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어디가?
출근길. 교실을 향해 올라가려는데, 어디선가 허스키한 남자아이 목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주위를 살펴보니 낮에 뜬 달 같이 희멀겋고 파리한 얼굴이 계단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줌마, 어디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아이가 다시 물었다.
“교실 가는 길인데, 넌 누구니?”
“나, 승철이.”
“승철이? 승철이는 여기 무슨 일이니?”
“전학 왔어, 아줌마.”
“나 아줌마 아니고, 선생님이야.”
당시 미혼이었던 나는 아줌마라고 부르는 소리에 기분이 상할 법도 했지만, 아이의 천연덕스러움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우리 학교는 청각장애 학교지만 음성언어로 소통할 수 있는 아이들도 있다.
전학 온 승철이도 보청기를 착용하면 말소리를 잘 이해했으며, 말도 꽤 잘했다. 상황 판단에 어려움이 있고, 적절한 사회적 상호작용 방법을 잘 모르는 듯했으나, 밉지 않은 녀석이었다.
다음날부터 출근할 때마다 계단 위에 서서 나를 맞아주는 승철이와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다.
“아줌마, 어디가?”
"승철이 안녕? 선생님은 교실 가지. 앞으로 선생님이라고 불러라.”
“아줌마, 안녕?”
“승철이도 안녕? ‘선생님, 안녕하세요?’라고 해야 한다.”
“아줌마, 어서 와.”
“승철아, 나 아줌마 아니라니까. 선생님이라고 불러!”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아픈 몸을 이끌고 출근했다. 하루 병가 내고 푹 쉬고 싶었지만, 동료들과 아이들에게 피해주기 싫어서 젖은 솜이불처럼 무거운 몸을 이끌고 출근했다.
교문에서부터 여러 사람과 인사 나눴으나 그 누구도 내 상태를 눈치 채지는 못 했다.
교실로 올라가려는데 역시나 승철이가 계단 위에 서서 나를 맞아주었다. 조금은 다른 멘트로 말이다.
아줌마, 어디 아파?
승철이의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선생님 어디 아파 보이니?”
승철이가 두 팔을 벌려 계단을 막으며 말했다.
“집에 가. 가서 쉬어.”
시간이 흘러 승철이가 졸업한 후에도 한동안 출근길 아침마다 습관적으로 계단 위를 올려다봤다.
이번주 내내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업무량이 많아 늦은 시간까지 홀로 남아서 지끈거리는 머리를 두드리며 쌓인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갑자기 교무실 문이 쓱 열렸다. 문틈 사이로 하와이안 셔츠를 멀끔하게 차려입은 청년이 얼굴을 빼꼼 들이밀었다.
“어떻게 오셨나요?"
경계심을 품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는 고개를 앞으로 쭉 빼고 내 얼굴을 들여다보더니 감회에 젖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 진짜 아줌마? 왜 혼자 일해?
아, 이 말투를 어디에서 들어봤더라? 머릿속을 휘저어 그가 10여 년 전 졸업한 승철이었음을 기억해 냈을 때, 이미 승철이는 눈앞에서 사라진 뒤였다. 황급히 복도로 나가 보았으나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승철이의 찰나 같은 방문에, 일하는 내내 스멀스멀 올라오던 서러움이 싹 가셔 버렸다. 녀석, 신이 보낸 위로의 전령인가?
※ 졸업생 이름은 가명을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