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자녀와 고전 읽기
올 여름방학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고등학생 첫째와 함께 읽었다. 나는 이 책을 중학교 때 처음 읽었는데 이제 4회독쯤 되고 딸은 처음이다. 둘이서 속도를 맞추기 위해 딸은 영어본 나는 한글본으로 읽고 있는데, 천 페이지가 넘는 1930년대 소설을 함께 읽으면서 왜 요즘 아이들에게 고전문학을 읽히기가 이렇게 힘든지 알게 되었다.
예전에 이 책을 읽는 방식은 이랬다. 우연히 책을 집어든다 - 너무 재미있어 빨려든다 - 멈출 수가 없어서 하루이틀 걸려 아무것도 못하고 이것만 읽는다 - 머리가 하얗고 입이 마르고 눈을 반짝거리며 책을 덮고 일어난다.
그런데 이제는 나도 더 이상 그렇게 읽을 수가 없다. 소설의 호흡이 너무 느리다. 그렇다고 조금씩 끊어 읽자니 흐름이 끊기고 책이 너무 길어 끝이 안 난다.
나에게도 정신적인 역기운동을 하는 느낌이었다. 재미가 없는 건 아닌데 너무 느리고 끝이 안나니 나중에는 엄청 무겁게 여겨졌다. 더군다나 번역본은 당대의 표준 한국어로 풀어 써져 있는데, 원어본은 1920년대 언어에 당시 흑인들의 남부사투리를 그대로 담고 있으니 미국 청소년에게는 더욱 읽기 힘들 수밖에.
그리고 느린 호흡. 영상이었다면 한 장면으로 스쳐 지나갔을 풍경, 표정 하나로 드러냈을 감정을 소설은 몇 페이지에 걸쳐 서술한다. 분명히 옛날에는 그 묘사를 통해서 책 속의 세계로 빠져들어 갔는데 이제 내 눈과 머리는 훨씬 빠르게 달려가는 바람에 중간중간 참을성을 발휘해서 천천히 걸어야 한다. 마치 자동차를 타다가 마차로 비꿔타고 이동하는 속도감이다. 관광용으로 마차를 타고 잠시 공원을 돌 수는 있겠는데, 정말로 자동차 대신 마차를 타고 다니면서 생활할 수는 없다.
실은 작년에 아이에게 이 책을 사주면서 "일주일 동안 다 읽어라"고 했는데 여름에 한 번 실패했고 겨울에 또 한 번 실패했다. 이게 아니다 싶어 나도 같이 읽기로 했는데 곧 깨달았다. 이 책을 일주일 동안 몰두해서 읽는 게 불가능하구나. 이젠 나도 그렇게 못하겠구나. 그래서 전체 63개 챕터를 하루에 한 챕터씩 읽어서 두 달 동안 완독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왜 굳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읽혀야 했는가. 문학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이 책의 동시대적 의미는 더 이상 크지 않은 줄 알면서 말이다. 내 경우, 딸이 올해 미국사 1 (US History 1)을 필수과목으로 수강하는데, 이 시기의 핵심 사건은 건국과 남북전쟁이다.
문학에도 역사에도 관심이 없어서 배경지식이 별로 없는 아이에게 (1) 어느 정도의 양감을 가진 역사물 텍스트를 읽히길 바랐고, (2) 어차피 미국 고전문학 중에서 그나마 이만큼 재미있는 대중소설도 드문 데다가, (3) 잘 만든 영화가 있어서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영화를 보면서 줄거리를 정리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이 소설의 현재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른 텍스트를 동원해야 했는데, 이미 힘들게 옛날 책을 읽고 있는 아이에게 또 다른 옛날 책인 <톰 아저씨의 오두막>은 읽힐 수 없었다. 그 대신 영화 <해리엇 (2019)>, <영광의 깃발 (1989)>, 그리고 <노예 12년 (2013)>을 보면서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정리했다.
그런데 소설 뿐 아니라 영화도 뭐가 됐든 옛날 작품은 이제 요즘 아이들이 쉽게 재미있어할 수 없겠다는 걸 깨달았다. 이야기를 진행하는 스타일 자체가 달라서 그렇다. 아이들은 1989년작 <영광의 깃발>을 보면서 혼란스러워 했고, 나는 2019년작 <해리엇>을 보면서 가볍고 어수선하다고 느꼈다.
긴 책을 읽는 것에 대해서 아이들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너희들이 지금 넷플릭스에서 좋아하는 시리즈를 몰아보기하는 것처럼, 영상이 없던 시절 사람들은 책을 몰아 읽었다. 디킨스 시절의 영국인들은 신문에 매주 연재되는 디킨스의 소설을 기다리고 (드라마의 새 에피소드가 올라오기를 기다리듯이!), 저녁이면 난롯가에 모여앉아 그 소설을 낭독하고 듣는 게 가족 및 친구들과의 여흥이었다고 한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도 긴장되어 미칠 것 같은 시간을 때우느라 멜라니 윌크스가 <레미제라블>을 낭독하는 장면이 있다. 전쟁터의 군인들도 밤마다 <레미제라블>을 읽었다는 언급이 있고. 여흥을 위한 방법은 시대마다 달라지지만 굉장히 오랜 동안 영상 대신 소설이 그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아이들이 알아주기를.
p.s. 아이가 챕터 50 정도에 도착했을 때 40번대부터 현재 진행중인 소설 내용을 나눠봤는데 역사적인 배경지식을 얻거나 소설 속 인간군상을 이해하기는 커녕, 기본적인 스토리도 제대로 따라가고 있지 못하다는 걸 깨달았다. 프랭크 케네디가 왜 KKK단의 활동에 끼어들어 죽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억지로 읽히는 것의 한계가 이런 거구나. 어려워하는 고전을 최대한 쉽고 가능한 방식으로 도와주어 읽히려던 나의 노력이 무색하여 조금은 실망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