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우산을 쓰다

산책과 글쓰기

by 홍시

비가 오후에 올 듯하여 우산을 들고 마을버스를 타러 갑니다. 홍시는 오늘은 버스! 하며 먼저 고르네요. 아침의 등굣길은 자동차, 버스, 전기자전거를 이용하며 뭘 타고 가고 싶은지 같이 정합니다

하지만 대부분 시간에 쫓겨 홍시를 재촉하는 것이 일상입니다. 그 일상은 나를 돌봄의 수레바퀴 속에 가두어버리지요. 초등 저학년이 지나면 혼자 통학을 시작합니다. 비교적 멀지 않은 특수학교에 등교시키지만 혼자 통학하는 일은 모래밭에서 진주를 찾는

일처럼 아득한 꿈입니다.

일상의 여유라는 말은 흩뿌리는 비같이 우산을 펴기도 걸어가기도 애매하게 만듭니다. 매번 고민을 하다 비를 맞고 걷습니다.

그럼 어느새 온갖 물방울이 나를 치고 두드립니다. 그럼 나는 너를 치고 두드립니다. 소나기처럼 서로를 세게 두드리다 또 부둥켜안기도 해요. 물줄기에게도 상처가 납니다. 세찬 소나기를 피해 멀리 갑니다. 먼 곳에서는 비가 내리지 않아요.


거제에 도착했습니다. 에어컨의 웅웅 거리는 바람소리조차 천둥같이 고요한 시간. 물 젖은 솜이불 같은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습니다. 어느새 검은 먹물 같던 하늘이 말간 얼굴을 드러냈어요. 반짝이는 초록잎이 바람에 허공을 두드립니다. 실타래같이 휘감기는 차가운 바닷물속 뭉툭한 돌들을 딛고 홀로 서봅니다. 깊이 파여있던 상처는 어느새 다 아물어있습니다.


홍시는 요즘 내 맘대로 할 거야 하기 싫어 나 마음 상했어라는 표현을 자주 합니다. 그런 요즘이 힘들기도 반갑기도 해요. 어린 시절 나는 모든 말을 몸속으로 삼키고 착한 아이라는 이름표를 크게 달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홍시와 11살의 내가 마주서바라봅니다. 깊숙이 감추어두었던 나를 큰소리로 불러봅니다. 남들에게 보일 나 말고 내가 좋아하는 나로 살아보라고. 써 볼 용기조차 없었던 하얀 공책에 용기를 내어 써봅니다.


종이에 무언가를 써봅니다.

나라는 한 단어뿐이지만 아껴 소리 내봅니다. 어느새 나라는 단어는 정말 나의 것이 되었어요.

나의 첫 번째 편지를 홍시에게 쓰고 있습니다. 밝게 웃는 모습을 보며 나도 따라 웃음 지었습니다. 내 손을 꼭 잡았어요. 나도 잡은 손을 더욱 힘껏 세게 움켜쥡니다. 이제 비 올 때 우산 쓰는 법을 생각해요. 멀리 가지 않아도 이제 세찬 빗줄기가 조금은 두렵지 않습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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