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잘 키우고 싶은 내 마음이 피곤하다.
내 새해는 1월 17일에 시작했다. 지난 6주 동안 가족 중 누군가와 언제나 붙어 있었다. 모두 회사와 학교로 떠나고 드디어 나 혼자 남은 1월 17일 월요일.
작년의 마무리부터 해야겠다. 12월 30일에는 가족들과 함께 덕수궁에 갔다. 처음에는 경복궁에 가려고 했는데, 날은 춥고 경복궁은 너무 커서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다닐 자신이 없었다. 덕수궁은 더 작고 가까웠고 예쁜 석조전이 있었으며, 현대미술관에서는 마침 박수근 전시회를 하고 있었다.
<박수근: 봄을 기다리는 나목> 전을 보고 오후에는 교보문고에 들러 박완서의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를 샀다. 2021년의 마지막 이틀은 광화문 호텔방에 앉아 <그 산이...>를 읽으면서, 박수근과 박완서가 각자 그려낸 그 시절 서울의 모습을 상상하며 보냈다.
12월 31일에는 가족들과 함께 북촌 한옥마을에 갔다. 남편과 친분이 있는 패션디자이너 한 분이 북촌에 스튜디오가 있어 인사도 나누고 아이들도 경험시킬 겸 해서였다. 안타깝게도 아이들은 패션디자인의 세계에 별 관심이 없어서, 나와 남편만 그 분과 열심히 대화를 나누고 최근에 그 분이 출간한 자서전을 받아 들고 나왔다. 우리 부부는 우리에게 생소한 패션 분야에서 그 분이 여태까지 거둔 성공에 대해서, 그 분의 성장과정 및 재능과 노력에 대해서, 그분의 성공을 있게 한 비결과 중요한 선택에 대해서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디자이너의 스튜디오에 다녀와서 박완서 소설을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박수근이나 박완서의 생애에 대해 궁금해하지만 그건 그들의 작품을 더 풍성하게 이해하기 위해서일 뿐 그들의 성공 비결을 찾으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성공 비결을 듣고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 또는 자녀양육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 고민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디자이너의 스튜디오에서 그 분의 성공 비결만 캐물었을 뿐, 그 분이 만든 옷에 대해서나 그 분이 본인의 패션 속에서 나타내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는 궁금해하지 않았다. 뒤에 걸려 있는 샘플 옷들은 펼쳐 보지도 않았다.
그 분이 말한 본인의 성공 비결은 단순했다. 아니, 비결이랄 게 없었다. 재능과 노력과 행운이 다 맞아떨어져야 한다는 것 뿐이었다. 그분 말로는 그 분야의 재능은 이미 정해져 있고 가장 중요한 것은 행운이며 본인은 고비마다 일반적인 통념과 반대되는 선택을 했는데, 그게 운이 좋아 잘 풀리니 자기만의 개성이 되어 더 인정받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니 남들에게 자신의 방식을 따라하라고 할 수 없고, 남이 따라해도 자기 성공을 복제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아이들은 점점 자라 손이 덜 가는데도 내가 사는 건 여전히 피곤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우리는 너무 잘 하려고 해서 그렇다. '성공'으로 표현되는 어떤 가야 할 곳이 있고, 거기에 도달하기 위한 옳은 길이 있으며, 내가 그렇게 못 했으면 아이들이라도 제대로 인도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에 사로잡혀 있다. 하루하루의 일상을 살아가는 방식과 가족을 위한 크고 작은 선택들이 ‘틀리면 안 된다’는 조바심이 있다.
그러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범한 하루하루도 피곤할 수 밖에.
이제 막 만 10살과 13살이 된 우리 아이들을 바라본다. 평범하게 건강하고, 평범하게 예쁘고/잘생기고, 재주도 평범한 아이들이다. 남의 집 아이들이었다면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했겠지만, 내 아이들에게 어떤 탁월함, 또는 탁월함을 추구하는 면이 없어서 요즘엔 가끔 실망스러울 때가 있다.
공부며 예체능이며 아이들을 억지로 다그치거나 빡세게 몰아부치며 키우지 않으려 했다. 아이들에게 충분한 여유를 주고 기다리면 자기들이 알아서 뭔가 찾아갈 거라고 생각해서 그랬다. 그럼 이젠 싹이 보일 나이가 되지 않았나? 실제로 주변에서는 이제 특정 분야에서의 탁월함 또는 탁월함의 싹을 송곳처럼 드러내는 아이들이 하나 둘씩 나타난다.
사교육을 강요하진 않았지만 아이들에게 시간과 정성, 그리고 비용도 아끼지 않았는데, 아이들에게서 탁월함 또는 거기에 이르고자 하는 욕심이나 근성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실망할 때마다 내가/우리가 뭘 잘못했나 자책하게 된다. 우리의 노력이나 정성이 부족했나? 반대로 중산층 가정의 여유로움에서 비롯한 지나친 정성이 아이들을 약하게 키웠나? 우리가 잘못 판단해서 중간에 뭐 놓친 게 있나?
아이들에게서 탁월함을 보고 싶은 욕심이 내게 안 맞는 것 같다. 동기부여가 되기보다는 불만족하고 조바심만 나게 만든다. 그동안 아이들과 질 높은 시간을 보내고 정성을 아끼지 않았다는 건 자신할 수 있다. 아이들과 주고받은 사랑과 스킨십의 양과 밀도에도 아쉬움이 없다. 그러면 됐다. 더 이상의 것은 아이들이 자기의 타이밍에 자기 힘으로 이루어야 할 것들이지, 내가 이루어야 할 영역이 아니다.
올해는 몸이 쑥쑥 자라는 아이들을 보면서 더 많은 즐거움을 느끼고 가족이 함께 재미있게 노는 시간을 의식적으로 더 많이 만들어야겠다. 아이들을 너무 잘 키우려 하지 말고. 나는 그런 마음으로 2022년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