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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순이 Sep 27. 2022

우리 엄마 아빠 이혼했거든

 "아빠 생신 선물로 뭐 사지. 고민이네..."

 "저번에 아빠 생신 선물 사지 않았어?"

 "......아, 그건 새아빠 꺼였고 이번엔 친아빠. 우리 엄마 아빠 이혼했거든."

 새로운 이를 사귈 때면, 한 번씩은 이런 류의 대화가 오간다. 물론 굳이 친하지 않은 상대에게 가정사를 상세히 밝히진 않지만, 이야기가 나온다면 피하진 않는다. 


 부모님은 내가 10대 때 이혼을 했다. 기억상 내가 열아홉일 때인데, 가물가물하다. 나도 함께 법원을 갔고, 차 안에서 기다렸다. 이혼 절차를 마치고 나서는 함께 먹었고, 엄마가 많이 울었다. 아빠는... 속상해했던 거 같다. 사실 이건 나의 기억이라기보다는, 아빠가 그랬다고 이야기를 해 준 게 기억에 남았다. 아빠는 그날 엄마가 너무 많이 울어서 어이가 없었다고 했다. 정작 울고 싶은 건 자긴데 왜 엄마가 그렇게 우는지 이해가 안 갔다고. 

 그날이 내게 특별한 날로 남아있진 않다. 흔히들 강렬하고 충격적인(?) 기억, 트라우마로 남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진 않다. (물론 이건 나의 경우다. 사람과 상황에 따라 다를 것이다.) 

 부모님이 이혼하기 훨씬 전부터 어느 정도 예감을 했다. 오히려 시기가 내 예상보다는 늦었다. 그래서 별 충격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처음 부모님이 따로 살기 시작한 건 불화 때문은 아니다. 아빠의 사업이 망하며 동생들과 나는 외할머니가 계시는 시골로 내려갔다. 엄마도 우리와 함께였는데, 아빠만 서울로 갔다. 물어본 적이 없어서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일자리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로부터 10년 넘게 아빠를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 였다. 처음엔 아빠가 보고 싶었지만, 어느 순간부턴 아니었다. 어쩌다 아빠가 오더라도 화목한 그림은 없었다. 오히려 어색하고 불편한 공기가 집안을 감쌌다.

 엄마라고 다르지 않았던 거 같다. 자연스럽게 그 끝은 합의 이혼이었다. 아빠의 사업 실패가 원인은 아니었다. 따로 살게 된 계기가 됐을 순 있으나, 두 분의 이혼은 그때가 아니었더라도 언제고 벌어질 일이었다. 


 부모님의 이혼이 내 삶에 영향을 미친 부분은, 내가 의식하는 한에는 없다. 무의식 중에, 혹은 인식하지 못하는 부분에 영향을 미쳤을 수는 있지만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는 뜻이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이혼에  동의한다. 내 기억 속 그 결혼 생활은 행복하지 않았다. 눈에 띄는 불화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늘 불편한 공기, 침묵이 있었다. 아빠가 화를 내면 엄마는 침묵했다. 물론 어렸을 때라 확실한 기억은 아니다. 그 이후 봐온 엄마와 아빠의 모습을 기반으로 기억이 재조정되었을 확률도 높다. 좋았던 순간도 있었겠지. 하지만 확실한 건 두 분이 잘 될 여지는 없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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