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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갱 Dec 29. 2016

목욕탕은 사랑입니다

내가 목욕탕을 좋아하는 3가지 이유

할아버지는 목욕탕 헤비유저였다. 정기권을 이용했는지 매일 오후 4~5시쯤 되면 목욕탕으로 가셨던 것 같다. 한량 같으신 분이라 일찍부터 은퇴생활을 즐기셨는데 목욕탕은 그 한량 인생의 유일한 루틴 한 일상이었던 것 같다. 대머리도 한 대 걸러 할아버지가 대머리면 손자가 대머리라는 속설처럼 목욕탕 사랑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었나 보다. 아빠는 목욕탕을 그냥 가끔 생각날 때 가는 것 같은데 나는 할아버지의 피를 받아 목욕탕이라면 환장한다. 생각해보면 목욕탕을 좋아하는 것은 선천적인 것보다 할아버지에 의해 후천적으로 학습된 걸 수도 있다. 아빠가 돈 벌러 간 사이 할아버지와 손자는 해 질 녘쯤 목욕탕에 가는 일상을 성실히 수행했다. 노을에 빛나는 바나나 우유는 아름다웠다.

일본의 여탕은 참 아름답군요.

나는 왜 목욕탕을 좋아하는가?


첫째, 시간이 멈춘 공간이라서.


목욕탕은 시간이 멈춘 공간이다. 진도 6.0 이상의 큰 지진이 나거나 전쟁 중 폭격으로 목욕탕이 무너지지만 않는다면 목욕탕은 시간이 멈춘 채 영원할 것 같은 Inner Peace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심지어 계절도 상관없다. 밖이 덥든 춥든 항상 일정한 습도와 온도를 유지하고 있다. 소나무가 철갑을 두드고 사계절 푸르러봤자 그 견고함이 목욕탕만 하지 못하다. 그것이 나를 위로한다. 목욕탕은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 찍힌 쉼표 하나다.  매 분 단위로 변하기도 하는 나의 가벼운 감정들을 잡아주는 성스러운 장소다.


둘째, 평등한 공간이라서.


목욕탕에서는 만인이 평등하다. 벌거벗고 탕 안에 앉아있으면 아이도, 청년도, 노인도 인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으니 저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고 얼마나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강하고 약하고, 악하고 착한 사람도 없다. 난 그래서 목욕탕이 좋다. 금목걸이 차고 오시는 분 제외다, 목욕탕에서 조차 감출 수 없는 부유함이 부럽다. 

온몸에 문신 많으신 분은 강해 보인다. 행여나 물이 튀길까 봐 조심한다. 남자 목욕탕에는 발가벗었을 때 드러나는 권력의 바 로비터가 있으나 이 부분은 과감히 생략한다.


셋째, 명상할 수 있는 곳이라서.


목욕탕에서는 명상할 수 있다. 온탕에 몸을 담그면 딱히 할 게 없다, 눈을 둘 데도 없어 그냥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긴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그저 탕 안에 눈을 감고 있다. 하릴없는 시간이 얼마만인지, 진동도 느껴지지 않고 카톡의 대화창도 없는 온탕에서 잡다한 생각을 하다 보면 아르키메데스가 왜 목욕을 하다 유레카를 외치게 됐는지 알게 된다. 인생의 중요한 결정의 순간이나 번뜩이는 영감은 온탕에 누워 얻은 적이 많다. 비우려 할수록 채워지는 온탕의 신비.


  


삭막한 도심 속의 오아시스, 목욕탕


이 좋은 걸 일주일에 한 번 혹은 그마저도 못한다. 그래도 나는 바쁜 일상 중에 이 곳을 떠올린다. 치열하게 현실을 살고 있어도 어딘가의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나는 언제든 따듯한 그곳으로 갈 수 있다. 목욕탕은 사회적 효용은 때를 벗겨내는 것보다 훨씬 큰 것이 아닐까 싶다.

어딘가에는 있을 도심 속 오아시스, 그 존재만으로 항상 마음의 의지가 된다.

목욕탕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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