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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니베리 Aug 09. 2023

소노인(小老人)

부자연스러움을 통해 자연스럽게 나이 들기



 언젠가부터 앉았다 일어설 때마다 나도 모르게 ‘끙’하고 신음이 흘러나왔다. 일상생활동작 수행 시 정확도와 속도가 예전 같지 못하다. 깨알같이 작은 글씨는 보이지 않는다. 침침한 눈으로 아들의 손톱을 깎아주다가 손톱 아래 살점까지 자르고 말았다. 아이의 여린 피부에서 빨간 피가 흘렀다. 스스로를 책망하며 나도 모르게 ‘중로(中老)’라는 표현이 튀어나왔다. 중로, 즉 중노인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중노인(中老人): 젊지도 아니하고 아주 늙지도 아니한 사람. 또는 조금 늙은 사람.


 당시 일곱 살이던 아들이 중로의 뜻에 관해 묻더니 정색하며 단호한 어투로 말했다.

 “엄마, 그건 아니지.”

 아들아, 고맙다. 너를 위해서라도 젊게 살아야지.

 아들이 말을 이어갔다.


엄마는 ‘소노인’이 아닐까?
40대 초반한테 노인이라는 말은 좀 그렇고,
40대 중반부터 50대까지는 소노인,
60~70대는 중노인,
80대 이후부터 대노인.
100세 시대니까.


 왠지 모를 배신감이 느껴지면서도 아들의 말은 이상하게 일리가 있었다. 아들의 연령 분류에 의하면 나는 소노인이기에 몸 이곳저곳이 삐걱대기 시작하나 보다.




 학교에서 기자재 하나가 고장 났다. 부품 교체를 위해 모델명을 읽으려고 했는데 글씨가 작아서 도저히 읽을 수 없었었다. 나이로 치자면 아래로부터 서열 3위인 Y 선생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거 보이시나요?”

 Y 선생 얼굴 앞에 물건을 들이 내밀자, 선생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뒤로 젖혔다. 내가 잠시 잊고 있었다. 이곳은 30대 막내를 제외하고는 다들 사물과 거리 두기를 시행하고 있는 집단이었다. 코로나가 아닌 노안 때문이다. Y 선생은 눈과 부품의 거리를 최대한 멀리한 채 쓰인 글씨를 살펴봤으나 보이지 않는 듯싶었다. 그는 결국 안경을 벗어 이마에 걸치고 부품을 코앞에 놓고 열심히 들여다보았지만 문자를 읽는 데 실패했다.


 그때, 올해 환갑을 맞이한 K 선생이 등장했다.

 “뭣들 하고 계셨소?”

 “부품 속 글자가 안 보여서요. 모델명을 알아야 같은 걸로 살 수 있을 텐데요.”

 우리도 안 보이는 글자가 보일까 싶어서 K 선생을 뒤로하고 젊은이를 찾아 나섰다. 그때, K 선생께서 짧고 강하게 외쳤다.

 “잠깐!”

 “네?”

 “아따, 사진을 찍어서 구글로 검색하면 될 것을...”

  K 선생의 아이디는 '장어63', 즉 본인을 60대에 들어선 남성이라 천명하고 있다. 하지만, 실생활에서는 장어63 님이 제일 젊은이(처럼 사는 )였다.


 '장어 63' 님의 아이디어에 감탄하며 부품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다초점 안경을 낀 채 카메라를 바라보자니 초점을 맞추기 힘들고, 손도 흔들리는 통에 선명한 사진을 찍기 어려웠다. 여러 차례 시도한 끝에서야 글씨를 변별할 수 있는 사진을 찍어 구글 검색으로 물건을 구입할 수 있었다.




 '노화'는 청년기를 지난 사람이라면 누구든 겪을 수밖에 없다. 사람마다 시기나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신체가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상태로 변하기 때문에 달라진 감각으로 살아가기 위한 훈련과 적응 과정도 필요하다. 내 경우, 노안을 극복하고자 다초점 안경을 맞췄더니, 위아래 및 좌우 시선 처리하는 방법을 새롭게 배워야 했다. 내가 아들의 표현대로 대노인이 된다면 보청기를 착용하게 될 가능성도 높다. 일반적으로 노화로 인해 청력도 약해지기 때문이다. 그때는 보청기를 통해 듣는 소리에도 적응해야 할 것이다. 물론  K 선생처럼 지식과 지혜를 활용한다면 이러한 적응 과정은 보다 용이할 테지만 말이다.


 인간이 성장을 멈춘 이후로 죽는 날까지 경험하는 ‘자연스러운 노화’는 이토록 끊임없이 ‘부자연스러움’을 극복해 나가며 획득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부자연스러운 부대낌을 통해 자연스럽게 늙어가며 순리에 역행하지 않는 매끄러운 하루를 살아냈다.





이미지 출처: Freepik(작가 pikisupersta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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