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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갱 Oct 09. 2016

옥상의 시간

그 귀중하고 바보같은 10분

가슴이 답답할 때, 더 정확히 말해 술을 한잔 거친 날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원래 내려야할 우리 집 층수를 지나쳐 옥상으로 간다. 내가 좋아하는 의자가 하나 놓여 있다. 담배 피는 분들이 가끔 이 의자를 탐내지만 먼저 자리에 앉은 사람의 명상을 방해 하지 않는다, 그것이 이 옥상의 룰이다. 주변 건물에 비해 높은 건물에 살고 있어 옥상에서 보는 풍경이 멋있다.


불빛에 녹은 일상의 고단함들


어느 계절에 봐도 멍을 때리게 만드는 힘이 있는 풍경이지만 요즘 같은 가을 날에 그 정취를 더한다. 나는 이 옥상에서 오랫동안 켜져있는 가정집의 불빛 하나 하나를 세심하게 쳐다보았다. 저 불빛에 얼마나 만은 일상의 고단함이 녹아 있을까 생각해본다. 저마다의 사연들이 불빛 하나로 빛나고 있다. 멀리서 보면 작고 여린 불빛 하나지만 저 불빛 하나를 밝히기 위해 오늘 하루 얼마나 각자의 전장에서 고군분투 했을까.

그러고 나면 나의 피곤함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저 저 많은 불빛중에 하나 였으리라. 인생은 고해(苦海), 괴로움이 끝이없는 바다에서 되도 않는 안락함을 추구하며 괴로워 하고 있었는지 반성하게 된다. 그 불빛들을 보며 다시 되뇌다. 인생은 고해다.우리는 각자의 전장에 있다.


그 많은 별빛은 어디에 있을까


그리고 시선을 돌려 하늘을 본다. 달 하나만 덩그러니 하늘에 빛난다. 그 수많은 별들은 어디에 있을까? 기억을 거슬러 별 많던 하늘의 모습을 떠올린다. 군대에서 봤던 하늘, 유럽에서, 일본에서, 시골에서 봤던 별많던 하늘과 같은 하늘인데 별이 없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별로 특별할 하늘은 아니지만 별없는 밤하늘이 오늘은 뭔가 서글프다. 저 멀리 반짝이는 별 하나를 찾았지만 인공위성일 확률이 더 높다는 소리가 기억난다. 별도 만들 수 있는 세상이다.


바보처럼 보내는 옥상에서의 10분의 시간


하루를 돌이켜보면 한 순간도 멍청하게 보내지 않은 시간이 없다. 오전부터 바쁘게 움직이고 그 수많은 일들을 직장에서 해냈다. 인턴을 교육하고 팀원들의 서류에 결제하고 회의를 하고 퇴근할 무렵 회사 대표가 저녁을 먹자고 해서 불편한 저녁을 먹고 맥주도 알딸딸하게 한 날이다. 이 많은 일을 '오늘' 다 해냈다. 옥상에서의 10분은 나의 오늘 중에 멍을 때리며 하늘을 보는 가장 멍청하고 가장 값진 시간이다.


우리 열심히 살지만 꼭 모든 시간을 화이팅하며 아프니까 청춘일 필요는 없다. 그냥 하루 10분 멍청하게 바보처럼 하늘을 볼 시간, 아니 용기가 필요하다.

결국 내 삶을 풍요롭게 해줄 시간은 옥상에서의 그 10분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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