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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니스푼 Mar 28. 2022

싱가포르에서의 지난 3년

비싸고 게으른 실내생활에 무기력해졌다.

3년간의 싱가포르 생활을 마치고 올 여름에는 미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하고 주위에 알리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니 아직 여기에 있는 동안에 내가 이 나라에 대해서 보고 느낀 것을 글로 정리해서 남기고 싶어졌다.


해외에서 사는 사람들의 경험담은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과 같이 제한적이고 자기 입장 위주이기 마련이다. 내가 선 자리에서 보고 겪은 것 이상을 넘길 수 없을 테니 과연 내 이야기가 누구에게 해당 사항이 있으려나. 내 입장에서 쓴 싱가포르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은 얼마나 보편성이 있을까?


처음 여기에 올 때부터 3-4년 정도 거주할 것을 예상했다. 아이들이 각각 5학년 2학년이었어서, 한 번쯤 해외 생활을 하기에 딱 적당한 나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너무 어리면 해외 생활의 경험을 다 잊어버릴 것이고 이보다 더 나이가 들면 본국으로 돌아가서 상급학교 진학 및 적응이 어려울 수 있으니 말이다.


싱가포르의 첫인상은 괜찮았다. 현지 문화와 현지 언어를 배우지 않고도 문제 없이 살 수 있고 국제학교에는 해마다 드나드는 전학생이 많아서 매년 자연스럽게 새 판이 짜이니, 새로운 나라로 이주했을 때 적응의 진입장벽이 가장 낮은 나라들 중에 하나가 싱가포르일 것이다. 깨끗하고 안전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가 온 지 반 년 만에 코로나가 닥쳐왔다. 싱가포르는 동남아시아 교통의 거점국가이기 때문에 처음 여기에 올 때는 3년 동안 아시아 전역을 두루 여행할 계획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그건 못했지만 아쉽지 않다. 코로나로 인한 여행제한은 전세계 어디서 살았더라도 마찬가지였을 테니까. 싱가포르의 철저한 거리두기와 방역정책 덕분에 아이들은 학교생활을 거의 방해받지 않고 마스크를 쓴 채로나마 대면수업과 친구관계를 누렸으니 여행 좀 못 다닌 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러나 3년을 마무리하는 지금 돌아보면 싱가포르에서의 라이프스타일은 내게 잘 맞지 않았다. 코로나가 없었더라면 다른 방식으로 가려졌을지도 모르는데, 코로나 때문에 사회생활이 제한된 채로 꼼짝없이 이 나라 안에만 갇혀 있다 보니 감출 수도 피할 수도 없었다.


싱가포르의 비싸고 게으른 인도어(indoor) 라이프를 살면서 나는 점점 무기력해졌다. 아이들은 아침 일찍 집을 나서 오후 늦게 돌아오고 청소 빨래 요리 설거지는 메이드를 시킨다. 사는 곳은 오차드 지역이라 주변의 모든 것은 외국인과 부유층을 대상으로 한 비싼 가게들 뿐. 브런치 까페도 스킨케어 살롱도 어쩌다 한두 번 가야 재미있지 매일 드나들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하트랜드(외곽 지역)의 공영아파트에 살면서 싱가포르 서민들처럼 동네 상가에서 장보고 호커센터(푸드코트)에서 기름지고 저렴한 현지 음식을 사먹으면서 살았다면 활력이 넘쳤을 리도 없다. 현지인 라이프스타일은 내겐 너무 낯설었고 외국인 라이프스타일은 너무 허무했다.


그리고 내겐 동남아 메이드가 참으로 안 맞았다. 이제 와서 생각하니 동남아 입주메이드와 가족같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남같지는 않게 잘 지내려면 (1) 어린 아이를 키우고 있거나 (2) 풀타임 맞벌이 부부여서 고용주에게는 메이드의 조력이 꼭 필요하고 메이드에게는 집안에서 어느 정도 사명감과 지위가 보장되어야 했다. 그런데 우리 가족의 규모와 구성으로는 집안에 두 명의 전업여성이 필요없으니 메이드의 역할은 점점 희미해져 갔다. 하루종일 집에 있으면서 할 일이 없어 방에서 전화기나 붙들고 있는 메이드를 보는 것도, 없는 일이라도 계속 만들어서 시키는 것도 내게는 둘 다 고역이었다.


한 마디로, 내가 집에 없었어야 했다. 내가 바빠서 집안일은 메이드에게 신나게 맡기고 매일 밖에서 돌아다녔어야 했는데 그렇게 못했다. 직장이 있지도 않았고, 골프와 외식과 쇼핑으로 돌아다니는 것도 적성에 안 맞고, 일주일에 서너 번씩 교회 모임에 다니고 싶지도 않았으니 갈 곳이 없었다.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시간을 보내고 에너지를 쏟을 수 있는 일들을 더 많이 찾을 수 있었겠지만, 이유가 무엇이든 하지 않은 일들에 대해서는 아쉬워하면 안 되겠지.


그렇게 코로나가 2020년과 2021년을 꽉 채우고 어느새 삼 년째에 접어드는 동안 나는 다양한 취미생활을 시도해 봤다. 여러 가지 취미 중에 그래도 새롭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싱가포르의 각종 박물관을 두세 번씩 반복해서 방문하며 가이드투어에 참가한 것이다. 다음 글은 박물관에서 배운 싱가포르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내 감상을 정리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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