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니스푼 Apr 03. 2022

아이의 사춘기

취침시간이 늦어진다.

아이의 사춘기가 다가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우리 집에서는 아이의 취침시간이 늦어지는 것으로 사춘기의 진행상황을 측정할 수 있다.


등교시간이 일러, 지난 2년 동안 아이들 기상시간은 6시 20분이었다. 최소 8시간 수면을 위해 10시에는 재우는데, 요즘 아이가 잘 준비를 하는 시간이 자꾸 길어지는 참이었다. 그러던 중 하루는 아이가 10시까지 잘 준비를 마친 것을 보고, 우리 부부도 더 늦기 전에 드라마 한 회를 보고 자려고 넷플릭스를 틀었다.


보통은 아이를 침대에 누이고 불을 끄고 뽀뽀하는 모든 리츄얼을 마친 후에 드라마를 시작하지만, 그날은 아이도 준비를 마쳤고 본인이 알아서 자겠다고 방으로 들어가기에 그대로 뒀다. 10시 15분에 아이가 제대로 자고 있는지 확인하러, 드라마를 잠시 멈추고 아이 방으로 갔는데 방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아마 아직 안 누웠을 것 같다… 잠시 망설였지만 본인이 방문을 꽉 닫기까지 했으니 조금 더 시간을 주기로 결정했다. 정해진 10시가 아니면 늦어도 10시 반까지는 어김없이 침대에 눕는 아이니까. 남편에게는 아이가 자고 있다는 식으로 둘러대고 드라마 시청을 계속했다.


11시에 드라마가 끝나고, 아이가 지금쯤은 잠들었을 테니 에어컨 타이머랑 이불 덮은 거 한 번 확인해 주려고 아이 방문을 열었는데.... 방에는 불이 환하게 켜져 있고 아이는 자동차 헤드라이트 앞에 선 사슴처럼 눈이 커진 채 방 한복판에 서 있었다.


"아, 엄마... 자다가 잠깐 깨서 화장실에 갈려고..."

"아니야, 아니야,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


애도 나도 너무 놀랬다. 아이가 아직도 안 자고 있는 줄을 알면 남편이 화를 낼 것 같아서 먼저 형광등과 룸 램프와 책상 위 스탠드까지 불부터 전부 다 끄고 얼른 아이를 눕혔다. 이렇게 모든 스위치가 다 올라가 있는데 자다 깨서 화장실에 가던 참일 리가 없다. 아이는 놀래서인지, 안 자다가 걸린 것 때문인지, 아니면 거짓말을 한 게 창피해선지 쪼그리고 돌아누워 말이 없었다. 평소에 매우 정직한 이 아이가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아무 말이나 해대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한동안 같이 누워 있다가 나중에 물어봤다.


"엄마가 딱 하나만 물어볼께. 대답해 줄거야?"

"봐서....."

"10시에 자려고 했는데 다른 거 하다가 잊어버린 거야? 아니면 그냥 자기 싫어서 아직까지 안 잔거야?

"자기가 싫어서 안 잔거야."

"그렇구나... 자기가 싫었구나..."

"......."


진짜 작은 일인데. 아이가 아무런 이유 없이 그냥 빨리 자기 싫어서 최대한 버티는 게 잘못도 아니고 그럴 수 있는데, 이 작은 일에서 아이의 사춘기가 시작했다는 걸 확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아이를 믿어주는 건 중요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나는 아이가 실수할 것이 뻔한 부분은 그러기 전에 확인하고 예방했어야 했다.


11시가 넘어서까지 자기 싫은 건 이해한다. 그러나 아이에게 최소 8시간 수면시간을 지키게 하는 건 여전히 내 책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아이가 제 시간에 불 끄고 눕는 것까지 봤어야 했다. 그래야 안 자고 버티다가 수면시간을 잃는 것은 물론, 급한 김에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까지 막을 수 있었는데 말이다.


아무튼 요즘 딸의 변화를 보면 신기하고 새롭다. 나 때랑은 너무도 다르다. 세상이 달라지기도 했지만, 나는 이미 그 시기가 한참 지난 사람이기 때문에 내 기억을 믿을 수가 없다. 마침 며칠 전에 아마존에서 주문한 책 "The Teenage Brain"이 이제 막 도착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시기적절할 수가!


아이의 사춘기가 공식적으로 시작했고, 나는 새로운 과목을 예습하는 기분으로 개론서 한 권을 읽기 시작한다.


작가의 이전글 싱가포르의 정체성 만들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