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원치 않은 것을 강요받았던 기억
반지하(半地下) [명사] 절반쯤이 지면 아래로 파고 들어가 있는 공간.
2020년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4관왕 수상을 했다. 이 광경은 확실히 이례적인 일이라 텔레비전, 라디오, 신문, 인터넷 등 언론매체는 바빴고, 덕분에 온 세상이 <기생충>으로 물들었다.
그중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바로 ‘반지하’.
이 영화가 아카데미 4관왕을 수상하자, 외신들은 우리나라의 반지하에 관심을 가졌다. 그중 가장 나의 눈길을 끈 기사는, 영국 BBC에서 ‘반지하의 삶’ 콘텐츠로 인기를 끌고 있는 한 유튜버와 인터뷰를 가진 것이었다. 누리꾼들은 이를 보고 우스갯소리로 ‘기생충 코인 탄 반지하 유튜버’라 불렀지만, 나는 마냥 웃을 수 없었다.
2011년, 무더운 여름. 친구 승현이와 함께 신촌 하숙촌 골목골목을 다니며, 20살 우리의 로망을 채워줄 공간을 찾아 나섰다. 지방에서 올라와 혼자 사는 서울살이에 무료함을 느낀 탓이었다.
얇은 티셔츠는 땀에 젖어 점점 농도가 짙어졌지만, 좀처럼 마음에 드는 곳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집 구하기에 지친 우리는 그늘진 신촌의 언덕, 시멘트 바닥에 주저앉아 땀을 식혔다.
‘아 로망의 크기가 클수록 비용도 그만큼 커지는구나’를 느낀, 여름 볕처럼 맑고, 쨍한 20살의 우리. 그때 언덕에서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하 숙’ 나는 승현이와 마지막으로 저 하숙집을 확인하기로 했다.
땀에 젖어 무거운, 그 당시 유행하던 뉴발란스 운동화를 질질 끌고, 우린 하숙집에 들어섰다. 한껏 입가에 주름을 지어, 우리를 반기는 주인 노부부. 점점 그늘지는 주인 할아버지 얼굴. 우리를 데리고 간 곳은 바로 반지하. 다닥다닥 붙어있는, 현관문이 길게 늘어선 반지하 복도. 빛이 들어오지 않는 그 반지하 복도에서 우린 잘 보이지 않는, 서로의 눈빛을 확인했다. ‘아 여긴 아니다.’ 우리의 눈빛을 읽지 못한 할아버지는 첫 번째 현관문을 세차게 열었다. 싱글 침대 두 개와 넓은 공간. 무언가 그간 겪지 못했던 향기가 났지만, 취향에 맞지 않는 섬유유연제로 세탁을 한 셈칠 수 있는 정도였다. 그동안 돌아다녔던 집들보다 훨씬 넓고, 옵션으로 싱글 침대가 두 개나 있는 이곳을 우린 놓칠 수 없었다.
아 반지하. 서울의 젊은이들이 가득한 홍대와 신촌 사이의 이 공간은, 흔히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본 것처럼 세상 힙한, 멋진 뮤지션들의 작업실이나 모나미 볼펜 냄새가 날 것 같은 작가의 작업실이 떠올라 내 마음을 두근거리게 했다. 반쯤 지면 아래로 파고든 이 공간에서, 세상을 열심히 헤쳐나가는 어떤 청춘의 모습이 나에게 덧입혀졌달까? 힘든 것이 청춘의 멋인 줄 알았던 그때, 이 공간은 나의 로망을 부풀리기에 충분했다.
승현이가 외출을 나간 어느 겨울날이었다. 해가 중천에 떴지만 그걸 알 리 없는 이곳에서 나는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 편한 잠옷 차림으로 나의 싱글 침대에서 쉬고 있었다. 똑똑똑. 무겁고 느릿한 노크 소리.
며칠 전, 승현이와 내가 쓸 좌식 책상이 왔다. 택배기사 아저씨는 반지하로 이 무거운 상자를 들고 온 것이 못내 못마땅했는지, 상자를 거칠게 던지곤 나를 노려보았다. 이곳으로 오는 택배는 다 던져지는 느낌을 받았던지라, 누군가가 찾아왔다는 소식이 그리 달갑지 않았다.
문을 열자 주인 할아버지가 한껏 주름이 깊게 팬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허락하지 않은 우리의 공간 안으로 불쑥 들어왔다. 맥주 두 캔과 함께.
할아버지는 다짜고짜 침대에 걸터앉았고, 나와 대화를 하고 싶다며 맥주 한 캔을 건넸다. 눈곱도 제대로 떼지 못한 나는, 너무나 편한 차림에서 맞이한 이 상황이 당황스러웠지만, 최대한 티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나란히 침대에 걸터앉아, 맥주 캔을 따 마시는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자녀 이야기나 하숙집 경영에 관해, 궁금하지 않은 이야기를 늘어놓았고, 나에게 전공은 무엇인지, 어떤 공부를 하는지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나는 옷차림과 행색이 불편해, 넘어가지 않을 것 같아 따지 않은 맥주캔을 손에 쥐고, 할아버지의 이야기에 조금씩 맞장구를 쳤다. 점점 할아버지의 입에서 맥주 향이 짙게 나기 시작했고, 그만큼 내 마음속에도 무언가 묘한 불편함이 짙어져 갔다. 그때, 허벅지 위로, 따지 않은 맥주캔을 쥐고 있는 내 오른손을 덥석 잡아 올리는 할아버지.
“아유 어쩜 손도 이렇게 아기 같아? 보들보들하니~” 할아버지는 아기 엉덩이 같다며, 내 손을 연신 쓰다듬었고, 급기야 손을 본인의 입으로 가져가 손등에 뽀뽀를 했다. 그 덜 깎인 콧수염, 주름이 많이 진 입술의 촉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때 울리는 트로트 벨소리. 할아버지는 전화를 받고, 다시 이 건물 꼭대기의 본인 댁으로 돌아갔고, 나는 바로 이 반지하를 나와 근처 놀이터로 갔다.
‘나를 손녀처럼 예뻐해서 그러신 걸 거야. 그런데 왜 이렇게 기분이 안 좋지?’ 손등은 두드러기가 난 것처럼 간지러웠다. 계속해서 긁어 빨갛게 부풀어 오른, 나의 오른쪽 손등. 신촌이 한눈에 보이는 언덕 위 놀이터 그네에 앉아, 나는 그렇게 승현이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힘든 것이 청춘의 멋이라 생각한 20살의 나. 어떤 힘든 일이 닥쳐도 다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던 그때. 돌이켜보면 나는 사실 ‘힘든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몰랐다. 택배를 던지고 가는 기사님, 손녀 같아 손등에 마음대로 뽀뽀를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집주인 할아버지.
이 사실은 드라마나 영화 속 인물들에겐 나오지 않는 것들이었다. 지면이 절반쯤 내려간 공간에 산다고, 내 기분과 의견이 절반으로 깎인 건 아닌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