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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생영철 Apr 30. 2019

망원동 2년 살기를 계획하며

2019.04.28

2018.12.08

뉴스타파에 입사했다.

 생각지도 못한 기자 생활. 더군다나 서울 생활이라니! 당시 호주 TAFE을 준비하던 나는 꿈을 이뤘다는 성취감과 함께 다시 호주로 가지 못한다는 아쉬움을 느끼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뭐.. 어찌 됐든 합격한 거 일단 가보자. 당시의 나는 서울살이를 너무나 쉽게 생각했다.



입사 첫날 국회 앞 시위 취재 현장에서
지금은 MBC 사장이신 최승호 선배와는 만나면 셀카 찍는 사이다 얼굴 작아 보이려고 항상 내 뒤에 서신다



 대학교에서 조교로 일하던 나는 없는 시간을 쪼개 일단 집부터 알아보러 상경했다. 하지만 역시나 하루 만에 집을 찾을 순 없었다. 당시 나보다 한참 오래전에 올라와있던 후배의 도움으로 영등포에 있는 고시원을 구했다. 월세 50만원. 고시원 치고는 미친 듯이 비싸다. 하지만 성인 남자 3명이 잘 수 있고 작은 냉장고, 최신 TV, 광랜, 화장실까지 갖춘 꽤 럭셔리한 고시원이었다. 그리고 추운 겨울에 찜질방 수준으로 보일러를 틀어줘서 한겨울에 이불 없이 감기 한번 안 걸리고 잠을 잘 수 있었다.

 하지만 고시원은 고시원. 공용 주방에서 취사가 가능했지만 밥을 해 먹는단 건 불가능에 가까웠고 거의 매일 옆방 남자의 영화 소리로 밤새 잠을 설쳐야만 했다. 그리고 아침 7시 출근, 밤 11시 퇴근을 하던 내 업무 패턴 때문에 내가 견디질 못했다.

 처음 고시원을 들어갈 땐 3개월 정도는 한번 살아볼 만하지라고 생각했다. 근데 고시원 생활을 하며 몸이 점점 아파왔다. 어쩌다 주말에 쉬게 되어도 좁고 시끄러운 고시원이 불편해 옆 건물 스타벅스에 대피해 하루를 보내며 하루빨리 집을 옮겨야겠다 다짐했다.



입사 당시 태극기 집회만 가면 몸을 사렸다


수습기간 내내 거의 살다시피 한 헌법재판소



 그렇게 옮기게 된 집은 양평동에 위치한 오래된 오피스텔이다. 여기는 다른 곳에서 일하는 학교 후배가 이미 살고 있는 곳이었다. 안 그래도 서울에 아는 사람도 없으니 가까운데 살면 좋겠거니 생각해서 옮긴 곳이었다. 출퇴근 시간이 10분 정도 늘어났지만 뭐.. 그 정도는 감수할 만했다. 근데 그 후배나 나나 둘 다 일에 치여 사는 사람이라 1년간 몇 번 보지 못했다.

 그 집에서 보는 안양천은 정말 예뻤다. 집 앞을 가로막는 건물이 없어서 뷰도 훌륭했다. 매일 밤 밝게 빛나는 목동을 보며 언젠가 저기로 이사 가겠다고 다짐도 했다. 노을이 질 때 붉게 물드는 하늘, 봄에 안양천을 따라 벚꽃. 그 집에 추억이 많다.

 하지만 그 집은 서부간선도로 바로 앞이었다. 매일 밤 10시쯤 집 앞을 지나는 도로 청소 차의 진동은 집안을 들었다 놨다 했다. 작은 소음에도 민감한 나는 거의 매일 밤을 깨서 지냈다. 귀마개를 껴도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덕분에 불면증으로 3개월 넘게 고생했다. 그리고 화장실이 불투명 유리로 돼있었다. 친구들이 와서 자는 날이면 쉽게 화장실도 못 가서 1층 로비까지 뛰어가곤 했다.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여름에 에어컨을 켜야 하는데 대체 에어컨 전원이 어딧는질 몰라 한 달간 땀을 뻘뻘 흘리며 고생했다. 겨울이 되자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집이 미친 듯이 추웠다. 방안에 있으면 입김이 보였다. 그제야 처음 이 집에 이사 왔을 때 창문 쪽 벽 전체를 막은 뽁뽁이의 존재 이유를 알게 됐다. 창틀은 뒤틀려 바람이 새어 들어왔고 날이 더 추워지자 얼음이 얼었다. 창문을 단열 필름과 뽁뽁이로 막았지만 냉기를 어찌할 수 없었다. 보일러를 아무리 켜도 바닥은 미지근하고 공기는 너무나 추웠다. 그때 난방 텐트를 처음 사봤다. 학창 시절 겨울에 자취방에서 텐트 치며 사는 친구에게 뭐 그리 궁상이냐고 비웃었던 내가 부끄러웠다. 겨우겨우 그 추운 겨울을 났다. 덕분에 좋은 집을 찾는 노하우가 생겼다.


퇴근길 내가 살던 오피스텔과 저 멀리 하이페리온이 보인다
2017년 어느 봄 해 질 녘의 안양천. 저 멀리 목동 현대백화점과 아파트들이 보인다.



 다시 영등포로 돌아왔다. 이번엔 역 근처에 위치한 신축 오피스텔이었다. 에어컨 켜기도 편하고 새시도 완벽하다. 화장실도 본가보다 좋다. 10층이라 소음도 거의 없다. 3층엔 공용 헬스장이 있는데 사람이 거의 없다. 여러모로 완벽한 집이다. 여기에 살면서 내 생활수준도 확 올라갔다.

 하지만 영등포의 특성상 진짜 동네가 별로다. 사람 살 곳이 못된다. 그리고 6평 오피스텔인데 붙박이장 때문에 훨씬 공간이 작다. 빨랫대를 펼쳐두면 온 집안이 비좁아 보이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한다. 돈도 문제였다. 월세가 비쌌다. 월세 50에 관리비만 10만 원이 넘는다. 어떻게든 이 돈을 줄여야 했다.



아침마다 보는 풍경. 꽉막힌 도로를 보며 차가 없어 다행이란 위안을 얻는다.


전세로 가자!

 자취 3년 차. 다음 집은 어떻게든 전세로 갈 거란 목표를 세웠다. 내가 무척이나 믿고 따르는 선배가 어떻게든 전셋집을 가는 게 맞는 거라 조언해주셨기 때문이다. 한 달을 네이버 부동산과 피터팬, 다방과 씨름했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포기하려던 즈음에 주변에서 집은 발품 팔아야 된다고 조언했다. 그날부터 퇴근하면 내가 살고 싶은 동네의 부동산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전세 매물은 정말 없었다.

 그러다 소개받아간 망원동의 한 부동산에서 뜻밖에 집에 대해 들었다. "체리색 몰딩인데 괜찮아요?" 한평생 아파트에서 살아온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일단 가봤다. 망리단길 초입에 위치한 지은 지 20년 된 투룸 빌라. 집을 들어오면 가운데 거실 겸 부엌이 있고 양옆으로 큰방과 작은방이 있고 낡은 베란다가 미친 듯이 컸다. 하지만 비가 오는 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집엔 습기가 없었다. 잡다한 냄새도 나지 않았다. 순간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진짜 이사 갈 집을 보면 그냥 이 집이다라는 생각이 난다" 그래 이 집이었다. 비록 체리색 몰딩에 비취색 화장실을 가진 낡은 빌라지만 내 첫 전셋집으로 이만한 집은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흥분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시크하게 부동산 아줌마에게 계약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렇게 나의 망원동 2년 살기는 시작되려 한다.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건 어제 '줄리 앤 줄리아'라는 영화를 봤기 때문이다. 줄리는 줄리아 차일드의 요리책에 소개된 524가지 레시피를 365일간 마스터하는 계획을 세우고 매일 블로깅을 했다. 이것에 나 또한 크게 감명을 받아 이제 나도 망원동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매일 기록해 보려 한다.



스타벅스는 사랑이다
입주 청소 후. 스산한 분위기가 감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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