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꿀갱 Nov 07. 2019

피돌이는 밥을 조금 먹지

다음 생은 스쿠터로 태어나자

피돌이 밥 먹는 걸 보면 걱정이 앞선다. 이렇게 조금 먹으면 금방 쓰러질 것 같은데.

이제 3,000km 밖에 안된 피돌이는 한참 클 나이인데 밥을 깨작깨작하는 걸 보면 한숨이 나온다.

옆집 할리 형은 벌써 변성기도 와서 목소리도 걸걸하고 어깨도 떡 벌어져 제법 남자 티가 나는데 우리 피돌이는 밥을 먹지 않으니 할리 형이 옆으로 달려가면 휙휙 쓰러질 것 같은 아직 가냘픈 소년이다.


하지만 우리 피돌이는 성실한 편이라 밥은 조금 먹어도 일은 열심히 한다. 체감상 한 달에 밥을 두 번 정도 먹는 것 같은데 조금만 먹어도 열심히 일한다. 1리터에 43km를 달리니 이걸 타고 다니는 내가 도둑놈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 배달하는 분들이 이 스쿠터를 선호한다.


 한 달 교통비가 10만 원은 나왔는데 피돌이를 타고 다니면서 한 2만 원 밖에 안 나오는 것 같다. 한 달에 기름을 한 3번 넣는 거 같은데 그럼 5만 원에 한 달 교통비로 쓸 수 있으니 아주 경제적이다. 이렇게 5만 원씩 아낀 돈은 1년에 60만 원이 되고 10년이면 600만 원, 100년이면 6,000만 원, 1,000년이면 6억이 된다. 아주 큰돈이다.


 스쿠터는 그 외에도 유지비가 거의 들지 않는다. 끽해야 2,000km 정도에 2~3만 원 내면 되니 유지비도 개이득이고 연료 계통도 거의 고장 나지 않으니 조심히 잘만 타고 다니면 된다.


 단점은 한 번 사고 나면 지금까지 모아놓은 6억이 한꺼번에 날아갈 수 있다. 스쿠터는 효율적이고 경제적이고 여러모로 개이득이지만 사고의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는 건 사실이다. 나만 조심하면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조심하지도 않음) 주변의 모든 세상천지 천하 만물이 조화를 이룰 때 안전이 보장된다.


 밥 조금 먹고 열심히 일하는 피돌이를 보면서 오늘 하루를 반성한다. 오늘 짜파게티 2 봉지 먹고 족발 먹고 돼지 껍데기 먹고 스팸이랑 밥이랑 상추랑 깻잎이랑 갓김치를 먹었지만 오늘 한 일이라고는 똥을 싼 일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냥 다음 생은 그냥 스쿠터로 태어나는 게 세상에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현대 한국 소설의 기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