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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순이 Jul 03. 2022

치과 보험을 신청하며

엿이 이렇게 위험합니다

"자꾸 소리 지르시면 진짜 아픈 걸 구분 못 해요."

지친 목소리의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으예 예으예으...(네... 죄송해요)"

미루고 미루던 치과를 다녀왔다. 출처가 기억 나지 않는 엿을 먹다가 씌웠던 금니가 빠졌다. 방치하다 이가 깨졌고, 그대로 뒀다 썩었고...... 치과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 나는 유독 심했다. 그 소리, 냄새, 비용! 계속 미루다가 결국 어르신들이나 한다는 임플란트를 하게 됐다. 

'그놈의 엿만 안 먹었어도......' 

머리까지 울리는 듯한 진동을 느끼며 후회했다. 이건 다 엿때문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엄마는 몇 가지 당부를 했다. '모르는 사람을 절대 따라가지 말아라.', '불량 식품 먹지 말아라.'. 

여덟 살의 나는 엄마가 하지 말라는 건 하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을 따라가지도, '불량 식품'을 먹지도 않았다. 아폴로, 논두렁, 쫀드기... 모두 '불량' 식품이었다. 친구들이 학교 앞 문방구에서 간식을 고를 때도, 권할 때도 고개를 저었다. 

"엄마가 먹지 말랬어."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는 친구들을 뒤로한 채, 연필이나 지우개를 샀다. 거절이 쉬웠던 건 '불량 식품'의 비주얼이 싫어서였다. 알록달록해서 음식이 아닌 거처럼 보였다. 덕분에 꽤 오랜 시간 동안 엄마 말을 착실하게 듣는 아이일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상하게 불량 식품에 유혹을 느꼈다. 더 이상했던 건, 끌렸던 간식이 친구들이 항상 권하던 아폴로도, 쫀드기도, 밭두렁도 아닌 엿이었다는거다. 엿이라니... 오 십원 하는 엿을 두 개 사서, 우선 한 개를 욱여넣었다. 엿은 지우개보다도 작은 직사각형에 납작한 모양이었다. 얇은 비닐에 싸여 있었으며 계속 이에 달라붙었다. 무섭기도, 재미있기도 한 식감이었다. 

우리 집은 학교에서 10분 거리였다. 엿을 먹기에는 충분했고, 엄마가 눈치챌 리도 없었다. 

시골에 계신 할머니가 종종 시골에서 올라오셨다. 할머니의 짐꾸러미에는 각종 과일과 떡, 과자, 그리고 엿이 있었다. 할머니의 엿은 떡처럼 말랑말랑했다. 문방구 앞 50원짜리 엿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 맛을 기대했던지라 실망을 했지만, 그래도 맛있었다. 

그런데 신호등을 건너자마자, 저 멀리서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엄마였다! 


그 날 따라 엄마가 왜 마중을 나왔는지 모르겠다. 내 기억 속 처음으로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경험을 한 날이었다. 부랴부랴 엿을 뱉고 두근두근 대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엄마에게 갔다. 

엄마가 내가 엿 뱉는 걸 봤는지, 전혀 몰랐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혼난 기억이 없는 것으로 보아 보고도 못 본체 해줬거나 정말 못 봤거나 했지싶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 놀랐나 싶고, 엿이 그렇게 먹고 싶었었나 싶고......


그때의 트라우마(?) 때문인지 그 이후에도 불량식품은 사 먹지 않았다. 엿은 더더욱. 불량 식품을 보면 그에 대한 향수나 먹고 싶단 생각보단, 엄마를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던 그때의 기억밖에 없다. 

계속 그렇게 쭉- 트라우마를 간직한 채 살았더라면 좋았으련만...... 망각의 동물은 어쩌다 얻은 엿을 먹게 되고, 금니가 빠지게 되고, 그걸 방치하게 되고...... 최악이다. 이런 엿... 다시는 절대로 먹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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