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마름의 시간

20151013 태어나다

by 홍시

" 목말라, 물 좀 줘"

"지금은 아니야. 이따 먹으라 했어"

" 아 그냥 주라고, 먹어도 된다고"

" 간호사가 뭐 이래. 말도 안 듣고 절대 못줘 “

마른 가뭄에 땅이 갈라지듯 입이 쩍쩍 갈라졌다.

물을 안주는 그가 너무 얄미웠다.

그가 한 말은 수술받은 환자들에게 내가 매일 하던 말이다 수술 후 뭘 드시면 안 돼요 물도 안 돼요. 절대 안 돼요

그 말이 이렇게 돌아올 줄 몰랐다.


2015년 10월 13일

" 전신마취 할게요" 하는 소리에 눈을 뜨니 병실이었다.

커다랗게 부풀었던 배는 가라앉았고 컴컴한 병실에는 그와 나 둘 뿐이었다.

" 홍시 머리가 꼬깔콘 같이 세모났어. 태어나자 숨을 못 쉬고 경련을 했어. 중환자실로 바로 데리고 들어갔어"

홍시는 우리 아이 태명이다

입은 마른 가뭄 같은데 눈은 터진 둑같이 주룩주룩 흘렀다.

그렇게 홍시가 태어났다.

사진으로 먼저 본 홍시는 기계들을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그 작은 몸에 주삿바늘, 뇌손상을 줄이기 위해 체온을 낮추는 저체온 요법. 그래서 파래진 몸,

저체온 기간 동안 아이를 재우기 위해 인공호흡기를 달고

3일 지나 저체온요법이 지나면 깨워야 하는데 그때 손상이 심해지거나 아이가 못 깰 수도 있다는 무시무시한 말을 들었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악착같이 힘을 짜내어 폴대를 잡고 걸었다.

그래야 회복이 빨라지고, 홍시 면회를 갈 수 있으니

식은땀이 비 오듯 멈추지 않고 흘렀다.

병실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병동 수간호사, 간호사 친구들, 후배들

다 괜찮아질 거라고, 아무 일도 아닐 거라고. 네 탓이 아니라고 말했다.

홍시는 출산일임에도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아 유도분만일을 잡았고 그날은 전문간호사 시험날을 피해서였다,

홍시가 이렇게 나오려다 힘들었는데 그깟 시험들이 다 뭐라고 지금에서는 아무런 소용없는데

출산하고도 2차 시험공부를 했다.

모든 원망이 다 나에게로 뾰족한 바늘이 되어 쏟아졌다.

공부가 뭐라고 시험이 뭐라고

홍시는 임신 계획 후 2달 만에 금방 우리에게 찾아왔다.

잘 놀고먹고,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병원 실습도 가고 입덧도 다른 것도 다 무난했다.

그냥 그런 줄 알았다.

홍시와 많은 곳을 돌아다녔고 출산 후에도 그럴 수 있을 줄 알았다

평범한 삶에 신이 질투했는지 내가 많은 욕심부린 건지 절망이 찾아와 문을 두드렸다

아이를 낳고 공항 엄마집에 2주 있다가 조리원에 갔다.

아이가 중환자실에 있었을 때에는 유축을 해서 짐들을 들고 지하철을 타고 엄마랑 면회를 갔다

택시라도 탈걸 성치 않은 몸으로 지하철을 타고 1시간을 넘게 갔다

삐뚤삐뚤 홍시라고 유축팩에 이름을 쓰고.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병원 도착해 면회증을 받고 인큐베이터 안을 한참 서서 바라보았다

중환자실에서 제일 크고 우렁차게 울던 노란 모자를 쓴 홍시를


한 달 무렵 홍시가 퇴원을 하게 되고 공항엄마네로 갔다

집에는 출근할 사람이 셋. 불면으로 잠을 이루지못하는이 하나

익숙해지지 않은 수유스케줄에 꼬박 밤을 며칠 지새웠다

수유표를 쓴다.

두 시간, 한 시간, 5분, 10분

그때는 충분히 수유를 해야 애가 불러 잠을 잔다는 것을 모르고

울음만 달래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엉망인 수유자세로 홍시 입만 막았다

잠에서 깬 그가

"젖 좀 주라고" 하는 말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지만 안 그래도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순간에 내가 젖 주는 기계인가

그에게 어떻게 그렇게 말을 하냐고 했더니 단유를 하란다

단유마사지를 알아본다

나도 그 상황에서 벗어나려 서둘러 단유마사지를 받았다

홍시는 배가 고프면 많이 크게 울었다. 나도 너무 졸리고 자고 싶은데 나보다 먼저 챙겨야 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게 받아들여지지 않아 힘들었다

일하러 가야 하니 자야 하는데 아이울음소리에도 쿨쿨 자고 있는 그가 너무 얄미워 우는 아기를 얼굴에 던져놓은 적도 있다

나의 생일날에도 아이는 배가 고파 깼고 나는 잠들지 못했다. 그 와중 루시드폴이 홈쇼핑에 직접 농사지은 귤을 팔고 있었다.

먼저 귤은 구매를 하고 이대로는 못 살겠다 싶어 아침에 깨면 보여줄 요량으로 가출 편지를 작성했다

내용은 "아이가 울고 있는데도 자고 있는 너를 보고 나는 너무 힘들다. 잠을 못 자 힘들다, 나는 나간다..."

아침에 편지를 보여주니 그는 오프를 쓰겠다고 한다. 지금에야 그러라고 할 테지만 일하러 가는 사람 못되게 붙잡는 거 같아서 출근하라고 하고 그날도 아이를 봤다.

지금까지 이런 감정은 계속된다. 남편은 돈을 벌어야 하고 일을 해야 하고, 내가 하는 일은 하찮고 안 해도 그만이라는 그런 마음.

그가 하는 일은 방해하면 안 된다는 마음

어머니는 네가 늙어서 애를 나서 힘든 거다. 나는 더 어릴 때 몇 명을 더 키웠다 하셨다

하나를 키우는 나는 너무너무 힘들고 요즘세상에는 늦게 낳은 거도 아니었다.

29살에 결혼해 31살에 출산했으니 말이다.


그는 나와 이야기하다가도 해결책을 내기 바쁘다

내가 감정을 읽어주길 먼저 바라고, 비폭력대화를 배운 뒤 노력하지만

최근에도 여성, 돌봄 문제 때문에 마음이 너무 힘든데 세상이 많이 좋아졌다며 내가 병원에 근무하던 15년 전 이야기가 아니라고 지금은 달라졌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세상은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오히려 깊숙이 들여다본 지금의 세상은 더 암울하다

나에게 미래는 있을까? 뭘 할 수 있을까?

20살 대학수업에서의 30살의 나, 40 살의 꿈꿨던 나는 어디로 가버리고

지금 40살의 나는 병원도 학교도 아닌 아무도 모르는 곳에 혼자 길을 잃어버린 아이 같다

그는 그동안 회사에서 쌓아온 경력으로 실력을 인정받는 개발자가 되었는데

10년의 병원 생활을 그만두고 흘러버린 7년의 나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홍시는 나에게 커서 뭐가 되고 싶냐고 물어본다

나는 엄마? 일부러 카페사장님? 책방주인? 노는 사람? 바꿔가며 이야기한다

홍시는 치과의사, 제빵사, 꽃집 사장님 매일매일 꿈이 늘어간다.

여성인, 뇌병변, 지적장애인인 홍시가 직업을 가지고 사람들에 기대어 사는 삶이 가능할까

홍시와 함께 동네 이곳저곳을 누빈다

집 앞 제과점 사장님, 슈퍼 사장님 반갑게 인사해 준다.

시원한 물 한 병을 사 들이킨다. 갈증이 해소될 때쯤에는 내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까.

홍시도 저만의 삶을 살고 있을까

오늘도 밀려오는 목마름을 지우려 한 발자국 또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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