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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를 위한 비장의 요리

곡물 샐러드

by 허니베리



나는 지금 다이어트를 위한 음식을 먹고 배가 터질 것 같아 숨을 헉헉대며 글을 쓰고 있다. 그러나 내일 아침이면 뱃살이 쏙 들어간 새로운 나를 만날 것이다. 자, 지금부터 그 이유에 관해 밝혀보겠다.




조금 전 내가 먹은 ‘곡물 ’. 이것은 건강한 다이어트를 위한 초특급 비법 요리다.

재료는 다음과 같다.

- 불린 귀리

- 렌틸콩

- 키드니빈스(강낭콩)

- 캔옥수수

- 방울토마토

- 당근

- 양파

- 라디치오(적상추)

- 청상추

- 아보카도

- 정향

재료를 써놓고 눈으로 읽기만 해도 건강해지는 느낌이 든다.

주재료인 귀리는 하루 전에 불려 끓는 물에 20분 삶아 찬물에 헹군다. 다이어터라면 누구든 알 것이다. 귀리의 장점을. 귀리는 탄수화물이지만 칼로리가 정말 낮고, 천천히 흡수되기 때문에 혈당 수치가 갑자기 올랐다 떨어지는 증상을 예방할 수 있다. 또한 식이 섬유도 다량 함유되어 있어 변비를 예방해 준다. 이 외에도 귀리의 효능은 많고 많지만, 지면을 아끼기 위해 줄이겠다. 다이어터로서 일단 믿고 먹는 귀리.

렌틸콩은 비린내를 잡기 위해 양파, 정향, 당근, 타임 등을 넣고 15분 정도 삶아 식힌다. 여기에 통조림 형태로 파는 삶은 강낭콩 추가하여 단백질과 고소함을 더한다.


마지막으로 아보카도, 토마토, 상추 등 식이섬유, 비타민, 미네랄이 풍부한 과일과 각종 채소를 먹기 좋게 잘라 넣으면, 영양제가 필요 없는 건강식 다이어트 음식이 완성된다.

아, 아직 완성이라고 하기에는 중요한 것이 빠졌다. 그것은 바로 렌치드레싱. 솔직히 말해 다이어터로서 마요네즈 베이스의 소스를 사용하는 게 살짝 망설여지긴 했다. 하지만 그때, 그동안 구입해 놓고 맛없다고 버린 수많은 다이어트 식품이 떠올랐다. 일단, 음식이란 자고로 맛있어야 입에 들어간다. 렌치 소스를 안 뿌린다면 앞서 나열한 저 귀한 음식도 몇 입 먹지 못하고 버릴 게 뻔하다. 이렇게 생각하니, 렌치소스는 다이어트 음식을 먹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였다. 게다가 소스에 들어가는 다진 양파와 마늘, 홀그레인머스터드, 이태리안파슬리, 후추 등은 왠지 마요네즈의 지방을 분해해 줄 것 같다. 관련 자료를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느낌이 그러하다.




눈에 보기 좋은 음식이 먹기에도 좋다고, 플레이팅도 예쁘게 해 보자.


일단, 상추를 맨 아래에 깔았다. 좀 많아 보였지만, 상추는 온도가 올라가면 숨이 죽으니까, 뱃속에서 숨이 죽겠지. 그러면 눈으로 보이는 양이 아닌, 줄어들 양으로 계산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다음으로는 주재료인 귀리. 귀리는 밤 열한 시만 되면 배고파서 몸부림치는 내게 포만감도 안겨주고, 풍부한 식이섬유가 장에 남아있는 찌꺼기도 쓸어내려 줄 테니 한 주먹 가득 담자.

렌트콩, 키드니빈스, 방울토마토, 아보카도, 옥수수가 담긴 용기를 열어보았다. 실은, 샐러드 재료를 지난 토요일에 잔뜩 준비해 놓고 3일째 주야장천 먹는 중인데 재료들을 섞어서 꾹꾹 눌러 담아놓았더니 물러지고 물기도 많이 생겼다. 아무래도 오늘 지나면 상할 것 같다. 아보카도 재배를 위해 얼마나 많은 물을 쓰는데, 이걸 그냥 버리는 것은 엄청난 물을 버리는 것과 같다. 나는 음식도 음식이지만 물 낭비를 무척 싫어한다. 결국 이걸 오늘 다 해치우기로 결심했다. 이 보관 용기에 담긴 재료만으로도 한 끼가 넉넉히 해결되고도 남을 것 같지만, 이것 때문에 담아놓은 상추와 귀리를 버릴 수도 없어 모두 함께 섞었다.

마지막으로 렌치 소스. 원래는 딱 한 스푼만 넣으려고 했다. 그런데 재료량이 많다 보니 한 숟가락으로는 비벼지지가 않았다. 비빔밥에 고추장을 티스푼으로 한 번 떠 넣은 느낌? 결국 고봉으로 네 스푼 반을 넣었다. 여전히 소스가 부족한 감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다섯 스푼 넣으려다가 반 스푼 덜어내었다. 다소 부족감을 느끼더라도 과함을 지양하며 덜어내는 삶. 왠지 철학자가 된 느낌이다.



그릇에 수북하게 쌓아 올린 샐러드를 보니 먹기도 전에 배가 불러왔다. 하지만, 나는 건강한 다이어트를 위해 기필코 이 음식을 먹어야만 한다. 끈기를 갖고 천천히 끝까지 먹었다. 중간중간에 그만 먹고 싶은 유혹이 찾아왔지만, 아보카도를 기르며 사용했을 물을 생각하며 꾸역꾸역 먹었다.

드디어 샐러드를 다 먹었다. 멀찍이 앉아서 내가 먹는 모습을 유튜브 먹방 구경하듯 지켜보던 남편이 말했다.

자기, 꼭 코끼리 같다.


코끼리처럼 많이 먹기는 했으나, 살찌는 재료는 거의 없었으니, 내일이면 분명 배가 쏙 들어갈 거라고 큰소리쳤다. 근데, 시간이 갈수록 숨 쉬는 게 점점 더 힘들어진다. 배속에서 귀리가 붇고 있는 걸까. 하지만, 내일 아침이면 나는 날씬해진 나를 만날 거다. 암. 일단, 소화제 좀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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