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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순이 Apr 11. 2022

지난 오늘, 블로그에 남겨둔 추억을 돌아보세요.

 지난 오늘블로그에 남겨둔 추억을 돌아보세요.

 네이버의 친절한 서비스를 고맙다고 해야 할까, 그만하라고 해야 할까. 추억 여행은 고맙지만, 비공개로 돌린 흑역사까지 들이민다.

포스팅을 한 게 10년도 더 전이라, 남이 쓴 글을 읽는 기분으로 둘러봤다. 덩그러니 놓여있는 핑크색 캐리어가 섬네일인 글이 눈에 띄었다. 나의 첫 해외여행인 오사카 여행기였다.


 이십 대 초반, 홀로 일본 여행을 계획했다. 내가 길치인 걸 아는 가족과 친구들은 걱정을 앞세웠지만, 나는 마냥 설렜다.

 비행기 표를 구입하고, 숙소를 예약하고. 책을 구입해 읽으며, 블로그 후기를 검색했다. 여행기를 계속 봤더니 이미 다녀온 기분이 들었지만 설렘이 반감되진 않았다. 홀로 여행을 계획하는 일은 꽤 즐거웠다. 이제야 진짜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캐리어를 끌고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콩닥거리던 심장이 탑승구로 들어서는 순간엔 미친 듯이 뛰었다. 흥분은 비행기를 타서도 이어졌다. 별거 아닌 기내식도, 책자도 신기했다. 일부러 고른 창가에서 상공의 풍경을 즐겼다. 고개를 들어야 올려다볼 수 있는 하늘, 구름이 바로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비행이 익숙해질 무렵, 간사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타국의 공항은 공기마저 달랐다. 낯선 풍경과 문자들이 어지러웠다.

 한 방향을 향해 걷는 이들을 따라 걷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다시 걷다가 공항 밖으로 빠져나왔다. 수첩에 미리 적어놓은 메모를 보며, 시내로 가는 방법을 확인했다. 나의 첫 목적지는 도톤보리였다. 그런데...... 뭔가 허전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수하물로 부쳤던 캐리어를 안 들고 나온 것이다. 홀린 듯 앞사람을 따라걸었는데, 하필 수화물을 부치지 않은 사람이었다.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입국장 앞으로 달려갔다.

 '누구한테 이야길 해야지. 이 멍청한 짓을 뭐라고 설명하지?!' 머릿속이 하애졌다.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이제 막 입국장에 들어서던 일본 승무원이 말을 걸어줬다.

 "무슨 일 있어?"

 "…안에 캐리어를 그냥 두고 와버렸어."

 나는 봤다. 그녀의 동공이 미친 듯이 흔들리는걸...

 "땡큐..."

 안으로 데리고 가준 승무원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컨베이어 벨트 위의 핑크색 캐리어를 보니, 그제야 웃음이 나왔다.

 '액땜을 확실히 했군...'

 바들바들 떨 땐 언제고, 의기양양했다. 액땜을 했으니, 앞으로 차질은 없으리라. 이 일을 교훈 삼아 조심, 더 조심하자고 다짐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고난은 끝이 아니었다. 이후, 금각사에서는 지갑을 잃어버렸다. 기념품을 사며 지갑을 잠시 내려놓는다는 게 그대로 두고 온 것이다. 혼비백산하며 달려가니 한 할아버지가 지갑과 함께 기다리고 계셨다. 환하게 웃으며 일본어로 말씀하셨는데 아마도 '걱정했다', '찾으러 와서 다행이다',라는 류의 말이었지 싶다(설마 정신을 어디다 두고 다니냐,라는 말은 아니었겠지...?). 여기서도 고개를 숙이며 땡큐를 연발했다.

 

 끝이 아니다. 놀이동산 티켓을 잃어버렸다. 쇼핑한 물건을 그대로 지하철에 두고 내리기도 했다. 버스를 잘못 타거나 길을 잃은 건 셀 수 없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 남은 엔화를 소진할 목적으로 공항에서 쇼핑을 했는데 그것도 화장실에 두고 왔다(다행히 승무원이 무전을 해 가져다줬다......).


 코로나 이전, 최근 여행지도 오사카였다. 남자 친구와 함께 갔고, 무엇보다도 스마트폰과 함께였다. 목적지를 구글맵에 저장해 놓고, 교통 편도 필요할 때마다 검색했다. 오사카 여행 관련 앱을 다운로드했다. 덜렁대며 길을 잃지도, 물건을 잃어버리지도 않았다. 

 그런데 왜… 너덜너덜해진 책을 더듬으며 잔뜩 긴장해 걸었던 거리들이 더 기억에 남을까. 이제는 비행기를 타도 설레지 않고, 넋 놓고 바라보는 풍경이나 경험도 줄었다.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건 아니지만... 가끔은 그립다. 그저 오늘도 블로그에 남겨둔 추억을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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