”
나는 손부채질하며 또다시 아이 곁으로 갔다.
원이의 로봇이 출발했다. 참았던 숨을 깊게 내쉬었다.
‘앞으로, 왼쪽으로, 다시 오른쪽으로!’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원이의 로봇을 조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로봇은 우리 집 남자들처럼 내 기대와는 정반대로 움직였다. 심지어 고장 난 경운기처럼 덜덜덜 떨더니 벽에 이리저리 부딪혔다.
남편을 바라보았다. 그는 핸드폰으로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내다가 고개를 들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보낸 신호를 해석해 보려는데 아이들의 뾰족한 목소리가 귀를 찔렀다.
“야, 이거 어서 치워! 네 건 평생 가도 탈출 못 할걸?”
“네 로봇은 왜 그렇게 떨어? 벽에는 왜 쿵쿵 박는 건데?”
아이들의 성화에 원이는 미로 초입에서 맴도는 로봇을 집어 들어 밖으로 꺼냈다. 상황이 이런데도 아들 녀석은 미소를 띤 채 로봇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쓰다듬고 있었다.
전원을 꺼도 불이 깜빡이는 전자기기처럼 수업이 끝나도 감정이 차단되지 않았다. 원이가 내게 쪼르르 달려왔다. 난 일부러 더 말랑말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원이, 수업하느라 수고 많았어. 오늘 로봇이 잘 안 움직여서 속상했지? 그래도 엄마는 네가 여유롭고 즐겁게 수업에 참여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더라.”
아이랑 남편이 동시에 “어?”하고 외치며 나를 향해 돌아섰다.
“엄마, 나 전혀 속상하지 않았어요. 다들 로봇이 뒤로 가는 이유를 몰랐는데 제가 이유를 찾아서 해결했거든요.”
나도 모르게 원망 서린 목소리로 질문했다.
“다른 애들이 재촉해서 네 로봇을 미로에서 치워버린 건?”
그때, 남편이 끼어들었다.
“아니, 얘 로봇이 계속 길을 막고 있으면 다른 애들은 어떻게 해?”
“맞아, 친구들도 다 해봐야 하는데. 친구들 하는 거 보는 것도 재미있었어요.”
남편과 아이가 나의 말이 황당하다는 듯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둘의 눈길을 피하며 서둘러 차에 탔다. 들뜬 목소리로 오늘 수업에 관해 이야기 나누는 부자의 대화에 끼지 못하고 핸드폰을 열었다. 친정 단톡방에 아이 아빠가 공개수업에 관해 자랑스럽게 알려드리는 내용이 올라와 있었다.
어지럽게 움직이는 창밖 풍경으로 시선을 돌렸다.
피로감이 몰려왔다. 미로 벽에 이리저리 쿵쿵 부딪혀서 아팠던 건 로봇도, 아이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