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니스푼 Feb 08. 2022

아시안 부모의 악기교육 (3)

<타이거 마더> 에이미 추아

<Battle Hymn of the Tiger Mother (타이거 마더)>가 출간된 지 어느새 11년이 지났다. 한국에서도 꽤 유명했지만 처음 이 책이 미국에서 출간되었을 때 평단과 대중의 반응은 뜨거웠다.


예일대 로스쿨 교수인 에이미 추아가 본인의 두 딸을 키운 체험담인데, 그의 양육철학과 양육법이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던 것이다. 저자는 '엄격한 중국식(=동양식) 자녀교육이 느슨한 서양식 자녀교육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고, 그 예시로 두 딸에게 엄격하다 못해 혹독하게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가르쳤던 십여 년의 과정을 풀어놓는다.


그 집 딸들은 공부를 잘하는 것은 기본이요, 전공할 것도 아니면서 각자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세 살 때부터 철저하게 훈련해야 했다. 이 때 엄마가 아이들에게 강요한 연습량과 철저함은, 대단하다 혀를 내두르는 것을 넘어서 과연 이렇게 몰아붙이면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멀쩡할 수 있을까 의심될 정도다.


이렇게 엄격한 자녀교육이 효과있었는지 실제로 추아 교수의  딸은 공부와 악기 모두 뛰어났고,   최고의 명문대에 진학하여 부모의 엘리트 코스를 그대로 이어가 있다. 물론 이제는 성인이  그들의 정서적 건강이나 부모와의 관계는 내가  길이 없다. (책은  딸이 각각 16, 13살일  출간되었다.)


추아 교수의 양육법이 옳은가, 우월한가, 또는 효과적인가에 대해서는 내가 할 말이 없다. 다만 십 년 만에 이 책을 다시 읽으며 왜 아시안 부모는 자식에게 그렇게 열심히 악기교육을 시키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추아 교수의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이민 가정 3대의 흥망성쇠 이론을 주장하는데, 물론 학문적으로는 검증된 바 없지만 우리 부부를 포함해서 많은 아시안 이민자들이 경험적으로 동의하는 내용이다. 그에 따르면,


- 이민 1세는 가장 열심히 일한다. 빈손으로 시작해서 근면성실, 검소함, 끈질긴 노력으로 언어장벽과 인종차별을 넘어 자수성가를 이루었고 본인들의 고생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자녀교육에 올인했다.

- 이민 2세는 가장 성공적이다. 공부는 물론 피아노, 바이올린에 뛰어나고 명문대에 진학해서 전문직에 안착했다.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보며 자라 강한 성취욕을 갖고 있고 부모님께 항상 감사한 마음이지만, 본인 자녀들에게는 부모님이 했던 것처럼 엄격하게 대하지 못한다.

- 이민 3세부터는 망하기 시작한다. 이들은 중산층 미국 가정에서 태어나서 고생을 모르고 자랐다. 부모에게 고마운 줄도 모르고, 강한 근성이나 성취욕도 없다.


추아 교수는 자기 가정에서는 절대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중산층 전문직 부모, 물질적인 안정 등 이미 있는 것을 없는 척하며 아이들을 가난한 이민 가정에서처럼 키울 수는 없었다. 그대신 추아 교수가 선택한 방법이 클래식 악기였다. 아이들을 게으르고 속된, 평범하게 안주하는 것에서 벗어나 엄격한 자기 단련을 통해 수준 높은 성취를 추구하는 삶의 방식으로 이끌 도구로서 말이다.


바로 다음 장에서 그는 연습-성과-자신감의 선순환 이론을 주장한다. 마침 며칠 전에 우리 아이들의 피아노 선생님이 같은 이론을 주장하셨다. 피아노 선생님은 젊고 미혼이라 '타이거 마더' 책은 읽어봤을 리 없는데 말이다. 피아노는 어렵고 지루하다. 반복적이고 지루한 연습을 좋아하는 아이는 없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연습을 시켜야 실력이 는다. 피아노는 재미있어서 잘 치는 게 아니라, 잘 쳐야 재미있는 법이다. 콩쿨대회나 남들의 칭찬 등 눈에 보이는 성과를 경험하면서 자신감이 생기고 다음 단계에 도전하게 된다. 선순환이다. 이렇게 연습과 성과를 반복하며 단단하게 쌓인 자신감은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자기만의 것이 된다.


참 옳은 말이다. 그래서 십여 년 전에 아기엄마였던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추아 교수의 양육법이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새겨 들을 구석이 있다며 열심히 밑줄을 그었다. 그러나 내 딸이 13살이 된 지금은 이 책을 다시 읽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추아 교수의 이론이 틀려서가 아니다. 이론은 말이 되지만 이걸 내 자식을 상대로 실행한다면 발생할 수 있는 수많은 부작용을 알고 있고, 나는 과연 그 부작용을 감수하고 이 이론을 몰아붙여야겠다는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래리 곽이나 에이미 추아와 비교하면 나는 생각이 너무 복잡하고 회의가 많아서 악기교육에 집중할 수 없는 엄마였다.


작가의 이전글 아시안 부모의 악기교육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