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바라보다
"연락하고 오지. 엄마 오늘 바쁜데"
"엄마 보고 싶어서 왔지" 하며 안기는 홍시
"요즘 어때? 일은 안 힘들고?"
"아니~ 할머니들이 나한테 손이 보들보들 복숭아 같다고 자꾸 만져보려고 하시잖아~~"
요즘 홍시는 주간보호센터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다.
" 엄마도 그랬는데!. 엄마 일할 때 손 예쁘다고 칭찬 많이 해주셨어"
홍시는 학교 졸업 후 그림책 이야기 작가, 요양보호사 두 가지 일을 하고 있다. 24시간 장애인 지원체계로 인해 장애인지원주택에서 활동지원사와 사회복지사님들 돌봄 속에 살고 있다.
먹고 싶은 반찬이 있는 날 보고 싶다는 핑계로 집에 온다.
"무슨 반찬 해줄까?"
"엄마~ 김치볶음 하고 장조림 하고~"
내가 병원 다닐 때 참새처럼 쫑알쫑알 있었던 일을 떠들고 이른 새벽 엄마가 챙겨주는 밥을 먹고 출근했듯이 홍시도 그렇다.
나는 홍시 학교 졸업 후 전공을 살려 호스피스가정간호사로 일을 하고 있다.
시계를 보니 대상자 2명과 오늘 약속이 되어있어 시간 여유가 있다.
"지금 만들어줄 테니 가져갈 수 있지? 김치볶음은 아빠가 더 잘하는데~"
"엄마 꺼도 맛있어~ 집 가서 냉장고 넣어두고 출근하려고"
이제 맛없어도 맛있다고 해주는 빈말도 할 줄 아는 어른이 되었다.
중증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로 인해 장애인의 삶은 180도 바뀌었다.
어둠 속의 깊은 호수처럼 희뿌연 안개같이 앞이 보이지 않던 10여 년 전이 무색할 만큼 발달장애인의 처우가 개선되었다. 학교에 다니며 홍시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을 찾기 위해 진로탐색 과정을 꾸준히 거쳤다. 좋아하는 그림책, 이야기를 읽고 말하는 연습을 하며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창작수업을 받았다. 홍시가 만든 이야기를 들려주면 AI가 글로 만들어 준다. 그걸 듣고 다시 다듬고 그렇게 만든 이야기들이 차곡차곡 쌓여 벌써 100개의 글이 완성되었다. 그림책으로의 출판도 앞두고 있다.
홍시의 삶이 살아지니 나의 심장도 다시 뛰기 시작했다. 하고 싶었던 일자리를 알아보고,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니 정신적으로도 고삐를 항상 쥐고 살지 않게 되었다. 커피 한잔의 여유가 진짜 생겼다.
지원 돌봄 체계가 우리의 삶을 되살리듯 장애인부모연대에서 희생과 노력으로 앞서간 어른들이 많다. 그리고 마을을 지키는 큰 나무처럼 큰 품으로 안아주는 동네어른들을 보며 우리도 그런 어른들처럼 살아가려고 노력 중이다. 홍시와 나는 동네책방에서 발달장애인, 비장애인 초등학생들과 그림책 수업을 하고 있다. 홍시만의 높낮이로 읽어주는 그림책을 학생들은 통통 튀는 탱탱볼같이 재밌어하기도 신기해하기도 한다. 그리고 나는 장애 관련 주제 책모임을 통해 의문을 만들어내고 이야기자리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나가고 있다. 10여 년 전의 불안, 외로움에 숨이 턱까지 차도 계속 달릴 수밖에 없을 때 우연처럼 글쓰기를 만났다. 갈증을 자꾸 밖에서 해소하려고 했던, 채워지지 않던 지난날. 글쓰기를 통해 진정한 나의 해갈. 오아시스는 내 안에 있음을 깨달았다. 이제는 목이 마르면 언제든지 물을 퍼올려 마실 수 있다. “물맛 참 시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