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에세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복순이 Sep 30. 2022

아빠, 이 두 글자가 뭐 그렇게 어렵다고.

 "이제 아버님한테도 아빠라고 부르는 건 어때?"

 남자 친구가 말했다. 몇 년 만에 집에 다녀오는 명절이었다. 

 "나도 그러고 싶지. 근데 입이 안 떨어지는 걸 어떡해."

 엄마가 재혼을 한 지 15년이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새아빠를 '삼촌'이라고 불렀다. 새아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아 끝까지 '아빠'라는 호칭을 쓰지 않는...... 건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이야기. 그저 '삼촌'으로 시작했던 호칭을 바꾸기가 쉽지 않을 뿐 별 의미는 없었다.

 핑계를 대자면, 성인이 되자마자 독립 후 상경해서 최근 몇 년을 제외하고는 1년에 한 번 집에 갈까 말까였다. 과장 조금 보태서 엄마와도 데면데면했다. 교류를 할 세가 없었고, 부를 세는 더욱 없었다. 호칭에 대해서도 당연히 별 생각이 없었다.

 엄마도 굳이 호칭을 바꾸라는 말을 하진 않았다. 다만 다른 사람들이 보는 데서는 삼촌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거듭 강조했다. 특히 엄마가 장사하는 가게나 새아빠의 지인들이 있는 자리에서 입단속을 시켰다. 새아빠의 지인들이야 재혼인 걸 알았으나, 주변 상가 사람들은 몰랐다(재혼 후 정착한 동네이기 때문이다.). 가족들끼리 있을 때야 상관없지만 남들 앞이라면 호칭을 챙겨주길 바랬다. 그게 호칭을 바꾸라는 뜻이나 마찬가지인데, 오랜 시간 속뜻을 몰랐다.  

 "할머니랑 둘이 구석에서 맨날 소곤소곤 거려, 나 다 들리게. 'ㅇㅇ이 죽으면 우린 찬밥이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ㅇㅇ이 보다 먼저 죽어야 돼.'"

 새아빠와 할머니가 우스갯소리로 그런 말을 했다고. 돌아가신 할머니와 새아빠의 사이가 제일 좋았다는 이야기를 하다 나온 말이었으나 쓰라렸다. 엄마가 없으면 우리가 새아빠나 할머니를 챙기지 않을 거라는 말이었다. 농담 식으로 말했다고 했지만 마음이 좋지 않았다. 새아빠 서운하게 하지 말라고, 엄마도 돌려 말한 거다.


 호칭이 그렇게 중요해?

 오랫동안 그렇게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내 입장이었다. 새아빠의 입장은 달랐을 것이다.

 엄마는 재혼이지만 새아빠는 초혼이었다. 둘 사이에 자식은 없다. 낳고 키우는데 고생을 할 만큼 한 엄마는 자식을 원하지 않았다. 우리 중 새아빠와 피가 섞인 가족이 없다는 사실이 중요한 건 아니다. 문제는 우리의 행동이 소외감을 줬을 때, 그게 더 크게 느껴졌을 거란 데 있다. 우리는 이미 '한 가족'으로 뭉쳐있는 상태였다.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야 했던 새아빠 입장에서는 '삼촌'이라는 호칭이 선을 긋는 거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엄마가 재혼을 앞둔 어느 날, 우연히 삼촌의 수첩을 봤다. 당시 하시던 일의 스케줄이나 거래처 연락처 등을 적으시던 수첩이었는데, 짤막한 일기도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와 이 여자의 자식들을 친자식처럼 평생 사랑하고 보살피겠다는 내용이었다. 나도 그런 마음을 가진 적이 있던가? 친아빠처럼 모시겠다고. 엄마의 남편으로서 존중했지만,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건 아닐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 휴대폰을 열어 '삼촌'이라고 저장되어 있던 이름을 아빠로 바꿨다. 친아빠와 구분하기 위해 친아빠는 친아빠 성을 붙이고, 새아빠는 새아빠의 성을 붙였다. 다음에 가게 되면... 아빠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빠, 이 두 글자가 뭐 그렇게 어렵다고. 


매거진의 이전글 누군가 읽어주길 바라는 건 아니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