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의 단상
아이들은 새학년을 맞아 학교로 돌아갔다. 싱가포르도 다시 규제를 완화하기 시작해서 남편도 단계적으로 사무실로 돌아갈 예정이다. 이젠 다시 빈 집에 나만 남는다 (헬퍼와 함께). 홀가분하면서도 막막하다. 이젠 뭐 하나? 집 안에서도 집 밖에서도 할 일이 없다.
방학의 마지막 날 <라켓소년단> 마지막 회를 봤다. 산뜻한 엔딩이었지만 그들을 보내고 난 내 마음은 허전했다. 저 아이들은 좋겠다. 하고 싶은 일도, 해야 할 일도, 같이 할 친구들도 많으니. 계속해서 새로 시작할 수 있으니. 라켓소년단을 보는 동안에는 그들을 보며 감정이입할 수 있었는데, 그들을 떠나보내고 나니 시간은 많은데 할 일은 없는 나만 덩그러니 남았다.
전업주부가 되어 가장 나쁜 점은 무료함이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내 가용시간은 늘어나는데 별로 할 일이 없다. 만날 사람도 없다. 맛있는 음식을 같이 먹자며 지인들과 약속을 잡을 수 있지만, 밀린 근황을 나누고 나면 다시 한동안은 만날 일이 별로 없다. 출근하듯 등교하듯 꼭 해야 할 일도 없다. 취미생활을 할 시간과 돈은 있는데, 그걸 봐 줄 사람도 경쟁할 사람도 함께 할 사람도 없으니 별로 열심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마냥 자유로운 것도 아니다. 아이들 하교시간까지는 집에 들어와야 한다. 매일 저녁메뉴를 결정하고 준비해야 한다.
44번째 생일이 며칠 남지 않았다. 나이들면서 나쁜 점은 좋아하는 게 점점 없어진다는 것. 예전에 좋아하던 것들은 이제 더이상 마음을 울리지 않는데, 새로 좋아하는 것들이 생기지 않는다. 다 그저 그렇다. 이렇게 내게 즐거움을 주는 것들의 목록이 짧아진다니 큰일이다.
싱가포르에 있는 날이 딱 한 학년 남았다. 1년도 아닌 10개월이다.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것들을 아쉬워 하면서 남은 시간을 보낼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