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니스푼 Sep 05. 2021

여름이 끝났다. 라켓소년단도.

2021년 8월의 단상

아이들은 새학년을 맞아 학교로 돌아갔다. 싱가포르도 다시 규제를 완화하기 시작해서 남편도 단계적으로 사무실로 돌아갈 예정이다. 이젠 다시 빈 집에 나만 남는다 (헬퍼와 함께). 홀가분하면서도 막막하다. 이젠 뭐 하나? 집 안에서도 집 밖에서도 할 일이 없다.


방학의 마지막 날 <라켓소년단> 마지막 회를 봤다. 산뜻한 엔딩이었지만 그들을 보내고 난 내 마음은 허전했다. 저 아이들은 좋겠다. 하고 싶은 일도, 해야 할 일도, 같이 할 친구들도 많으니. 계속해서 새로 시작할 수 있으니. 라켓소년단을 보는 동안에는 그들을 보며 감정이입할 수 있었는데, 그들을 떠나보내고 나니 시간은 많은데 할 일은 없는 나만 덩그러니 남았다.


전업주부가 되어 가장 나쁜 점은 무료함이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내 가용시간은 늘어나는데 별로 할 일이 없다. 만날 사람도 없다. 맛있는 음식을 같이 먹자며 지인들과 약속을 잡을 수 있지만, 밀린 근황을 나누고 나면 다시 한동안은 만날 일이 별로 없다. 출근하듯 등교하듯 꼭 해야 할 일도 없다. 취미생활을 할 시간과 돈은 있는데, 그걸 봐 줄 사람도 경쟁할 사람도 함께 할 사람도 없으니 별로 열심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마냥 자유로운 것도 아니다. 아이들 하교시간까지는 집에 들어와야 한다. 매일 저녁메뉴를 결정하고 준비해야 한다.


44번째 생일이 며칠 남지 않았다. 나이들면서 나쁜 점은 좋아하는 게 점점 없어진다는 것. 예전에 좋아하던 것들은 이제 더이상 마음을 울리지 않는데, 새로 좋아하는 것들이 생기지 않는다. 다 그저 그렇다. 이렇게 내게 즐거움을 주는 것들의 목록이 짧아진다니 큰일이다.


싱가포르에 있는 날이 딱 한 학년 남았다. 1년도 아닌 10개월이다.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것들을 아쉬워 하면서 남은 시간을 보낼 수는 없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 이거 그만 하고 싶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