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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니베리 Jun 16. 2023

효도(하고 싶은) 여행


 지난겨울, 부모님, 아이와 함께 여행을 다녀왔다. 남편은 일 때문에 동행하지 못했다.


 “이번 여행지는 워터파크라고, 물놀이하는 곳인데 노천탕도 있어요. 코로나 때문에 온천에 한동안 못 가셨잖아요. 월요일이라 한산할 테니 편히 즐기실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워터파크에는 콩나물시루에 담긴 콩나물처럼 사람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알고 보니, 하필 이날은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가 ‘권고’로 전환된 날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그 기쁨을 만끽하려는 사람들이 다 모여든 것 같았다. 노천탕에도 반 벌거벗은 이들이 투명한 우무질 속 개구리알처럼 우글우글 모여 있었다. 그나마 인원이 적어 보이는 탕으로 부모님을 안내하고 아이와 물놀이 장소로 향했다.


 “다섯 시에 실내 수영장 시계탑 아래에서 뵈어요.”




 다섯 시. 약속 장소에서 한참을 기다려도 부모님이 오지 않았다. 다들 핸드폰을 사물함에 놓고 왔기에 부모님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다행히 실내 수영장 안 ‘남자 탈의실ㆍ사우나실’ 입구에서 엄마를 발견했다.


 “왜 여기 혼자 계세요?”


 “이 양반이 사우나 10분만 하고 오겠다고 들어가서는 30분 넘도록 나오시질 않네. 여기 남자 탈의실 앞에서 만나기로 했거든. 혈압도 높은데....”


 얼른 할아버지 찾아 모시고 나오라고 아이를 사우나실로 들여보냈다. 한참 후 아이가 혼자 나오며 할아버지가 안 보인다고 했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다급히 안전요원을 붙들고 사우나실에서 아버지를 찾아달라고 요청했다. 이번에도 홀로 나타난 안전요원을 보자 가슴이 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곧바로 아버지를 찾는 안내방송을 두세 차례 했으나 감감무소식이었다. 노인네가 수영복만 걸친 채 얼마나 춥고 막막할까.... 시간이 흐르며 눈앞도 노래졌다.


 오들오들 떠는 어머니에게 비치타월을 둘러준 뒤, 아버지와 엇갈릴 수 있으니 탈의실 앞을 떠나지 말도록 당부하고 안내데스크로 올라갔다. 직원에게 아버지를 찾아달라고 부탁하는데, 한 사람이 다가와 물었다.


 “혹시 눈 부리부리하고 키 큰 할아버지 찾으세요?”


 “네, 맞아요!”


 “그분, 저기 바깥 탈의실 앞에서 가족 찾고 계세요.”


 부끄러움도 잊고 수영복 차림으로 매표소 부근 탈의실 입구로 달려갔다. 아버지가 거기 서 있었다. 붐비는 장터에서 엄마 치맛자락 놓치고 홀로 두리번대는 아이 같은 모습이었다.


 “왜 여기에 계셨어요?”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지며 눈물이 핑 돌았다.


 “탈의실 앞에서 만나기로 했단 말이다, 네 엄마랑.”


 아버지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아버지와 티격태격하면서도 속으로는 ‘감사합니다.’를 연거푸 읊조렸다.




 씻고 짐을 챙겨 워터파크 옆 갈빗집에 들어갔다. 다들 아무 말 없이 숯불 위에 올린 고기만 바라보았다. 고기를 뒤집으며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가면 아버지 인지검사부터 해야겠어. 하지만 붉은 고기의 색깔이 갈색으로 변해가며, 생각도 바뀌었다. 누구든 이렇게 복잡한 곳을 처음 방문하면 혼란스러울 거야. 나는 자주 가는 지하철 환승로에서도 뱅글뱅글 돌며 헤매곤 하잖아. 그리고 지금 당장 아버지에게 검사받자고 하면 장대처럼 꼿꼿한 자존심이 꺾여 없던 마음의 병도 올 수도 있다. 어쨌거나, 오늘 마음고생으로 십 년은 늙어버린 것 같았다. 당분간 부모님 모시고 여행은 가지 말아야지. 휴,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부모님이 선뜻 젓가락을 들지 못하고 있었다.


 “고기 잘 익었으니 드세요.”


 아버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고생 많다만... 이렇게 딸, 손주랑 바깥바람도 쐬고... 좋구나. 고맙다....”



 

 어린이날 연휴, 부모님을 모시고 아버지 고향으로 여행을 떠났다. 화장실 때문에 휴게소마다 들러야 하는 아버지, 약을 안 챙겨 와 시골 병원에서 주사까지 맞은 어머니. 아이가 커가며 손이 적게 가는 대신, 부모님은 반대로 점점 돌봄의 손길이 필요해진다. 나도 모르게 신경이 예민해지고 자꾸만 울고 싶어졌다. 아, 집 떠나면 고생인데 내가 왜 또....


 비가 쏟아져서 계획에 없던 온천에 갔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던 엄마가 갑자기 서둘러 나가려고 했다.


 “조금만 기다렸다가 저랑 같이 나가요. 몸 건조해서 가려우시다며. 바디로션 발라 드릴게.”


 하지만 엄마는 내 말을 안 들으시고 휙 나가버렸다. 엄마의 급한 성미는 나를 늘 초조하게 한다. 별일 아닌데도 속이 확 상했다. 샤워실 문을 열자, 바깥에 엄마가 마른 수건을 들고 서 있었다.


 “네 수건 젖었잖니. 이걸로 닦아라.”


 엄마가 건넨 수건으로 몸을 닦는데, 이상하게도 마음속 습기까지도 보송보송하게 닦였다.


 “엄마. 다음엔 어디로 놀러 갈까?”


 갑자기 살갑게 구는 딸의 얼굴을 바라보는 엄마의 눈에 잠시 의아함이 서렸다가 이내 얼굴 가득 온화한 미소가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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