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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에 관한 의식(및 음식)의 흐름

다이어트 일기 1.

by 허니베리

지난 두 달 사이 몸무게가 4kg가량 늘었다. 사람마다 살찌는 스타일은 다양할진대, 내 살은 주로 배 둘레에 옹기종기 모여 군락을 이루고 있다. 무려 일곱 근의 지방을 배에 덧댄 채로도 별다른 생각 없이 지내던 나는, 지하철 임산부석을 양보받고서야 다이어트를 결심했다.


드디어, 다이어트 첫날 저녁!

복부비만이라는 적을 향해 칼을 뽑는 듯한 비장한 심정으로 150칼로리라고 적혀있는 떡볶이 맛 컵누들을 꺼냈다. 뚜껑을 뜯어보니 양이 적어도 너무 적었다. 처음부터 이렇게 심하게 달렸다가는 아무래도 밤 열 시쯤 결심이 무너져내려 치킨을 주문하게 될 것 같았다. 이러한 대참사를 막기 위하여 선제적 방어 차원으로 떡볶이 맛에 어울리는 간단한 음식을 찾던 중, 냉동실에서 성에 이불 덮고 잠자고 있는 김말이를 발견했다. 굿, 굿! 얇고 짧으니까 딱 두 개만 먹으면 된다. 그런데 막상 김말이 두 개를 꺼내놓고 보니, 이것 때문에 에어프라이어를 돌리는 것은 심각한 전력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에너지 낭비를 무척 싫어하는 의식 있는 여자다. 기름에 푹 담가 튀기는 것도 아니고, 에어프라이어에 돌리면 머금고 있던 기름기마저 쏙쏙 빠지는데 뭘 이렇게 고민하나?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 김말이 두 개를 더 꺼내 총 네 개를 데웠다.


떡볶이 컵누들 국물에 김말이를 찍어 먹던 중, 김말이는 간장에 찍어먹는 것이 정석이라는 뒤늦은 깨달음이 왔다. 간장에 푹 담가 먹으니 역시 예상했던 바로 그 맛이었다. 하지만 나트륨은 다이어트의 적이 아니던가... 이미 내 몸속에 흡수된 떡볶이 국물과 간장은 나를 침울함에 빠뜨렸으나, 잠시 후 바나나가 나트륨 배출에 도움이 된다는 해법이 떠올라 환호성을 지를 뻔했다. 아침 도시락으로 싸놓은(하지만 깜빡 잊고 안 들고 가 아침에는 빵을 먹었다.) 바나나 토마토 샐러드가 냉장고에 있었다! 락앤락 통을 열고 바나나를 골라 먹다 보니 토마토가 상할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되었다. 토마토는 칼로리가 낮은 대표적인 다이어트 음식이다. 안심하고 토마토를 먹기로 했다. 토마토를 먹자, 토마토의 단짝 친구인 치즈가 생각났다. 다이어트는 뼈 건강을 해친다고 했는데... 가뜩이나 골다공증 위험이 높은 나이인지라 뼈 건강을 챙기기 위해 토마토에 칼슘이 풍부한 치즈를 얹어 먹다 보니 와인이 당겼다. 밤에 마시는 와인 한 잔은 심혈관 질환 예방에 좋다는 뉴스도 본 적이 있다. 나는 이제 심혈관 질환도 신경 써야 할 나이다. 와인을 마시니 크래커가 생각났다. 식후 디저트는 행복을 선사해 준다. 다이어트의 목적도 궁극적으로는 행복에 있지 않은가! 심지어 나는 밥도 안 먹었으니 그 정도 소소한 행복은 누려도 된다. 크래커를 입에 배어 문 순간 탄수화물과의 조우가 어찌나 반갑던지 허겁지겁 먹다가 목이 콱 메었다. (어디까지나 살기 위해) 가까이에 있는 냉장고에서 사이다를 꺼내 벌컥벌컥 마셨다. 사이다를 마시고 나니 입이 너무 달아서 (다이어터로서) 찜찜하길래 (기름에 튀기지 않고 쪄서 만든) 매운 새우깡으로 단 맛을 눌러줬다. 다이어트 식단으로 끼니를 때웠는데 배가 터질 것 같았다. 그때 남편이 손에 뭔가를 잔뜩 들고 들어왔다. “이거, 유명한 제과점 빵들인데 맛 좀 봐.” “어? 나 다이어트 시작했는데?” “이걸 맛보는 건 우리 가족을 위한 일이야. 다양한 맛을 봐야 맛있는 음식도 만들 수 있을 거 아냐?” 남편의 성의와 우리 가족의 더 나은 식탁을 위해 빵을 섭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 역시 비슷한 의식의 흐름, 판이하게 다른 음식의 흐름 가운데 다이어트 폭망의 하루를 보냈다. 팔이 아파서 더 이상 쓰지는 못하겠고 (사연 많은) 야식 사진만 제목 아래 살짝 깔아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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