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니스푼 Feb 04. 2021

수학숙제를 봐주며

아이들은 들인 시간만큼 자란다.

Equilateral = 정삼각형

Isosceles = 이등변삼각형

Scalene = 세 변의 길이가 모두 다른 삼각형


초등 3학년인 둘째의 수학숙제를 봐주면서 처음으로 알게 된 단어다. 이 나이에도 새로운 걸 배워서 뿌듯한데, 1-2년만 더 지나 아이의 수학을 봐주지 않게 되면 다시 잊어버릴지도 모르겠다.


첫째는 3학년 2학기 때 구구단을 다 못 외워서 담임 선생님에게 나머지 숙제를 받아왔다. 학교에서 구구단을 배우기 시작한 게 3학년 1학기였는데 다른 아이들은 도대체 언제 그걸 다 외운 건지. 한국식으로 "이일은 이, 이이사, 이삼육"하고 외우면 쉽고 빠르다고 권했지만 아이는 거부했다. 선생님이 가르쳐 준 대로만 하겠다며 "Two times two equals four"하고 길고 느리게 반복하는 구구단은 영 입에 붙지 않았다.


지금 3학년인 둘째는 수학우수반에 들어가 있다. 우수반이라 해도 빡세게 가르치는 건 아니고, 자기 진도에 맞춰 각자 아이패드로 동영상을 보며 새로운 내용을 배우고, 숙제 목표량을 스스로 정하고, 모르는 게 있을 때에 선생님께 질문하면서 공부한다. 집에서 부모가 보기에는 학교가 해주는 게 없다. 시험도 없고 자기들끼리 경쟁도 안 시킨다.


다만 별도로 주는 교재를 집에서 꾸준히 해가야 한다. 아이가 스스로 정한 목표량이 많지 않아서 하루에 30분이면 충분한데, 과연 이 정도로 아이가 수학을 얼마나 잘하게 될 지는 잘 모르겠다. 아이의 진도는 지금 일 년 정도 앞서가 있어서 4학년 중간 부분을 혼자서 공부하고 있고, 하루에 2-30분씩 꾸준히 하고 있다. 물론 내가 매일 봐 준다. 처음에는 혼자 하게 놔뒀는데 학교에서 아이가 풀어간 문제를 채점해주지 않고, 아이가 적극적으로 질문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도 그대로 넘어가게 된다는 걸 알고서 내가 매일 확인하기 시작했다.


같은 부모 아래서 자란 남매지만 수학성적은 많이 다르다. 누나가 구구단을 외우던 나이에 동생은 세자리수 곱셈을 한다. 


일단 타고난 성향이 제일 클 것이지만 각각의 아이들에게 들인 인풋도 달랐다. 첫째 때는 초등 1-3학년 동안 내가 직장에 다녔다. 숙제는 아이 혼자 알아서 했고 수학 사교육은 전혀 하지 않았다. 둘째는 같은 기간 동안 내가 전업을 했는데, 2학년까지는 학교 숙제가 아예 없었고 대신 킨더 때부터 수학 그룹과외를 했다. 물론 엄마의 전업 여부, 학교 숙제, 수학 사교육 중 어떤 것도 본인의 타고난 성향을 바꿀 수는 없다. 그렇지만 뒤돌아보니 아이의 성향에 잘 맞아 효과가 컸구나 싶은 결정은 있다.


둘째가 킨더가든(초등 예비학년)을 시작할 때 동네의 극성 엄마 한 명이 수학 그룹과외팀을 짜면서 우리 아이도 들여보내라 권유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초등 저학년 아이들에게 수학 사교육을 시키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퇴근시간까지 아이들은 어차피 학교 애프터케어에 남아 시간을 죽여야 했는데 그 엄마가 우리 아이를 학교에서 픽업해서 과외까지 데려가고 내 퇴근시간에 맞춰 과외를 끝내게 해주겠다 해서, 어차피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에 친구들이랑 같이 뭐라도 해봐란 마음으로 조기 수학과외를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우리 아이는 수학에 대한 이해가 빨랐고 계산을 좋아했고, 그렇게 한 번 앞서가기 시작하니 계속 수학을 편안해하는 아이가 되었다. 적은 양이라도 매일 수학 공부를 하는 습관이 들었다. 그렇게 벌써 3-4년이 쌓였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사교육의 내용보다도, 아이가 몇 년 동안 꾸준히 하루 2-30분씩 수학공부를 했다는 게 중요한 차이였다. 첫째에게도 수학 문제집을 사다 주고 틈틈이 조금씩 풀렸지만, 선생님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엄마가 지켜보고 있는 것도 아닌데 꾸준히 계속하기는 어려웠다. 둘째는 인연이 닿아 수학과외팀에 들어갔는데, 타고나기를 수학숙제 시키기가 수월한 애였다. 내가 전업을 했던 것은 어떤 효과가 있었는지 계량하기 어렵지만, 전업의 목적이 아이들의 일상을 꼼꼼히 챙기기 위해서였으니 학원만 보낸 것보다는 나았을 것이다.


아이들은 들인 시간만큼 자란다. 첫째는 짐내스틱을 5년째 하고 있는데 이제야 팔과 허벅지에 딱딱한 근육이 자리잡았다. 둘째는 수학을 4년째 계속하니 자기 학년보다 수학 진도가 일 년 앞서간다. 거창한 성과는 없다. 그냥 딱 이 정도다. 물론 아이들은 그 동안 밥 먹인 만큼, 잠자리를 봐 주며 뽀뽀해준 만큼, 쏟아부은 사랑과 스킨십만큼 단단하게 자라지만 그래도 부모 마음에 가끔은 뭘 얼마나 시켰더니 얼마나 늘었는가 보고 싶다. 먹이는 만큼 키가 크는 건 아니지만, 정성껏 먹인 후에 아이가 크는 걸 보며 안심되고 흐뭇한 마음이랄까.


둘째도 3년 정도만 더 지나면 빠르게 내 손을 벗어날 시작할 것이다. 그동안 정성을 다했어서 아이들의 어린 시절이 끝나가는 게 아쉽지 않다. 아이들이 다 크고 나면 늙고 지쳐 껍데기만 남은 내가 있지 않을까 덜컥 겁이 날 때가 있지만, 그걸 극복하는 것은 내 몫일 거다.




오늘 낮에 여기까지 글을 썼다. 밤에 둘째의 잠자리를 봐 주고 언제나 그렇듯이 잠시 같이 누워 뽀뽀하고 안아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아이가 이런 말을 했다.


"엄마, 난 가끔은 더 자라고 싶지 않아. 언제까지나 지금만큼만 어렸으면 좋겠어. 그리고 엄마도 더 자라지 않고, 언제까지나 지금만큼 젊었으면 좋겠어."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나이들어 늙어가는 것의 피할 수 없는 무상함에 눈물이 솟아올랐지만 어둠 속에서 숨길 수 있었다. 내일이면 너는 네가 이런 말을 했다는 걸 잊어버리겠지. 이런 마음이 들었다는 것도 나이가 들면 기억하지 못하겠지. 그렇지만 더 자라지 않고 싶을 만큼 행복했던 유년 시절은 너라는 사람의 일부로 남아 있었으면 해. 그만큼 사랑을 준 경험도 내 일부로 오랫동안 남아 있을 테니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실력을 키워야 한다는 부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