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읽고

by 홍시

- 우리는 소파도 각자의 방도 가질 수 없지요

목동으로 이사를 왔다. 방이 4개나 있는 집이다. 줄 서서 이름표를 기다리듯 안방, 아빠방, 홍시방, 창고방으로 정했다.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남편의 커다란 책상과 책장을 넣었기에 아빠방이라 불렀다.

엄마랑 이사 후 통화를 했다.

"홍시는 뭐 해?"

"아빠방에서 만화 봐"

"니 방은?"

엄마가 무심코 한말일까? 일부러 한말일까? 속상해 한말일까? 머릿속이 새하얘져 대답을 못했다.

엄마가 한 번 더 물었다. "니 방은 없어?" "내 방이 안방이지. 내 방이 제일 커"라고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목에 작은 가시하나가 돋았다. 삼킬 때마다 쿡쿡 찌른다. 아빠방을 티브이방으로 부르기로 했다. 주로 무언가를 보기 때문이다. 이름 지을 때도, 바꿀 때도 내 마음대로다. 아무도 이름 따위에 신경 쓰지 않는다. 그렇게 돋친 가시를 뽑아냈지만 무심코 뱉어버린 이름도 아빠방이다. 티브이방으로 모르는 체 정정을 한다.


-아이 여덟 명을 키운 보모는 수십만 파운드를 버는 변호사보다 세상에 더 가치 없는 사람일까요?

나는 한 명의 아이를 키우고 있다. 아이의 장애 때문에 재활치료와 등하원으로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솔직히 3교대 일, 오버타임이 많아 힘들어하던 내가 먼저 손들었다. 지금은 파트타임 근무로 용돈 정도는 벌고 있지만 그만두고 일을 하지 않을 때는 남편이 벌어오는 돈만 축내는 아무짝 쓸모없어진 빈대, 식충이였다. 남편은 걱정 없이 일할 수 있어서 고맙다고 그런 생각하지 말라고 말했지만 그와 다르게 나의 자존감은 끝이 없는 지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중이었다. 내가 그만둘 때 제일 슬퍼했던 사람은 엄마였다. 그동안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다. 00 병원 간호사다. 아프면 말해라며 어깨 으쓱하며 다녔는데 10년 근무했던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화로 전했다. 엄마의 아쉬운 표정이 들어있는 목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넘어올 때 엄마와 아빠는 하고 싶은 것을 다하라며 응원해 주고 지지해 줬는데 지난 30여 년이 흩날리는 꽃잎처럼, 빗물처럼, 눈물처럼 스쳐 지나갔다.


-여자는 단 30분도...... 자기만의 시간을 갖지 못하고, " 늘 주변의 방해를 받습니다. 그런 곳에서는 시나 희곡을 쓰는 것보다 산문이나 소설을 쓰는 편이 더 쉬웠을 것입니다. 집중력이 덜 필요했으니까요. 제인 오스틴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렇게 글을 썼습니다.

남편이 항상 앉아있는 공간이 있다. 그곳에서 유튜브를 보거나 이북, 책을 본다. 그것이 나에게는 책 읽고 있으니까 방해하지 마라고 느껴진다. 실제 남편의 스트레스 해소의 첫 번째는 무협지 읽기이다. 그래서 남편이 퇴근 후, 휴일, 시간이 날 때마다 그곳에 앉아있으면 항상 나는 다른 어딘가에 있다. 아이를 먹이거나, 씻기고, 저녁 먹은 것을 정리하고, 다음날 학교 준비물을 챙기고, 거실에 어지른 것을 치우고, 주말에는 정리정돈 되지 않은 무엇인가를 치운다. 그렇게 치우다 보면 뭐 하냐고 물어볼 법도 할 텐데 의자와 한 몸이 되어 망부석처럼 굳어있는 그에게 뾰족한 매서운 화살을 던진다. 눈초리화살을 쏘아 보내다가 이어 퉁명스러운 말이 나간다. "집 좀 치우지, 애 좀 돌보지, 나도 앉아서 책 읽고 싶다." 그럼 남편은 "미리 이야기를 해줘. 무슨 요일 몇 시에 같이하자고 말하면 내가 할게. 나도 쉬고 싶은데 너도 쉬고 싶다면서 그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같이 쉬면 되잖아" 내 머릿속에는 아이와 집안일로 가득 차있는데 남편의 머릿속에는 무얼로 가득 차 있을까? 무협지, 등산, 술?


-메리 카마이클은 여성으로서, 그러나 자신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잊은 여성으로서 글을 썼습니다.

최근에 남편과 돌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성의 돌봄, 경력단절이 나의 주된 이야기였는데 남편은 내가 직장 생활할 때와는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육아휴직을 하는 남성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래도 내가 걷는 길은 10년 전, 20년 전, 100년 전과 같다. 여성이 주양육자인 것, 돌봄의 영역에는 나이 든 여성이 많은 것, 돌봄의 가치는 하찮다고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 많은 여성들이 육아로 인해 경력단절 된 것 이런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었다. 최근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하미나, "사랑에 따라온 의혹들" 신성아 책을 읽으며 이건 내 이야기잖아 하며 잊고 살던 도플갱어를 만난 순간, 그런 도플갱어들이 곳곳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이런 이야기를 하는 나를 보고 남자와 여자를 가르지 말라며 이야기한다. 그 순간 나는 "가부장제에서 상상도 못 할 사랑과 우월함을 받고 느끼며 살아왔을 네가 뭘 알아, 그리고 나는 여성이라 여성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뭐가 문제지?"'라고 말했다. 남편은 말이 안 통한다며 방으로 들어가 버렸고 거실에 혼자 남았다. 거실 의자에 앉아 이 문장을 보는 순간 운명처럼 여성이라는 껍질을 깨고 굳게 닫힌 문을 열었다. 그 순간 나는 여성이기도 여성이 아니기도 했다. 내가 남편에게 바라는 것은 돌봄과 가사노동, 연구간호사, 취미를 가진 나를 인정하고 존중해 주고 고마워하는 것이었다. 남편은 이제 귀가시간을 알려주고, 저녁, 주말의 식사를 만들고, 토요일 11시부터 1시간 정도 청소를 하자 하면 "나는 청소기랑, 식세기 정리를 할게" 라며 하고 싶은 일을 먼저 이야기한다. 글쓰기 수업이 있다고 말하고 공유스케줄에 미리 공지하면 퇴근 시간을 조정하고 어떤 날은 아이의 돌봄으로 늦은 출근을 하기도 한다.


나는 남편이 앉아 책을 보던 의자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글을 쓴다.

비로소 나만의 방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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