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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순이 Oct 27. 2022

1999년, 미술 대회의 추억

 세일러문을 보며 자란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만 해도 만화가가 꿈이었다. 하지만 졸업하기도 전에 그 꿈은 사라졌는데, 그리기에 질려버렸기 때문이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당시 우리 학교는 심하다 싶을 정도로 매주 그림 그리기 숙제와 대회가 있었다. 교내 대회에서 상이라도 타버리면(?) 다른 학교, 심지어 타 지역까지 가서 그림을 그리고 와야 했다. 남의 학교 강당에 앉아서, 때로는 벚꽃 나무 아래에 앉아서 그림을 그렸다. 돗자리 한 구석에 도화지를 놓고, 한숨을 푹 쉬며 물감이 마르기를 기다리곤 했다. 벚꽃이 흐트러지게 핀 길 아래에 앉아 그 풍경을 그린다는 게 언뜻 낭만적인 풍경으로 비칠 수 있으나 현실은 아니었다. 나는 억지로 끌려 온 학생일 뿐이었다.


 처음엔 미술 대회에 나가는 게 좋았다. 전교생 백 명이 채 안 되는 작은 학교였지만 그래도 '대표'라니, 마치 내가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평소 잠겨있는 미술실의 문을 열고 이젤을 꺼내는 게 좋았고, 미술 선생님의 차를 타고 학교를 벗어나는 게 좋았다. 수업을 재끼는 건 미술 대회를 나가는 이만 가질 수 있는 특권이었다. 오후에 대회가 있는 날도 있었지만, 이른 날은 등교하자마자 교무실로 가서 대회에 나가곤 했다. 놀러 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재미는 얼마 가지 않았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 학교는 전교생이 백 명이 채 안 되는, 한 반에 스무 명 정도가 다인 작은 학교였다. 다들 실력이 고만고만했으므로 아주 조금의 재능만 발휘해도 대표가 되는 거였다. 1년, 2년, 3년...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나는 매달, 매년 대회를 나갔다. 큰상을 받은 적은 없지만 소소하게 이 상 저 상을 타오기도 했는데, 문제는 그래서 또 나가야 했다는 거다. 주제라도 다양했더라면 달랐을까. 주제도 늘 비슷했다. 풍경, 불조심, 미래, 통일 등. 특히 지겨웠던 건 풍경 수채화로, 각종 나무를 보지도 않고 질리도록 그렸다. 








 그날도 어김없이 점심을 먹자마자 교무 선생님의 차를 타고 미술대회 장소로 갔다. 역시 벚꽃이 흐트러지게 핀 어느 절이었다. 나와 동생 학년의 누군가가(아무리 애써도 누군지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 걸로 보아 그 작은 학교에서도 마주칠 일이 없는 아이였나 보다.) 함께였다. 

 돗자리를 펴고, 이젤을 꺼내 설치하고, 설렁설렁 스케치를 하고 채색을 했다. 수십 번도 더 그린 나무와 꽃이었다. 대충 이 색을 넣고 저 색을 넣고... 옆에서 이런저런 지도를 하던 교무 선생님은 잠시  한 바퀴 돌고 올 테니 잘 그리고 있으라고 했다. 그림은 거의 마무리 단계였다. 


 갑자기 왜 그런 충동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물감이 마르기를 기다리던 나는 그림을 내지 않기로 결심했다. 눈앞의 그림은 너무 지겹고 심지어 엉망이었다. 젖은 도화지에 뭉개진 색들이 심란했다. 잠시간 고민을 한 뒤, 도화지를 들고 근처 화장실로 가 북북 찢었다. 선생님에게는 이미 작품을 냈다고 하면 될 터였다. 어차피 망친 그림, 제출을 하든 말든 달라질 게 없어 보였다. 자리로 돌아온 나는 태연하게 돗자리에 앉아 있었다.

 잠시 후, 아마도 절을 한 바퀴 돌고 온 듯한 선생님은 이미 그림을 제출했다는 말에 아쉬움을 비췄다. 완성작을 본인도 보고 싶었다는 것이다. 벌써 다 말랐냐며 아쉬워하던 선생님은 이내 가서 한 번 보자고 했다.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그 때라도 '사실은...'하고 진실을 말해야 했으나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잔뜩 긴장한 채로, 제출 장소로 향하는 선생님의 뒤를 따랐다.

 제출된 그림들을 뒤적거리던 선생님의 얼굴은 점점 굳어갔다. 잔뜩 움츠린 내 모습에서 눈치를 챈 것이다.  

 "그림 안 냈니?"

 "...... 네."

 "어디 있어?"

 "... 버렸어요."

 "... 왜?"

 "... 망쳐서요."

 그 순간에도 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차마 선생님에게 이 모든 게 너무 지겹고 짜증 났다고 말할 순 없었다. 

 그 이후 선생님이 했던 말은 대략 이랬다. 망쳤다 아니다를 왜 네가 판단하느냐. 내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거다. 너에게 무척이나 실망했다. 다시는 너를 미술 대회에 출전시키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학교로 돌아오는 내내 차 안에는 침묵만이 감돌았다. 함께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말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함께 있었던 아이 또한 한바탕 꾸지람을 들은 후였다. 나를 예뻐했던 선생님의 말은 비수가 되어 내리 꽂혔지만, 그 와중에도 나는 안도했다. 

 '이제 다시는 미술 대회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선생님의 으름장이 무색하게 나는 다음 미술 대회에도, 그 다음 대회에도, 그 다음 대회에도... 계속 나갔다. 그 일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다른데도 아니고 절에서 뻔뻔하게 거짓말을 했으니, 내가 원하는 데로 될 리가 없지.... 빠르게 순응한 나는 불조심 포스터를, 하늘은 나는 자동차를, 나무와 꽃들을 그렸다.

 성인이 된 지금 그때 선생님의 깊은 빡침이 이해가 가기도... 원망스럽기도 하다. 물론 그때 그리는 일에 질리지 않았다 한들 만화가가 됐겠냐만. 사람 일은 모르는 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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