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장애인부모연대 집회를 다녀오고 나서
홍시가 장애를 진단받게 된 것은 5살 무렵입니다. 가정어린이집에서 공동육아어린이집으로 옮기는 시간 동안 일어났던 일입니다. 그전까지 느린 아이에서 이제는 장애를 가진 아이로 정식 등록을 하기까지 1년여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때 홍시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줘야지 했던 마음과 세상에 나 혼자인 것 같은 땅속으로 파고드는 고달 펐던 마음이 같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 혼란스러운 상태를 같이 솔직하게 들여다봐주고 돌봐준 공동육아어린이집 담임선생님에게도 항상 그때를 생각하면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그 후 지금까지 쉬지 않고 재활치료를 하고 있고 장애아이를 키우는 현실, 그곳에서 만나는 부모들을 보며 드는 생각은 내가 비장애인으로 살아갈 때는 이런 세상을 너무 몰랐습니다. 아이 낳기 전 30여 년 살아가며 이렇게 낯선 세상은 내 주위에 어디에 존재하고 있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장애를 가진 아이는 학습권, 놀이권, 건강권 모두 자유롭지 못합니다.
집 앞의 어린이집, 학교를 갈 수가 없습니다. 특수교육지원청에서 면담, 배치해 주는 대로 심사하고 자리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집 앞에 걸어서 갈 수 있는 학교가 있어도 차를 타고 멀리 가야 하는 학교로 배정받을 수 있습니다. 집 앞에는 도움반이라고 부르는 특수반이 없는 학교도 있고 특수교사, 지원 인력의 여유가 없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부터 장애를 진단받은 어린이에게 익숙한 곳은 병원, 재활 센터입니다. 항상 나아지는 몸과 머리(인지)를 바라보며 재활치료에 더 많은 시간을 애써왔기 때문이죠. 장애를 가진 어린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기에는 현실적인 제약도 만만치 않습니다. 휠체어를 타는 뇌병변 어린이라면 휠체어가 탑승 가능한 자동차, 그렇지 않다면 양육자가 아이를 직접 들고 오르내리며 차에 탑승해야 하기 때문에 수십 년간 그 동작을 반복합니다. 양육자들은 근골격계 질환을 항상 몸에 이고 숙명처럼 살아갑니다. 기동력이 곧 아이의 발이 되어주기 때문에 그래서 장애아이의 엄마들은 대부분 운전을 잘합니다. 그리고 아이의 몸집이 커갈수록 휠체어 리프트를 설치할 수 있는 차로 개조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휠체어 리프트를 설치할 자동차의 모델은 제한되어 있고 리프트를 설치하는 데는 개인이 몇천만 원을 들여 업체에 맡겨야 합니다. 장애아이들이 어릴 때는 영유아들이 다니기 쉬운 곳 쇼핑몰, 마트가 아이들의 주 무대가 됩니다. 그곳에는 기저귀갈이를 쉽게 할 수 있고, 오르내리기 편한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몸집이 커갈수록 그곳도 여의치 않아 지게 됩니다. 기저귀갈이하는 침대는 영유아를 위한 곳이라 키와 몸무게가 커가는 어린이들은 점차 이용하기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차 트렁크와 연결된 자리를 평탄하게 해서 그 속에서 갈아입히기도 하고요. 이동하기 어려운 곳이라면 기저귀를 최대한 갈아입히지 않으려고도 합니다. 휠체어가 커질수록 엘리베이터 잡기도 어려워집니다. 노약자를 위한 엘리베이터지만 많은 사람들이 탑승하고 있는 엘리베이터에 휠체어 한대가 진입하는 일은 용기를 내지 않는다면 어려운 일입니다. 30분 동안 오르내리는 가득 찬 엘리베이터에 탑승하지 못하여 집에 못 가는 일도 허다합니다.
병원 선택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홍시도 뇌전증이 있다는 이유로 근처 소아과, 치과에서는 진료를 거부한 적이 있습니다. 기존 다니는 더 큰 병원으로 가는 게 좋겠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아이가 갑자기 열이 나고 급할 때 어느 병원을 갈 수 있는지 엄마들은 애를 태우며 발을 동동 거립니다. 대학병원에서는 진료내용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하고, 집 근처 병원은 진료 보는 더 큰 병원으로 가라며 등을 떠밀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마음을 지니고 살아가다 보니 세상에 대한 답답함만 커져갔습니다. 우연히 알게 된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소속 지역지회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는 치열하게 살아가는 양육자들이 있었습니다. 20여 년간을 투쟁 속에 살아온 그들. 많은 것을 바꿔왔고 바꿔갈 사람들. 우리라는 이름으로 모이기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장애인의 가족들이 생활고로 인해 목숨을 끊는 경우가 1년에 한건 이상은 꼭 있는 듯합니다. 그리고 부모가 죽고 난 다음의 장애인 자녀들의 삶은 너무 처참합니다. 결국 갈 곳 없는 아이들은 살아가던 삶의 터전에서 떠나 먼 지역의 시설로 보내지게 됩니다. 2025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정부의 발달장애 국가책임제 실현을 위해 오체투지와 전국집중결의대회를 열었습니다. 투쟁이라는 이름아래에 우리는 삭발, 단식, 오체투지와 같은 모습으로 부르짖고 있습니다.
2025년 12월 3일 국회의사당 앞 집회에 나갔습니다. 작년 예산 투쟁을 위해 오체투지 했던 날에도 날카로운 바람이 몸에 스치더니 오늘도 내복에 핫팩까지 중무장했음에도 영하로 내려가는 추운 날씨였습니다. 이전 장애 교육연대까지 하면 20여 년이 넘고 지금 장애인 부모연대의 모습으로는 17년째 불을 밝히는 사람들. 머리에 내려앉은 희끗한 세월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오늘도 소리 냅니다. 세상에 외칩니다. 우리 여기 있다고. 우리도 살아가고 있다고 말입니다.
"차별과 혐오 가득한 삭막한 이 세상에 더 이상 울지 않겠다 기다리지 않겠다
하루만 더 살겠다고 되뇌지도 않겠다 새카만 가슴 부여안고 거리에 나선다
내 아이를 끌어안고 참세상을 깨달았다
오늘 내가 죽더라도 너희의 내일을 위해
낡은 세상 깨부수고 새 길을 간다
삭막한 대지에 눈물 꽃 피어 새벽을 열지니
부모연대 깃발 힘차게 하나 되어 선언한다
차별 없는 대동 세상 장애 해방 새 세상
- 장애인부모연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