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가 부드럽게 정차했다. 검은색 옷에 같은 색 마스크를 착용한 여자가 버스에 올라탔다. 머리카락이 어깨를 타고 등으로 흘러내리며 찰랑거렸다. 여자의 앳된 얼굴을 확인한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지난밤 밤새워 글을 쓰면서 참아내던 눈물이었다.
이 젊은 여성 역시 나와 같은 정류장에서 내렸다. 2023년 7월 22일 토요일, 종각역.
종각역에는 약 5천 명 정도의 교사가 운집했다. 한 신규 교사의 죽음에 관한 진실 규명을 요구하고 무너진 교육계의 현실에 관해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였다.
발령 2년 차. 일반적으로 학생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 열정으로 빛나는 시기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근무지에서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불거진 학부모의 갑질 의혹. 그리고 수면에 떠오른 교권 침해. 이 소식을 들은 교사들은 애통해하며, 학교와 교육 당국이 보이는 태도를 보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녀가 겪은 일은 경험하기 힘든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경중의 차이는 있으나 교육 현장에서 대다수의 교사가 겪고 있는 교육계의 현실이기 때문이었다.
몇몇 교사 커뮤니티와 교원단체를 통해 교사들의 교권 침해 관련 제보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 역시 며칠을 망설이다가 노트북 전원을 켰다.
어디서부터 말을 시작해야 할까. 쓸 말이 너무 많아서 어디서부터 글을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기억을 헤집는 순간, 내면의 고통을 막기 위해 힘겹게 쌓아 올린 둑이 터져버릴까 봐 염려스럽기도 했다.
최대한 감정을 배제한 채 교직 경력 24년 동안 있었던 대표적인 사건들에 관해서 나열하기 시작했다. 학부모, 학생, 관리자에게 당했던 폭행, 폭언, 추행, 갑질 등. 사례가 너무 다채로워서 분류하기조차 힘들었다. 줄이고 줄인 게 A4 네 장. 그나마도 새벽이 되어 눈을 붙이기 위해 글을 억지로 마무리한 것이었다.
나에게 늘 화가 나 있던 학부모가 있다. 수시로 교실에 찾아와서 나를 ‘미친*’이라고 불렀다. 숙제가 맘에 들지 않아서, 선물 받기를 거절해서, 생긴 게 특수교사 같지 않아서 등 그 학부모가 내게 화난 이유는 실로 다양했다. “교육부 **한테 전화할까 하다가 선심 쓰는 셈 치고 찾아왔어요. 우리 애 아빠 뭐 하는 사람인지 알지?” 이 말도 자주 했는데, 이십 대의 나는 지은 죄가 없음에도 내 앞에 서 있는 학부모도, 진위도 확인 안 되는 배경도 두렵게만 느껴졌다. 신규 시절 내 모습을 떠올리며 유명을 달리한 선생님이 겪었을 두려움과 스트레스를 감히 그려본다.
학부모 상담과 민원 처리는 주요 업무 중 하나이다. 이 업무는 밤이고 낮이고 시도 때도 없이 파고들어 사생활과 공적 영역의 경계를 허물고 파괴했다. 얼마 전부터 교사의 핸드폰 번호를 노출하지 않는 학교들이 생겼지만, 장애를 지닌 아이를 통한 소통이 어렵다는 명분으로 특수교사의 핸드폰 번호는 개인정보라는 인식에서 제외된다. 인생 힘들다고, 심지어 외롭고 심심하다고 늦은 시간 걸려 오는 학부모 전화가 이젠 놀랍지도 않다. 오죽 힘들면 나에게 이럴까, 나마저 받아주지 않았다가 혹시라도 잘못된 선택을 하면 어쩔까 싶어 모질게 끊지 못하다가 내 마음에도 습기가 차오르며 곰팡이가 피었다.
손등에 난 여러 개의 손톱자국, 팔뚝 위에 물린 이 자국, 싸움 말리다가 인대가 손상되어 어색해진 걸음걸이, 날만 궂으면 찾아오는 갈비뼈 통증 등 내 몸에는 학생들이 남긴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학생이 내 몸에 소변을 갈길 때에도, 지나가다가 아무런 이유 없이 학생에게 뺨을 맞고도, 머리채를 잡힌 채 10여 분간 끌려다니면서도, 복부를 가격당해 유산의 위험에 처했을 때도 내 몸을 보호하기보다는 학생의 안위를 먼저 살폈다. 그 와중에도 학생의 돌발행동을 예견하거나 통제하지 못하는 무능한 특수교사로 낙인찍힐까 봐 두려움까지 떠안았던 나는, 아니 우리 특수교사는 사회에 의해 신에 준하는 능력을 갖출 것을 암묵적으로 강요받고 있었다.
오래전, 국가 기관 관계자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나는 특수교사가 처한 각종 위험한 상황에 관해 알리며 말했다. "특수교사는 교권에 앞서 인권조차 보호받지 못하다고 여겨질 때가 많습니다. 생명의 위협을 느낄 때도 있고요. 이에 관한 대처 방안 마련을 요구합니다." 그가 답했다.
특수교사잖아요?
희생정신으로 버텨내십시오.
물론 기관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닌, 한 개인의 의견이었을 것이다.
이전에 나이로 치자면 성인인 학생이 인터넷상에, 나에 관한 매우 심각한 내용의 허위 사실을 유포한 적이 있다. 이때도 나는 학생에게 잘못을 알리고 주의만 주었을 뿐, 이 사건을 덮을 수밖에 없었다. 학생과 차마 법정에 다툴 수 없었고, 학교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싶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이때부터 나의 어지럼증이 시작되었다. 지금은 그때의 일 처리를 후회한다. '선생이 어떻게 그럴 수 있니?'와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교사 내면의 갈등과 외부의 압력이 교사와 학교를 무너뜨리고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목적지인 종각역에 다다랐다. 집회에 참여하는 교사로 추정되는 젊은 여성을 따라 버스에서 내리며 그녀의 뒤통수에 대고 소리 없이 사과했다.
‘학교 현장에서 어려운 일을 겪을 때마다, 개인의 일로 치부한 어리석음이 부끄럽습니다. 교사의 권리는 고사하고 인권의 침해가 일어나는 현장에서도 용기가 없어서 잘못을 잘못이라고 말하지 못하고, 대처 방법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며 이어졌고, 새로운 세대까지도 고통이 전가되었습니다. 후배들의 아픔, 그리고 죽음에 우리 선배들의 잘못이 큽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나만 착한 사람처럼 가장하며 살지 않고, 잘못을 잘못이라고 말하고, 잘못된 것을 고치기 위해 용기 내겠습니다.’
그녀와 나는 검은 무리를 향해 묵묵히 발걸음을 옮겼다.
이 글을 쓴 뒤, 그동안 현장에서 만난 사랑하는 학생들과 자녀를 위해 헌신하는 여러 학부모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이 글이 부디 글의 내용과 무관한 분들에게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고민으로 며칠을 고민했지만, 글을 내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특수교육 현장을 병들게 하는 어두움을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이 어두움 속에서 저를 포함한 많은 특수교사의 몸과 마음이 상하고, 꺾이고 있습니다. 청소년기부터 장애 학생들을 가르치는 특수교사가 되는 꿈을 품고, 이를 위해 특수교육과에 진학하고, 특수교사로서 근무하는 지금까지 때로는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며, 때로는 장애에 관한 사회적 편견에 맞서며 이 길을 걸어온 저와 동료들입니다.
최근 수면 위로 드러난 일련의 사건들은 우리의 현재와 과거를 비통한 심정으로 돌아보게 했습니다. 쏟아져 나오는 뉴스 기사를 접하며 절로 모르게 탄식이 새어 나오고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오랜 시간 꼭꼭 감추며 지내왔던 저의 상처들을 찬찬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우리가 겪는 아픔은 당연시 치부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아픔을 아프다고 표현하지 못하고 지내온 세월이 길어서인지, 내 상처를 인정하는 것조차 어색합니다.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크고 작은 아픔, 상처, 고통에 관한 이야기가 동료들에게서 봇물 터지듯 흘러나옵니다. 그 소식에 눈물은 흐느낌이 되고, 흐느낌은 통곡으로 변해갑니다.
하지만, 저희는 곧 울음을 멈추고 일어설 것입니다. 쉽지 않은 길을 가기로 결심했던 당시의 다짐을 기억하며, 앞으로도 우리에게 맡겨지는 학생들을 위해 힘을 내겠습니다. 밝은 땅 위에 두 발을 단단히 딛고 환한 미소로 학생들을 맞이할 수 있도록 자신의 상처를 돌아볼 뿐 아니라, 교육의 주체들과 함께 상생의 길을 찾아가고 싶습니다. 이것이 어두움과 상처를 더이상 가리지 않고 밝히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