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가 착륙한다. 이륙 직후 작은 기체가 요동칠 때마다, 착륙 직전 기체에 충격이 가해질 때에도 알지 못하는 얼굴들이 아른거렸다.
내 표정을 걱정스레 지켜보던 아들이 말을 건넸다.
“엄마, 일반적으로 이런 악천후에는 하드랜딩을 하는 거래요. 이건 무슨 문제가 있어서도 아니고, 기장의 잘못도 아니에요.” 열 살짜리 아들의 말에 스며 나온 눈물을 닦고 미소 지었다. 고맙다, 아이야.
몇 년 전부터 제주도에 가보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대는 아이를 4학년이 되어서야 제주도에 데려왔다. 아이 아빠와 나, 그리고 아이. 이렇게 세 식구가 큰맘 먹고 여행을 떠나기로 한 날 하필 대설 및 강풍특보 기사가 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아니나 다를까 제주도 여행 취소에 관한 이야기가 오갔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항공기가 결항하지 않는 한 제주행을 강행할 남편을 떠올리며 묵묵히 짐을 꾸렸다.
비행기는 한산했다. 탑승객도 한 번에 다 불러 모아 태울 정도였으니까. 렌터카도, 숙소도 코로나 시절을 연상할 만큼 저렴했다. 얼마 전 긴 연휴에 대대적인 손님맞이를 했을 제주도는 악천후로 인해 관광객을 맞이하는 일로부터 한숨 돌리나 보다.
이미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한 저녁 무렵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는데 젊은 시절 홀로, 또는 여럿이 도보로 자전거를 타고 여행하던 일이 떠올랐다. 그동안 희미한 기억 속에 묻혀있던, 제주도에서 몇 번 우연히 스쳐 지나가다가 서울에서도 두어 번 만났던 반듯하고 아름다운 청년-지금은 중년이 되었겠지만-의 이름이 이곳에 도착하자 불쑥 떠오른 걸 보면 제주도는 낭만의 기운으로 가득한 섬이다.
눈보라를 뚫고 고깃집에 도착했다. 식사를 마칠 무렵 주위를 둘러보니 하나같이 젊은이들뿐이다. 총 여덟 테이블 중 일곱 테이블에 20대에서 많아 봤자 갓 30대에 들어선 무리 또는 커플들이 옹기종기 앉아 있고, 나머지 한 테이블에는 우리 세 식구가 앉아 있다. 이것을 일깨운 이는 아들이었다.
“엄마, 여긴 왜 다 형, 누나들만 와 있어요?”
잠시 망설이다가 답했다.
“형이랑 누나들은 아마도.... 겁이 없어서?”
아들의 질문에 나의 이삼십 대를 떠올린다. 태풍으로 인해 사방이 컴컴하고 신의 손이 후려치는 것 같은 바람에 나무가 꺾이고 파도가 입을 벌리며 방파제를 넘어오는 상황에서도 동료들과 함께 흠뻑 젖은 채 바람에 쓰러지는 자전거를 끌고 이리저리 숙소를 찾아 헤매다가 좁은 여관방에서 키득대며 몸을 녹이던, 하늘 위로 크루즈 미사일이 날아다니는 지역을 배낭 하나 걸쳐 메고 헤매고 다니던, 분쟁국가에 내전이 발발하려는 상황을 알고도 자청하여 파견되었던 내 모습을.
“엄마, 형아 누나들은 왜 겁이 없어요?”
“세상 이치를 잘 몰라서. 그리고 지킬 것이 없어서.”
실은 형아, 누나들이 아니라 젊은 시절 내가 그랬다. 당시에는 세상의 위험한 일들이 내게도 벌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미처 인식하지 못했고, 그 일들이 가까이에 접근해 왔을 때 공포감에 휩싸이기도 했으나 그때에도 신경 쓸 것은 오직 나의 목숨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세상일은-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누구에게도 예외가 없음을 알고, 또 나의 목숨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는 아이를 위해서도 필요하기 때문에.
젊은 시절 제주도의 푸르렀던 밤이 오늘은 검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 위에 뿌려지는 하얀 눈발이 그래서 더욱 눈부시다는 것도 아는 나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