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는 나와 우는 우는

영영 부러뜨렸다. 다시 붙지 않을 것이다.

by 홍시

"우는 무시무시한 악력으로 나의 어떤 부분을 영영 부러뜨렸다.

다시 붙지 않을 것이다.". p173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이라는 책을 통해 알게 된 김원영 작가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우리를 바꾸는 다섯 가지 대화 속 내가 사랑한 책이라는 프로그램으로 만남을 가졌다. 2번째 시간으로 하은빈 작가의 '우는 나와 우는 우는'이었다.

책 중 나를 관통하는 문장이었다. 나의 어떤 부분을 부러뜨린다는 것은 어떤 걸까. 나는 그런 사랑을 하고 받은 적이 있나?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랑이야기라니, 엄마와 장애인 자녀의 돌봄과 관련된 책은 그래도 많이 봤는데 연인의 이야기? 궁금했다. 사랑하지만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많은 일상 속의 제약, 사건,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것들을 두 연인은 자신들의 몸속으로 구역구역 삼킨다. 세상은 자꾸 둘에게만 삼키라 한다. 삼키다 더는 삼킬 수 없었다. 이별이었다. 사랑이 닳아진 건 아니었다. 서로 사랑한 것 밖에 없는데 많은 상처와 아픔을 주고 생채기를 낸 세상이 미웠다. 젊은 연인들이 너무 가여웠다.

어머니가 심한 복통으로 입원했다. 통증이 심해 간단한 통화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에 남편을 재촉하여 시골로 내려보냈다. 남편은 어머니의 담당의사가 있는 서울병원 응급실 앞에 어머니를 내려놓았다. 어머니가 탄 휠체어를 병원 복도 끝까지 밀고 또 밀었다. 몇 주 전 봤을 때와 달라져있는 얼굴에 마음이 요동쳐 파도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의사파업 때문에 응급실에서의 입원은 쉽지 않았다. 10년 넘게 다녔던 병원임에도 담당의사는 절대로 입원할 수 없다고 다른 병원으로 옮기라고 했다. 전원 할 병원도 알아봐 주지 않았다. 6시간 내내 응급실 침대에 누워 칼을 베는 듯한 통증에 시달리고 있는 어머니와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다. 남편과 어머니는 택시를 타고 또 다른 병원응급실로 이동하고 나는 아이 돌봄을 하러 집으로 향했다. 운전대를 잡고 운전을 하는데도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목이 바작바작 말라 물을 마셔도 목구멍으로 무엇이 흐르는지 알지 못했다. 남편과 어머니는 퇴근시간인 서울의 길 한복판을 내내 통증과 싸워가며 어느 병원 응급실 앞에 도착했다. 시골에서는 4-5일이면 나을 거라고 했는데 서울로 올려서 고생만 시킨다며 아버지의 한숨과 노함이 전화기를 울려댔다. 다행히 입원수속을 할 수 있었고 그 병원은 간호, 간병 통합병동이라 보호자가 있을 수 없었고 환자가 1층으로 내려오지 못하면 1주일에 한번 병실에서 2시간 면회가 가능했다. 시골에서 온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 혼자 누워있을 어머니를 생각하니 외딴섬에 홀로 두고 떠나온 기분이었다. 밥을 먹고 정해진 아이 수업을 가고 가게에 가서 계란을 사고 일상을 살고 있는데 살아지지가 않았다. 나의 어떤 부분이 부러져 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실에서 어머니를 마주했다. 통증으로 인해 눈도 뜨지 못하고 퉁퉁 부은 얼굴을 보니 마음 한쪽이 쓸려나갔다. 그래도 통증은 전 날 보다 가라앉아 주사 횟수도 좀 줄었다고 말하며 얼굴색은 이전처럼 돌아와 있었다. 홍시에게 할머니 병문안 가려고 하니 카드를 쓰자고 했다. "할머니 빨리 나으세요. 홍시가 많이 사랑해요. 홍시의 몸속에는 할머니의 사랑이 있어요."라고 쓰고 하트를 그리고 색칠을 하고 스티커를 붙였다. 병실에서 그 카드를 같이 보고 홍시가 내 몸속에는 할머니의 사랑이 있어요.라고 말하니 내 몸속에서의 어머니가 느껴졌다. 말을 거칠게 하고, 남의 외모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하는, 명절 차례 문제 때문에 부딪쳤던 우리지만, 15년 전 처음 만났을 때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깊고 짙은 물색의 파란 원피스를 입은 아름다운 어머니. 갖은 고명이 들어간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을 말만 하면 뚝딱 만들어주던 어머니, 복직한 나 대신 둥개둥개 아이를 업고 동네를 한참 돌아다녔던 어머니, 맛있고 비싼 와인, 바에서 먹는 참치를 좋아하던 어머니, 네 것이라며 귀여운 곰돌이양말을 꺼내시던 어머니, 내 몸속엔 어머니의 피가 흐르지 않지만 15년의 세월이 흘렀다.

주말 내내 남편과 나는 검사 결과, 의사의 말로 천당과 지옥을 오갔지만 우리는 이 순간을 걸어 나갈 것이다. 어머니도 가족들과 많은 친구의 기도와 응원으로 회복하실 거라 믿는다. 눈을 감고 있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한참 침대 옆에 앉아있었다. 따뜻한 손을 힘주어 꼭 잡았다. 어머니가 회복하시면 서울에 가고 싶어 하던 어느 성당도, 맛있는 참치도, 예쁜 신발도 사드리고 같이 낙엽 지는 길을 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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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