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커피와 글쓰기

입문 과정

by 허니베리

‘까맣고 쓴 물을 왜 마셔?’


커피 마시는 사람들을 보며 하던 생각이다. 하지만 나 역시 카페에 가면 망설임 없이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대게, 카페에서 가장 저렴한 메뉴이기 때문이었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방법은 이와 같았다. 아메리카노 위에 시럽을 다섯 번 정도 펌프질해 넣어 맛본 뒤, 그래도 쓰다 싶으면 시럽을 콸콸 부었다. 그러면 쓰디쓴 커피는 그나마 목으로 넘길 수 있을 만한 음료로 변했다.

남편은 단 게 먹고 싶으면 캐러멜마키아토를 주문하지 뭐 하는 거냐고 기겁했지만, 사실 나는 단 음료를 무척 싫어한다. 단 걸 마시느니 차라리 쓴 걸 마시는 게 나았다. 하지만 쓴 걸 그냥 들이키지는 못하겠으니, 시럽을 추가하여 단맛은 쓴맛으로, 쓴맛은 단맛으로 달래며 홀짝홀짝 마셨다.


이렇게 커피를 알지 못하는 사람, 즉 ‘커알못’이던 내가 어찌어찌하다 보니 커피를 배우고, 가르치며, 만들고 있다. 커피에 관한 나의 흑역사를 잘 아는 남편은 이를 무척 신기해한다. 그러나 이 사실에 관해 더 신기해하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커피의 세계에 입문한 뒤, 처음에는 ‘라테아트’처럼 시각적으로 화려한 바리스타 기술을 익히는 데 집중했다. 내 손에서 작품이 탄생하는 게 신기했고, 그것을 감탄하며 마시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도 흐뭇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바리스타 지도자 및 감독관 자격 획득, 지도 학생들의 바리스타대회 수상 등 커피 관련된 이력은 화려해졌지만, 그럴수록 왠지 나 자신과 사람들을 속이는 기분이 들었다. 커피를 다루긴 했으나, 커피의 본질에 관해서는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생두와 로스팅 영역에도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교 현장이 그러하듯 업무에 치여 교과연구를 할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고, 틈을 내 로스팅하거나 추출할 때마다 번번이 내가 원하는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당시에는 내가 원하는 결과물이 무엇인지조차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사람들에게 내가 만든 커피를 내미는 게 늘 자신 없고 두렵기까지 했다.

최근에서야 마음이 좀 편해졌는데, 그건 아마도 희미하게나마 내가 추구하는 커피에 대한 개념이 형성되었고, 내 손을 거친 결과물의 특징에 관해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인 듯하다.

하지만 커피는 내게 여전히 오르기 힘든 산이다. 커피에 관한 사람들의 취향이 각기 다를 뿐 아니라, 커피 한 잔을 만들기까지 수많은 변수를 다뤄야 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니 글쓰기 시작 과정도 커피를 시작한 과정과 비슷했다. 글 쓰는 것을 싫어하던 내가 우연히 모 작가의 글쓰기 강좌를 듣고는, 글로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즐거움을 알게 되어 신나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곳저곳에 잡다한 글을 풀어내던 중, 어느 날부터인가 글을 쓰는 이유와 방향성에 관해 고민하기 시작하며 점차 글을 쓰는 것이 부담스러워졌다. 그때, 커피와 편안한 사이로 발전하기까지의 과정이 떠올랐다.

여전히 부족하기는 하나, 나만의 스타일로 로스팅한 커피를 마시며 즐기고, 사람들에게도 나눌 수 있게 되기까지는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로스팅 초기에 태우거나 덜 익혀서 폐기한 원두의 양도 어마어마할 것이다. 글쓰기 초보자로서 좌충우돌하며 새까맣게 타버린 글, 덜 익은 글을 쓰고 있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써 내려간다면 언젠가 글로 인해 스스로 위안을 얻고, 사람들도 내 글로 인해 즐거움과 쉼을 누리는 날이 오지 않을까.


커피와 글쓰기. 그 오묘하고 깊은 매력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울 듯하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