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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니베리 Aug 13. 2023

빨간 구두

젊은 엄마의 시선으로 그려본 그날의 선물


 내가 여덟아홉 살 무렵이다. 평상시와 다름없이 친구들과 신나게 뛰어놀고 집으로 돌아온 어느 날이었다. 문구점 앞에 서 있던 엄마가 내 손목을 잡고 가게 안쪽에 붙어있는 단칸방으로 데려가더니 나를 문턱에 앉혔다. 당시, 엄마는 비좁고 컴컴한 문방구를 운영하며 생계를 꾸리고 있었다.

 
 “엄마가 눈 뜨라고 할 때까지 절대 눈 뜨면 안 된다.”
무슨 일로 그러시는 걸까. 엄마에게 혼날 만한 일이라도 한 걸까. 무섭고 걱정되면서도, 약간 들뜬 듯한 엄마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나쁜 일은 아닐 거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바스락바스락. 비닐봉지에서 뭔가를 꺼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궁금해서 견디기 힘들었다. 눈을 떠볼까. 하지만 어린 시절 나는 엄마가 동물원에 있다는 호랑이보다도 무서웠다.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더 꾹 감았다. 잠시 뒤, 엄마가 내 앞에 꿇어앉았는지 정강이에 엄마의 머리카락이 스치며 닿는 느낌이 들었다. 곳곳에 숨어 나를 주시하고 있을 생쥐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아주 가느다랗게 실눈을 떴다. 내 턱 아래로 엄마의 검고 풍성한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왔다. 엄마와 눈이라도 마주칠까 두려워 얼른 다시 눈을 감았다. 가슴이 콩닥거렸다.
 
 “눈 꼭 감고 있지?”
 “응, 아무것도 안 보여요.”
 가슴이 더욱더 세차게 뛰었다.
 
 엄마가 내 신발을 벗겼다. 타이즈를 신고 있는 발 위로 엄마의 투박한 손이 느껴졌다. 문구점 일로 인해 엄마의 손은 사포보다 더 까칠까칠했다. 갈라져서 벌어진 피부 사이사이에는 짙은 회색빛 먼지가 잔뜩 끼어있었고, 손 곳곳에는 종이 또는 커터 칼에 베인 상처 사이로 피가 흐르거나 딱지가 져 있었다. 엄마의 거친 손이 내 얼굴을 쓰다듬으려 할 때면 따가운 느낌을 피해 반사적으로 얼굴을 돌려 피했고, 곧이어 죄책감이 몰려오곤 했다.
 
 엄마는 신발을 벗긴 후 재빠르게 다른 신발을 신겨주었다. 바꾸어 신겨준 신은 맞춤처럼 발에 딱 맞았다.
 
 “자, 이제 눈을 떠봐.”
 이제는 눈을 떠도 되는데, 눈앞에 펼쳐질 광경에 실망할까 봐 쉽사리 눈을 뜰 수 없었다. 전년 크리스마스이브. 분홍색 드레스를 입고 은빛 왕관을 쓴 공주 인형을 바라보며 하나님뿐 아니라 엄마도 들수 있도록 공주 인형을 갖고 싶다고 큰 목소리로 간절히 기도했건만, 크리스마스 아침에 머리맡에 놓여있던 것은 쥐가 포장 박스를 뜯고 들어가 똥을 잔뜩 누팔 수 없는 먼지투성이 인형이었다. 어느 날, 엄마가 분홍 원피스를 내밀었다. 어깨에 커다란 뽕이 고 치맛단이 풍성한 게 갖고 싶던 공주 인형이 입 옷 같았다. 얼른 그 옷으로 갈아입고 놀이터에 나갔다. 아이들이 내 곁으로 다가와 옷을 만지며 살펴보자,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한 언니가 자기가 예전에 입던 옷이라고 했다. 나는 그렇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엄마가 사 온 옷이라고 우겼다. 언니는 원피스 뒤에 리본을 덧댄 자리가 있을 거라며 내게 다가와 리본을 들췄고, 덧댄 흔적을 확인한 아이들은 낄낄대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와 비슷한 일들이 반복되며, 나는 초등학생이 되기도 전부터 내게 좋은 것이 주어질 거라는 기대 따위는 버렸던 터였다.
 
 ‘이번에는 누가 준 신발일까.’
 눈을 뜨고 아래를 내려다봤다. 두 발에는 반짝이는 빨간색 구두가 신겨있었다. 양쪽 끝에는 커다란 리본도 달려있었다. 흠집이 하나도 없는 게 새 신발임이 틀림없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 내게 일어난 것이다! 동화 속 빨간 구두 아가씨처럼 비좁은 가게 안에서 팔짝팔짝 뛰고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었다. 생일에도 선물을 받아본 기억이 없기에, 아무런 이유도 없이 새 구두를 선물로 받은 이날은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다.
 



 얼마 전 엄마와 그 빨간 구두에 관해 대화를 나눴다. 엄마는 그것을 산 이유에 관해서는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구두의 생김새며 특징에 관해서는 생생하게 떠올리며, 내가 구두를 신고 뛰어다니는 모습이 얼마나 예뻤는지를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내 아이가 내가 구두 선물을 받았던 나이만큼 자라자, 그날의 이벤트를 젊은 엄마의 시선으로 그려보게 되었다. 매일 끼니를 걱정해야 했던 삼십 대 초반의 여인은 아이에게 왜 새 구두를 사줬을까. 가장 좋아하는 과일인 홍옥처럼 빨갛고 반짝이구두에 홀렸던 것일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돈을 지불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망설임이 있었을까. 금고에 있는 잔돈을 싹싹 긁어모으고, 금고 아래에 넣어둔 비상금까지 뺐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신발을 품고 와서는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신발을 숨기고, 문 앞에서 서성대며 아이가 집에 들어오기를 기다렸을 엄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 모습에 반가워 어쩔 줄 몰랐을 테고, 아이 손목을 잡아서 앉히고, 눈을 감기고, 신발을 꺼내 직접 신기며 몹시 설렜을 것이다. 행여나 맞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마음 졸였다는 엄마의 낭랑한 목소리가 기억에서 되살아났다.



 내 어린 시절이 이러한 행복한 기억으로 풍성했으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그 반대였다. 가난과 고된 삶으로 인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어린 자녀에게 폭력과 폭언을 일삼곤 했던 젊은 시절의 엄마. 오랜 세월, 그러한 엄마에 관한 원망스러움이 해결되지 않아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그 마음은 내 머리에 서리가 앉기 시작면서부터 들을 부둥켜안고 울부짖던 젊은 여인에 대한 안쓰러으로 변해갔다. 이제는 할 수만 있다면 타이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그의 어깨를 끌어안고 토닥고 싶다. 그녀가 아이들을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는 여유를 도록 그녀의 일 돕고 싶다. 갈라져서 피 나는 손과 발에 크림 발라주고, 하늘거리는 블라우스 뾰족구두내어주며 잠시 봄구경 하고 오라고 부드럽게 등을 떠밀고 싶다. 하지만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기에, 여전히 거친 엄마 손에 크림 발라 드리고, 굽은 몸을 감싸줄 외투 사드리고, 걷기 편한 신발도 사드리며 과거와 현재 두 여인을 위로한다. 나를 위해서는 반짝반짝 빛나는 예쁜 신발을 사 신고 엄마 앞에서 멋을 내보기도 한다. 


 해맑게 자라나는 손주를 보며 엄마는 내가 자랄 때 지 못한 것들과 주어서는 안되는 것을 주었던 과거를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힌다. 나는 결심한다. 때론 아이가 되어 등을 토닥이는 엄마의 손길 아래 고요히 머물고, 때론 내 긴 팔로 작아진 엄마의 어깨를 끌어안는다. 엄마 앞에서 아이와 어른의 모습으로 바삐 오가는 사이, 봄햇살이 내 마음 속 모퉁이를 비추며 그늘진 구석에 쌓인 얼음덩어리가 서서히 녹기 시작한다.



이미지 출처: Freepik(작가 master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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