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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니스푼 Feb 07. 2022

아시안 부모의 악기교육 (2)

<아이의 잠재력을 깨워라> 래리 곽, 루스 곽

<아이의 잠재력을 깨워라>는 책의 많은 부분을 자녀들의 음악 교육에 할애했다.


이 가정에서는 아이들이 다섯 살 때부터 악기를 시작했는데, 형제간의 경쟁과 비교를 줄이기 위해서 첫째-셋째는 바이올린, 둘째-넷째는 피아노를 가르쳤다. (아시안 가정에서 악기의 기본은 피아노와 바이올린이다. 바이올린을 하다가 적성에 안 맞거나, 형제자매가 같은 악기를 하면서 비교되는 게 싫으면 비올라나 첼로 등으로 방향을 틀기도 한다.) 어려서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악기를 연습해야 했고, 대학에 진학할 때까지 중도 포기는 허락하지 않았다.


부모가 글을 쓰고 뒤에는 각각의 자식들이 본인의 감상을 덧붙였는데, 나는 이걸 읽으면서 과연 이렇게까지 해서 악기를 가르쳐야 하나 하는 회의가 들었다. 자녀 넷 중에 피아노를 좋아했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연습을 즐기며 쭉쭉 뻗어나간 자녀는 한 명 뿐이었다. 나머지 둘은 10학년이 될 때까지는 바이올린이 싫었고 악기 연주가 벌받는 것처럼 여겨져 최대한 연습을 하지 않으려 들었다. 부모와도 많은 갈등을 겪었다. 결국은 음악의 즐거움을 느끼게 되었지만, 그래도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 본인이 선택할 수 있다면 악기를 하지 않겠다고 한다. 막내도 피아노를 치기 싫어했는데, 손위 자녀들을 키우면서 지친 탓인지 부모가 막내의 피아노는 열 살 때 포기했다.


이렇게 악기 교육이 힘든 이유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힘든 악기이기 때문이다. 적당히 해서는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수준까지 갈 수 없고, 그렇다고 제대로 하려면 다른 것들을 희생해가며 연습해야 한다. 곽씨네 아이들은 공부도 잘해야 하고 운동도 했기 때문에, 거기에 악기까지 제대로 하려면 초등학교 시절부터 주말의 늦잠, 친구들과 나가 노는 것, 초대받은 생일 파티 등을 포기해야 했다. 1-2년이 아니라 십여 년을 그렇게 훈련한 후에야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한다.


힘든 것에 대한 이야기는 이만하면 됐고, 그렇다면 다음 질문은 악기 교육에 어떤 의미가 있길래 그렇게 지독하게 그것을 추구했는가? 하는 것이다. 자녀들을 음악가로 키우려는 것이 아니었으니, 음악 자체보다는 음악 교육을 통해 얻어지는 다른 가치들이 목적이었을 것이다.


특별히 음악 교육을 시킨 이유에 대해서  부부는 어려서부터 엄격하게 훈련하고 노력하는 습관을 몸에 배게 하며, 집중력을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악기 교육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어린 아이들이 하루도 빼먹지 않고  시간 이상씩 악기를 연습하도록 시키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다. 그러나 그들은 "아이들은 근본적으로 무엇이든 열심히 하기 싫어하고, 반복적이며 지루한 일은 더욱 좋아하지 않는다" 생각했다. 그러므로 갈등을 겪더라도 '매일 악기 연습' 부모가 강제해야  일이었다.


또한 그들은 자녀들이 어린 시절부터 이렇게 집중력과 인내심 그리고 고된 훈련을 통해, 아주 어려워서 아무나 쉽게 따라잡지 못하는 분야에서 탁월함을 발휘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키워주고 긍정적인 자아상을 만들어 주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도 생각했다.


굉장히 맞는 말이다. 아이들이 아직 어렸을 때 이 책을 읽은 나도 그래그래 공감하며 밑줄을 그은 부분이기도 하고. 그런데 막상 아이들을 열 살 넘게 키워 놓고 나서 다시 읽으니, 아무리 맞는 말이라도 이론과 실제는 다르지 싶다. 하고 싶어하지 않는 아이를 다그쳐 매일 억지로 연습시키는 게 과연 좋은 일인가? 집중력, 노력하는 습관, 탁월함, 자신감 다 좋은데 왜 굳이 아이가 좋아하지도 않는 피아노나 바이올린이어야 하는가? 좋아하는 다른 분야에서 하면 안 되나? 왜 꼭 음악이어야 하나?


왜 꼭 음악이어야 하나, 라는 질문에 이 책은 '악기가 가장 어려우니까' 이상의 답을 주지 않았다. 이건 마치 '왜 산을 오르는가?’ 하는 질문에 ‘저기에 산이 있으니까’하고 대답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멋있지만 여전히 납득되지 않는 답이었다. 왜 아시안 부모는 자녀에게 그렇게 열심히 악기교육을 시키는가? 도대체 악기에 어떤 비밀이 있길래. 나는 미국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여러 지인들에게 그들의 의견을 물어보았고, 그 중 가장 내게 명쾌하게 와닿은 의견은 바로 이것이었다.


왜 아시안 부모는 자녀에게 그렇게 열심히 악기교육을 시키는가? 클래식 음악이 아시안 자녀들이 백인들을 상대로 성과를 낼 수 있는 유일하게 확실한 분야였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제아무리 고학력이고 명문대를 나왔다 해도 많은 이민 1세들은 미국에서 세탁소나 리커스토어 등 소규모 자영업으로 이민생활을 시작했다. 그들은 한 세대 만에 자식들을 아이비리그 대학을 거친 전문직으로 만들어 자신들의 고된 이민생활을 다음 세대에는 물려주지 않으려 했고, 그러려면 당연히 공부도 잘해야 하지만 공부만으로는 부족했다. 스포츠는 애시당초 미국인들과 상대가 안되고 그 밖에 다른 특별활동도 언어적, 문화적으로 이민자 부모들이 뒷바라지하기에 딸리는데, 악기는 달랐다. 악기는 일단 언어가 안 필요하고, 백인들이 절대 못하는 '철저한 매일연습'을 독한 아시안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첫 세대에서 공부+악기 콤보 패키지로 자식들이 명문대 및 전문직 진입에 성공하니 그 후로 너도나도 이 성공모델을 따라해서 오늘날까지 이어졌다. 아시안 이민자들의 강점은 일도 공부도 미국인들이 따라갈 수 없을 만큼 악착같이 열심히 하는 것인데, 자녀들의 액티비티로 이걸 바꾸면 이러한 강점이 가장 빛을 발하는 종목이 바로 피아노와 바이올린 등 클래식 악기였던 것이다.


아하! 하고 답을 찾은 나는 책장에 꽂힌 다음 육아서로 넘어갔다. 다음 책은 예일대 로스쿨 교수인 에이미 추아가 쓴 <Battle Hymn of the Tiger Mother>(한국어 제목은 '타이거 마더'). 마침 이 책은 아시안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혹독하게 음악교육을 시키는 이야기로는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유명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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