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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니스푼 Jul 22. 2021

싱가포르 셧다운 하루 전

갈 곳이 없는 아이들은 적극적으로 친구들을 찾는다.

화요일 오후, 예고도 없이 갑자기 싱가포르 정부가 다시 거리두기를 2단계로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싱가포르의 거리두기는 숫자가 낮을수록 강력하다.


계속해서 풀었다 조였다를 반복하는 규정을 따라잡기도 어려울 지경이다. 모임 및 방문은 최대 2인으로 제한됐던 것이 4주 만에야 5인으로 늘어났고, 외식 및 어린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대면수업이 일체 금지됐던 것이 5주 만에 풀린 것이 6월 하순이었다. 그나마도 외식은 한동안 2인 제한을 유지하다가 최대 5인까지 동반외식이 가능해진 것이 겨우 7월 12일이었는데, 열흘도 안 되어 갑자기 외식 일체 금지, 그리고 모임 및 방문은 2인 제한으로 되돌아가겠다는 것이다.


발표는 화요일 오후에 나왔는데 새 방침은 당장 목요일부터 시작이다. 딱 하루 반이 남는다.


나는 2주 전에 미리 잡아놓은 친구와의 저녁 약속이 목요일이었는데, 뉴스속보를 듣자마자 황급히 수요일로 저녁 예약을 바꿨다. 혹시나 하고 저녁에 다시 예약사이트를 들여다보니 해당 레스토랑은 이미 수요일 저녁 만석이었고, 어지간한 곳은 꽉 차서 예약이 불가능했다. (재빨리 행동하길 잘했지!)


남편은 지난 2-3주 동안 겨우 일주일에 한 번 사무실로 출근하기 시작했는데, 다시 재택근무로 돌아가게 되었다. 마침 그날 밤에 랩탑 컴퓨터가 먹통이 되는 바람에, 수요일 하루는 컴퓨터도 고칠 겸 마지막으로 사무실에서 일하러 아침 일찍 출근해 집을 비워주었다.


딸은 밖에 나가 돌아다니며 뭘 사먹을 수 있는 날이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며 친구들과 분주히 채팅을 했다. 두 명의 친구들과 급히 약속을 잡고서 용돈을 챙겨 오차드로 나갔다. 친구들과 치킨을 먹고 버블티를 마시고 돌아다니다가 다같이 우리집에 와서 수영을 하고 피자를 먹고 티비를 봤다.


아들은 누나가 친구들을 불러모아서 놀러 나가는 게 부러웠다. 그렇지만 본인은 아직 전화기가 없어서 누나처럼 여기저기 친구들이랑 직접 연락하지 못하고 엄마들을 통해서 연락해야 한다. 친구 두 명한테 연락해 봤는데 둘 다 각자 일정이 있어서 놀러올 수 없다는 말에 심통이 났다.


나는 장을 보러 나갔다. 한동안 아이들과 집안에서 버틸 연료를 비축해야 했다. 심통이 난 아들을 데리고 나가 둘이서 점심으로 치킨을 먹고, 간식을 고르고, 양손에 비닐봉지를 들고 짐을 나르는 걸 칭찬해 주면서 아이 기분을 달래보려 애썼다.


오후에는 아들을 주짓수 도장에 데려갔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두 명씩 스파링을 하는 것도 오늘까지만이다. 내일부터는 실내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운동해야 한다. 엄마는 친구를 만나러 외출하고 누나도 친구들을 집에 데려왔으니, 아빠랑 아들은 둘이서 마지막으로 저녁 외식을 하기로 했다. 주짓수가 끝나고 남편을 만나 아들을 넘겨준 후에 나는 저녁식사 장소로 향했다.


친구와 레스토랑에서 만나 와인 한 병을 비우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건 올 여름 들어 처음이다. 5월 초부터 이런 식으로 거리두기를 조였다 풀었다를 반복하며 두 달이 지났다. 이번 2단계는 4주 예정인데, 이게 끝날 때면 8월 중순이다. 물론 4주 후라고 해서 과연 얼마나 어떻게 풀릴지는 모를 일이다.




여러 가지 제약 속에서도, 아이들이 친구를 찾아 노는 걸 막을 수는 없다. 딸은 학교 친구, 특별활동 친구, 짐내스틱 친구 등 그룹별로 한두 명씩 친한 친구를 만들어 다양한 친구들을 번갈아가면서 소수정예로 만난다. 전화기가 있으니 엄마들을 통해 연락하지 않아도 되고 각자 그랩(Grab) 택시를 불러 타고 다닐 수도 있으니, 자기들끼리 일정을 조율해서 누구 집에서 만날지만 결정한 후 엄마에게 통보하면 그만이다.


아들은 아직 전화기가 없어서 누나만큼 적극적으로 친구관리를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아파트 단지 내 친구들이 있다. 심심한 누군가가 찾아와 우리집 문을 두드리면 뛰쳐 나가고, 아무도 찾아오지 않으면 내 전화기를 빌려서 본인이 직접 동네 엄마들한테 문자를 보내 오늘은 누가 나가서 놀 수 있는지를 묻는다. 처음에는 내용이 어색했는데, 자꾸 하다 보니까 어른들에게 문자 보내는 예절이 많이 늘었다.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이렇게 적극적으로 친구들을 찾고 어울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학기 중에는 수업과 각종 특별활동으로 바쁘고, 연휴나 방학에는 다들 본국이나 근처 다른 나라들로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는 게 국제학교 아이들의 일상이다. 함께 시간을 때울 친구가 절실하게 아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아이들이 일상은 단조롭고 갈 곳이 별로 없으니 같이 놀 친구를 적극적으로 찾고 있다.


그리하여 셧다운 전날 밤, 딸 친구 두 명은 우리 집에서 자고 갔다. 아니, 자는 줄 알았는데 셋이서 작정하고 밤을 꼬박 샜다. 태어나서 처음이란다. 새벽까지 초콜렛 파우더랑 커피랑 우유를 섞어 잠 깨는 음료수를 만들어 마시고, 아이패드 앞에 배를 깔고 엎드려서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보고,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자기들 모습을 밤새 타임랩스 영상으로 찍었다. 배가 고프다며 새벽에 부엌에 나와 팬케이크를 만들고 베이컨을 구워 아침식사를 만들어 먹은 후 오전 내내 쓰러져 잤다.


그렇게 다시 강화된 거리두기 2단계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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