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니스푼 Aug 18. 2021

엄마, 이거 그만 하고 싶어요

어린이의 동기부여에 대해서

가을학기에 둘째는 4학년이 되었다. 올해도 Math Lab이라는 학교 수학우수반에 들어가 있다. 이 반은 일주일에 한 번 따로 모여 선행학습을 하는데, 선생님의 강의가 아니라 각자 자기의 진도에 맞춰 동영상을 보면서 독학을 한다. 학생들은 자기의 속도대로 매주 숙제를 해 오는데, 정해진 양은 없지만 그래도 권장량을 마치려면 한 주일에 약 150-180분 정도를 집에서 공부해야 한다. 하루에 30분씩 5-6일을 계속해야 끝낼 수 있는 양이다. 어린이 스스로는 쉽지 않다. 작년에는 아이랑 내가 2인3각 하듯이 매일 매주 어르고 다그치며 4학년 일년치 범위를 끝냈다.


그런데 아이가 작년에는 처음이라 뭘 모르고 했다지만, 올해는 알고 시작하는 일이니 부담이 더 큰 것 같다. 시작하기 전에는 나름 '올해는 5학년 수학을 끝내야지' 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애쓰던 아이가, 막상 5학년 과정의 첫 페이지를 시작하는 날 이렇게 말한다.


"엄마, 솔직히 Math Lab을 그만두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아니 해보지도 않고서, 첫날 첫 페이지를 앞에 두고!! 첫 단원은 어렵지도 않은데 말이다.


"그래, 그럼 그만 둬. 그만 두자. 나 좋으라고 하는 일도 아니고 너 좋으라고 하는 일인데, 네가 싫으면 다 소용 없지. 이런 마음으로 억지로 하면 뭐하겠니? 이건 네 공부가 돼야지 내 공부가 되면 할 필요 없어!!!"


작년같으면 이런 마음이 솟구쳐 올라왔겠지만, 다행히 미리 마음의 준비를 했다. 바로 이전글에 소개한 책 <Smart Parenting for Smart Kids>에서 읽은 내용이 이렇게 적재적소에 기억날 줄이야.




어렸을 때는 주변의 새로운 것을 익히고 배우는 것에 강한 호기심을 느끼던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면서 점점 공부에 대한 의욕을 잃어간다. 학교공부를 통한 배움이 재미없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건 너무 근본적인 문제라서 당장 우리집에서는 해결하기 어렵고.


확실한 것은, 아이들은 어른만큼 의욕적으로 자기관리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잊지 말아야지. 아이는 반 친구들은 하지 않는 엑스트라 수학공부를 혼자서만 하기가 싫다. 그건 우리 아이가 동기부여가 안돼서가 아니라 그냥 아직 어린 아이이기 때문이다.


동기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안에서부터 오는 내재적 동기와 밖에서 오는 외재적 동기. 내재적 동기는 "재미"다. 그냥 재미있어서, 그 느낌이 좋아서 계속 하는 것. 그러나 어떤 활동은 재미로만 계속하기엔 힘들다. 그래서 외재적 동기가 필요하다. 이것은 "(재미없지만) 그래도 해야지"하는 의지력이다. 외재적 동기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1) 상황기반 동기: 어린이는 이걸 하면 상을 받고, 하지 않으면 벌을 받는다는 규칙 때문에 해야 할 일을 한다.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동기부여 방법이지만, 당사자가 "에잇, 나 안 할래" 하고 게임의 규칙을 거부하면 별 도리가 없다.


(2) 인정기반 동기: 어린이는 선생님과 부모님의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한다. 이 타입의 어린이는 열심히 하지만, 다른 사람의 평가를 끊임없이 의식한다는 단점이 있다. 실패할 가능성이 크거나 과제가 너무 어려우면 부담감 때문에 아예 그만둬 버릴 가능성도 많다.


(3) 가치기반 동기: 어린이는 스스로 선택했고 본인에게 의미있는 어떤 이상적인 목표를 위해서 노력한다. 그걸 이루기 위해 과정의 어려움을 견디며 계속한다. 이것은 가장 강력한 동기지만, 어린이에게는 아직 기대하기 힘들다. 본인에게 의미있는 어떤 이상적인 것을 찾아가는 이 과정이 바로 개인의 정체성이 된다.


아무리 똑똑한 어린이도 아직은 인생 경험이 부족해서 재미없음을 의미로 극복하기 어렵다. 어른들은 재미가 덜해도 자기의 능력을 발휘하고 확장하는 것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지만, 아이들은 의미를 통한 동기부여가 잘 안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어린이가 어떤 과제를 할 수 있는 능력이 된다고 해서 이걸 하겠다는 의지력도 따라오지는 않는다. 동기부여가 안 되었다기보다는, 보통의 어린이는 다 이렇다.




"엄마, 솔직히 Math Lab을 그만두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그 짧은 순간에 책에서 읽은 내용이 촤르륵 떠올랐다. 이 아이는 Math Lab 수학을 할 수 있지만 재미가 없다. 할 수는 있는데 막상 하려니 두렵고 엄두가 안 나서 뒷걸음질 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할 수 있는 능력과 하겠다는 의지력 사이에 징검다리는 내가 놓아 주어야 한다.


오늘치를 다 끝낼 때까지 엄마가 옆에 앉아서 보고 있겠다며 격려도 해 보고, 매일 조금씩 반복하면 그게 쌓여서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설교도 해 보고, 이번 주 계획 세운 만큼을 보여주며 이만큼씩만 빠뜨리지 않고 하면 할 만하다고 안심도 시켜 본다. 아주 어렵지도 않지만 이걸 계속 반복하는 건 내게도 쉽지 않다.


그렇지만 신기하게도 "너도 하기 싫은 줄 안다. 하지만 이렇게 성실하게 계속하다니 대단하다." 라는 마음으로 대하면, 아이도 그 감정을 귀신같이 느끼고 뾰족했던 태도가 누그러든다. 이렇게 힘을 합쳐 시간 내에 오늘치 과제를 완수하고, 저녁에는 여유시간을 좀 갖고, 늦지 않게 아이를 재우고 나면, 오늘 하루 잘 보낸 것 같다는 안도감이 든다. 이렇게 10개월만 더 하면 된다.


작가의 이전글 <영리한 아이가 위험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