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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니스푼 Jan 23. 2021

실력을 키워야 한다는 부담

딸이 육상부에 들어가 달리기를 시작했다.


엄마, 오늘 학교에서 체육시간에 1km 달리기를 했어. 그런데 내가 진짜 달리기를 잘하는 거야. 여자들 중에서는 내가 1등이었어!

오 그래? 그러면 우리 딸 이제 육상부에 들어가는 거야?

어떻게 알았어? 달리기 끝나니까 누가 나한테 왔어. 육상부 선생님인데 나더러 달리기 하재.

진짜?

내일부터 시작할 거야. 월화수 학교 끝나고 연습하는데, 화요일은 짐내스틱 있으니까 월요일하고 수요일만 하기로 했어.


어느 날 갑자기 6학년 딸이 학교 육상부에 들어갔다 (미국 학교에서는 보통 6학년부터 중학생이다). 미국 학교에서는 운동회가 있어도 100미터 달리기나 이어달리기처럼 승패가 갈리는 종목은 하지 않는데다가 실기평가처럼 아이들을 한 줄로 세워서 운동시키고 점수를 매기는 일도 거의 없어서, 우리 딸이 달리기를 잘하는 줄도 처음 알았다. 애들 학교의 넓은 트랙에서 열대의 태양 아래 껑충껑충 뛰어다니는 저 무시무시한 체력의 청소년들은 어떤 애들인가 했는데, 그 끄트머리에 작고 마른 우리 애가 끼어들어갈 줄이야.


하고 많은 운동 중에 육상팀이라니.


미국 학교에서는 어려서부터 운동을 많이 시킨다고 한다.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아이들을 키워 보니까 학교에서 운동을 시켜주는 게 아니라, 운동을 잘하는 게 중요한 분위기 속에서 그걸 시키는 건 부모들이었다. 나도 딸과 아들을 둘 다 키우는 바람에 이리저리 시도 안해본 종목이 거의 없다. 딸은 발레, 스케이트, 짐내스틱, 수영, 테니스를 배워 봤다. 여자축구팀에도 넣어 봤는데 관심없어 해서 한 시즌 만에 그만뒀다. 어느 종목도 딱히 못하거나 싫어한 건 없었지만, 열정을 보인 것도 별로 없었다. 그중 짐내스틱을 좋아해서 지금까지 5년째 계속하고 있다.


짐내스틱 5년. 상당한 노력이었지만 주 1-2 시간 하는 정도로는 어디 가서 운동한다 소리 하기 어렵다. 미국 학생들은 운동을 경력 쌓듯이 한다. 4-5살 때부터 초등 저학년까지 이것저것 시도해 보다가, 좋아하고 잘하는 종목을 하나 정한다. 처음에는 동네 팀에서 훈련을 시작하고 조금 지나면 경기에 출전한다. 처음엔 동네 리그 친선경기, 다음엔 지역 리그, 이런 식으로 레벨을 올려 간다. 주 3회 훈련은 기본이요 어느 궤도에 오르면 주 5회 훈련하는 초등학생도 자주 본다. 주중에는 훈련에 데려가고 주말에는 경기를 쫓아다니느라 부모들은 바쁘다.


이렇게 해서 운동을 전공하는 것도 아니다. 예전에는 운동-악기-공부 골고루 잘 하는 올라운드 플레이어를 대학입시에서 선호했다는데 이젠 그렇지도 않다. 운동하는 과정에서 체력과 근성을 기르고, 친구들과 부대껴 이기고 지는 것을 경험하며, 내가 어떤 사람인가 캐릭터를 형성해서 자기만의 이야기를 써나가는 게 진짜 목적이다. 누구나 운동에 소질이 있는 건 아니지만 무언가 맞는 운동이 한 개쯤은 있을 테니, 그걸 찾아서 키워 주는 게 부모의 역할처럼 여겨진다.


우리 딸은 짐내스틱을 5년 했지만 학원 내 친선경기 이상의 외부 경기에는 나가 본 적이 없다. 나갈 수준이 된 적이 없다. 그렇게 아무 경력 없이 어느 새 짐내스틱 계에서는 은퇴를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짐내스틱은 사춘기가 와서 키 크고 몸이 변하면 더 이상 잘하기도 어렵고 부상 위험도 많아져서, 선수급 레벨 아니면 중학교 진학 이후에는 하나 둘씩 그만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짐내스틱은 5-6세에 이미 두각을 드러내야 하는 운동이라서,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주 3~4회 이상의 훈련에 더해 약한 부분은 중간중간 개인레슨을 받아서 보강하는 등 확실히 밀어주어 주말 취미반이 아니라 시합에 나가는 학원 팀에 아이를 집어 넣었어야 했다.


우리 애가 짐내스틱을 시작할 때는 내가 직장을 다녀서 주중에는 체육관에 데려갈 수도 없었다. 아니, 우리가 바쁘다 보니 남들은 그렇게들 하는지도 몰랐다. 어차피 아이가 송곳같은 재능을 보이지도 않았으니 코치들도 아무 말 하지 않았고 부모 눈에도 띄지 않았겠지. 내가 직장을 그만둔 다음에야 아이는 훈련 횟수를 주 3시간으로 늘릴 수 있었다. 한 때는 진작 강도 높은 훈련을 시켜서 제 때에 포텐셜을 최대한 키워 주지 못한 걸 살짝 후회도 했지만, 어느새 그 후회도 지난 일이 되었다.


초등학교 시절에 본인의 종목을 찾아서 어느 궤도까지 훈련시키는 게 부모의 몫이고, 중학교 이후부터는 학교 팀에서 훈련한다. 그래서 좋은 학교일수록 다양한 종목의 운동팀을 운영한다. 싱가포르 미국 국제학교에서는 수영팀과 테니스팀이 제일 규모가 크다. 싱가포르에서 가장 접하기 쉬운 운동이 수영이랑 테니스다 보니, 다른 종목을 특별히 잘하지 않는 아이들도 무난하게 배우고 선택하는 운동이라서 그렇다. 우리 딸도 수영이랑 테니스 레슨은 받아 봤는데 아이가 학교 팀에 들어가서 주 3회씩 훈련하겠다는 의욕을 내지 않았다. 아이가 적당히 기본만 배우고 더 이상 실력을 갈고 닦으려는 의지가 없으니 조금은 실망스러웠지만, 본인이 안 하겠다니 어쩔 수 없었다.


실력... 이라고 하니 말인데.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고 아기 때처럼 손이 많이 가지 않으면 엄마 노릇이 쉬워지는 줄 알았다. 더 이상 먹여주고 씻겨주고 재워주지 않아도 되면, 아침에 학교에 가서 오후에 돌아온 후에는 자기들이 알아서 숙제를 마친다면, 나는 그때부턴 내 인생도 직장생활도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아이들의 실력을 키워줘야 했다. 공부든 운동이든 악기든, 당장 잘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남들보다 잘하라는 것도 아니었다. 초등학교 시절의 긴 하루, 그 많은 날들이 쌓이고 쌓여 무언가를 이루어야 했는데 그 정원사 역할이랄까, 매니저 역할이랄까를 해야 하는 사람이 나였다. 미국 학교는 공부도 너무 조금 시키고, 숙제는 더욱 적었고, 무엇보다도 경쟁을 안 시키니 아이들이 뭘 더 잘해야겠다는 전투적인 의지가 없었다. 잘 보낸 매일매일이 쌓여 한 학기가 지나고 일 년이 지나면 이만큼 실력이 쑥 늘었더라, 하는 성장의 경험을 집에서 만들어줘야 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우리 애들은 매사 태평하고 욕심이 없을까? 아이들의 시간을 잘 쓰고, 운동이든 공부든 기본이 되는 좋은 훈련습관을 키워줘야 한다며 조바심이 나는 건 나 뿐이었다.


<베이비시터 클럽(The Baby-sitters’ Club)>이라는 미국의 시리즈물이 있다. 1986년부터 90년대 내내 수십 권이 출간되어 미국의 초등 고학년-중등 저학년 소녀들을 사로잡은 전통적인 소녀소설이다. 최근에는 그래픽 노블 시리즈로 출간되어 인기를 끌었고 작년에는 넷플릭스 드라마로도 방영되었다. 2009년생 우리 딸이 이 만화의 열혈 팬인 덕분에 나도 만화와 드라마를 한 편도 빼지 않고 챙겨 봤다.


어제도 이 <베이비시터 클럽> 그래픽 노블의 신간을 한 권 읽었다. 주인공들은 긴긴 여름방학을 보내고 이제 8학년이 되었다. 미국 학교의 여름방학은 굉장히 길다. 10주 정도 된다 (이 긴 여름방학을 어떻게 잘 보내야 하는가는 미국 부모들의 또다른 고민거리). 아무튼 이 책을 읽으며 불현듯, 이 소녀들은 벌써 중학교 3학년인데 실력을 키워야 한다는 아무런 부담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학교에 가고 숙제를 한다. 바쁜 부모를 대신해 어린 동생을 본다. 친구들과 모여 베이비시터 클럽을 만들어서 오후나 주말에 동네 아이들을 봐 주고 용돈벌이를 한다. 요즘 아이들은 이런 거 할 시간 없는데. 이 소녀들은 운동도 안 하고 악기도 안 한다. 학교 바깥에서 따로 배우는 것도 없고, 매일 연습해야 할 것도 없다. 내일은 오늘보다 나은,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잘하고 실력있는 사람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부담이 없다. 80년대 미국에서는 아이들이 그렇게 자랐을까?


학교에서 주 3회씩 훈련하는 테니스팀, 수영팀 전부 마다하던 딸이 난데없이 육상팀에 들어가서 크로스 컨트리(장거리 달리기)를 시작했다. 달리기는 아무 기술이나 별도의 레슨 없이도 아무 나이에나 시작할 수 있는 운동. 장비도 필요없이 맨몸으로 뛰는 운동이다 보니, 솔직히 웃음이 나왔다. 부모가 딱히 도와줄 게 없는 운동이라서. 팀에 들어가 훈련하겠다는 것도 웃겼다. 아마도 육상팀 코치 선생님이 자기에게 직접 와서, 와 너 달리기 잘한다, 육상팀에 들어오지 않겠니? 하고 한 것에 고무되었던 것 같다. 엄마나 아빠가 이리 권하고 저리 권해 봐도 꿈쩍 않던 아이가 어느 날 다가온 선생님의 한 마디에 혹해서 넘어간 것이다.


이렇게 딸은 훌쩍 뛰어, 자기는 엄마아빠의 영향력 바깥에 있다는 걸 보여줬다. 부모가 생각하거나 권유하지 않은 어떤 것, 부모가 도와줄 수 없는 것을 해보겠다며 말이다. 실력을 키워라, 꾸준히 훈련해라, 이런 말 또한 자기는 부모에게 들을 필요가 없다는 걸 보여줬다. 싱가포르의 더운 오후에, 학교 끝나고 지친 몸으로 한 시간씩 운동장에서 뛰겠다는 각오를 나는 못한다. 나는 못하는 일을 아이는 하겠다고 나섰으니 네가 나보다 낫다. 무엇보다도 나는 너를 뛰게 할 수 없는데 선생님과 친구들은 그렇게 할 수 있구나. 너는 이미 네 주변에 엄마보다 힘이 세고 큰 세상을 갖고 있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뭘까? 아직은 아들이 초등학생이니까, 당분간은 첫째보다 둘째를 챙기는 데 신경을 써야겠다. 그리고 이젠 아이의 실력을 키워야 한다는 조바심은 내 몫이 되면 안되겠다. 그럼 이젠 나는 내 실력을 키워야 하나? 아이의 실력을 키워줘야 한다고 조바심을 낼 때보다 더 막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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