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니스푼 Apr 07. 2022

"이게 과연 옳은 결정일까요?"

둘째에게 최신 아이폰을 사주었다.


둘째가 작은 피아노 콩쿨에 나가게 되었다. 다양한 대면 기회가 적었던 코로나 시대에 무대 경험 한 번 쌓아보라고 내보낸 콩쿨이었고 결과에 대한 기대는 없었는데, 그래도 아이가 너무 의욕이 없고 연습을 하기 싫어하니 조금 난감했다. 동기부여를 해보자며 남편이 보상을 걸고 싶어했다.


요즘 아이가 부쩍 전화기를 갖고 싶어하는데 사달라며 조르지는 않고 있었다. 우리는 전자기기 사용에 적극적인 부모가 아닌데다가, 첫째도 초등학교를 마친 후 (미국 초등학교는 5학년까지)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서야 첫 전화기를 사 줬다. 그걸 잘 알고 있는 둘째는 졸라 봤자 자기에게만 전화기를 일찍 사줄 것 같지 않으니, 아예 조르지도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남편이 콩쿨에 입상하는 조건으로 엄마더러 전화기를 사 달라고 하라며 아이를 꼬셨다. 남편은 둘째가 지나치게 현실인식이 빠르고 주제파악을 잘 하는 것을 아쉬워하던 차였다. 불가능한 꿈을 꾸고 말이 안 되는 요구 조건도 대범하게 제안해 오는, 그런 당돌한 면이 아이에게 있었으면 했나 보다. 딱히 입상할 것 같지 않으니 나도 동의했다. 3등 안에 들면 스마트폰을 사주기로.


그리고 아이는 딱 3등을 했다.




아이를 둘 이상 키우다 보면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두 아이에게 같은 잣대를 적용할 수가 없을 때가 많다. 첫째에게 스마트폰을 사주는 것에 대해서 나의 원칙은 다음과 같았다.


1. 최대한 늦게 사주고 싶지만, 친구들 중 마지막까지 스마트폰이 없는 애가 되게 하지는 않겠다.

2. 스마트폰은 상도 벌도 아니다. 친구들은 뭘 더 잘해서 스마트폰을 일찍 받은 것이 아니고, 너는 뭘 잘못하거나 자격이 없어서 늦게 받는 것이 아니다.

3. 오래 기다린 만큼 최신 스마트폰으로 사주겠다. 그 대신 최대한 오래 써라.


둘째에게는 이 원칙의 1과 2가 다 깨지게 생겼다. 누나보다 1년 2개월 먼저 스마트폰이 생기는 것인데, 이 시기에는 그 차이가 커서 친구들 중 느지막히 전화기를 장만한 누나와 달리 둘째는 일찌감치 전화기를 갖는 편이 된다. 그리고 둘째는 피아노 콩쿨에 입상했기 때문에 상으로 스마트폰을 일찍 받는 것이다.


그러면 원칙 3은 어떡하나. 당장의 전화기에 마음이 급한 아이는 너무 오래되서 앱이 잘 구동되지 않는 것만 아니면, 그냥 아무거나 저렴한 아이폰 사주시면 충분하다며 저자세로 나왔다. 그런데 그러면 '좋은 것을 사 줄 테니 오랫동안 잘 써라'는 소비의 대원칙에도 어긋날 뿐 아니라, '현실에 지나치게 안주하지 않고 욕심을 낼 줄 알았으면' 하고 스마트폰을 보상으로 내건 애들 아빠의 본래 의도에도 맞지 않는다.


일단은 온 가족이 함께 애플 매장에 전화기를 보러 갔다.


아이폰 11이 $800 (싱가포르 달러), 아이폰 12가 $1,150, 아이폰 13이 $1,300 이었다. 이미 지난 몇 달 동안 애플 홈페이지에서 각 전화기의 가격과 사양을 조사한 아이는, 그러고도 마음을 정하지 못해서 세 모델 사이를 왔다갔다 했다.


가격에 상관없이 일단 네가 가장 원하는 조건 또는 모델이 어떤 것이냐 하고 물었더니 아이는 아이폰 11이 제일 좋고, 다음으로는 12, 마지막으로 13이라고 한다. 비록 최신이지만 아이폰 13이 썩 탐나지 않는 이유를 댄다고 대는데 그다지 설득력은 없었고, 아무래도 아이가 가격을 의식하고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도 며칠을 더 고민하던 아이는 여러 번 재차 묻자 아이폰 13이 제일 좋고, 다음으로 12, 마지막으로 11이 좋아졌다며 순위를 바꿨다. 당연한 거 아닌가? 가격 상관없이 원하는 모델을 받는다면 최신의 고사양 아이폰이 좋은 게 사람 마음. 그런데 우리 둘째는 차마 비싼 걸 갖고 싶다는 결심도 못 하고, 비싼 걸 사달라고 조르지도 못하는 아이다.


둘째는 항상 가격을 의식할 뿐 아니라, 수중에 돈이 들어오면 차마 쓸 줄을 모르는 짠돌이 기질도 있다. 한 달에 자기 나이만큼 용돈을 받는데 (지금은 열 살이니까 10달러), 그 푼돈을 몇 년 동안 고스란히 모아 700달러를 만들어 서랍 속에 모셔둘 정도다. 돈을 쓸 때 쓰는 배포는 타고나는 것이지만, 그래도 기회가 있을 때 돈 쓰는 걸 연습하게 하고 싶어서 내가 제안을 했다.


"누나가 아이폰 11을 갖고 있으니 너는 네 시대에 맞게 한 레벨 업그레이드해서 아이폰 12를 사줄께. 지금 아이폰 12가 그 때 아이폰 11 가격이기도 하니까 그게 공평하겠지. 그러나 네가 그동안 모은 돈으로 차액을 부담해서 아이폰 13으로 업그레이드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라."


며칠 더 고민하던 아이는 다시 엄마 손을 잡고 애플 매장에 갔다. 아이폰 12와 13 사이를 또 수없이 왔다갔다하던 아이가 말한다.


"엄마, 친구들한테 물어봤는데 아이들이 150달러를 내가 내야 한다면 굳이 13을 살 필요가 없대요."

"네 친구들이 네가 700달러를 갖고 있는 걸 알았어도 그렇게 이야기했을까?"

"........아니요."


이렇게 뒤돌아보니 결국은 내가 아이폰 13을 사도록 아이를 유도한 것 같다. 그렇다. 어차피 천 불 돈을 들여서 큰맘먹고 장만하는 첫 스마트폰. 오래오래 기쁜 마음으로 잘 쓰려면 지금 장만할 수 있는 최상의 것으로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다시 한 번 나한테 묻는다.

"엄마, 이게 과연 옳은 결정일까요?"

"옳은 결정이란 없단다. 사람은 미래를 몰라. 지금 네가 할 수 있는 결정을 하고, 그 후에는 네 결정을 옳은 것으로 만들어 가는 수밖에 없어."


그렇게 아이는 주머니돈을 헐어 아이폰 13을 샀다.




가족 중에 가장 어린 아이가 가장 신모델의 아이폰을 들고 신이 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생각한다. 옳은 결정이란 뭘까? 아이에게는 자신있게 이야기했지만 사실은 나도 모른다.


10살짜리 아이에게 비싼 스마트폰을 사준 게 과연 옳은 결정이었는지. 피아노 콩쿨 입상을 조건으로 스마트폰을 내걸은 건 옳은 결정이었는지. 아이는 여전히 피아노를 치기 싫어하는데 그래도 레슨을 계속하는 게 옳은 결정일지. 아이를 학교 수학반에서 뺀 건 옳은 결정이었는지.


올 여름에 미국으로 돌아가는 게 과연 옳은 결정인지. 미국을 떠날 때 집을 팔고 왔던 건 과연 옳은 결정이었는지. 미국을 떠나 싱가포르로 왔던 것은 옳은 결정이었는지. 여기 온다는 핑계로 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된 것은 과연 옳은 결정이었는지.


그 때의 결정들이 달랐다면 지금은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아이들을 키우면서 크고 작은 수많은 결정들을 다르게 했다면, 과연 결과가 달라졌을까?


세상 일은 불확실하다. 언제나 의도대로 일이 풀리는 것도 아니고 계획대로 흘러가지도 않는다. 원인과 결과는 또 얼마나 복잡한가. 한 가지 원인이 한 가지 결과를 가져오는 것도 아닌 데다가, 같은 원인을 입력했어도 결과가 달라질 수 있고 다른 원인을 넣었어도 결과는 결국 같을 수도 있다.


뜻대로 풀리지만은 않았던 인생을 살아 보니, 그리고 십여 년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나는 내 결정에 대해서 변명하지 않게 되었다. 그 당시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때 내가 살던 세상에서 내가 알고 있는 정보에 근거해서는 그랬다. 그런데 살다 보니 세상이 변하기도 하고, 그때는 몰랐던 것들을 새로 알게 되기도 하고, 내가 갖고 있는 패마저도 변해서 최선의 결정이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 때가 많다.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다른 선택을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의 결과를 보고 나서 지나간 선택을 비판하는 것은 사후확증편향(hindsight bias)에 따른 해석일 뿐이다.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어도 그 때 그 선택은 최선의 것이었을 수 있다. 인생에서도, 그리고 육아에서도. 그러니 결과가 성공적이지 않더라도 내 선택에는 자신감을 가져야겠다. 그리고 지금 보는 결과 또한 최종적인 것이 아니다. 더 먼 미래에서 보면 결국 좋은 결과가 될지도, 또는 별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고민은 짧게, 결정은 자신있게.


말은 이렇게 해놓고도 아이에게 $250을 내고 애플케어(AppleCare) 스마트폰 보험 플랜을 사주어야 하나 또 잠시 고민한다. 내 아이의 신중함은 믿지만, 주변의 친구들이 전화기 빌려달라며 서로 붙들고 아우성치다가 어떤 사고가 일어날지 모르니 말이다. 세상 일은 모르는 법이다.


작가의 이전글 아이의 사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