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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시 May 27. 2023

나만을 위한 '케렌시아'가 필요해.

시기별 나의 케렌시아 일대기

나의 첫번째 케렌시아였던 책상 밑


우리는 왜 카페로 향할까. 친구들과 대화하다가 갈 곳이 없을 때에도 혼자 있는데 갈 곳이 없을 때에도 카페로 향하게 된다. 카페는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공간,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어른이 된 이후 카페는 나에게 퀘렌시아의 역할을 하고 있다.  


케렌시아란 스트레스와 피로를 풀며 안정을 취할 수 있는 공간. 또는 그러한 공간을 찾는 경향을 말한다. 케렌시아(Querencia)는 스페인어로 애정, 애착, 귀소 본능, 귀소 본능 장소 등을 의미한다. 원래 투우 경기를 할 때 소가 투우사와의 싸움 도중 잠깐 쉬어가는 공간을 뜻하는 말이었다. 이때 투우사는 케렌시아에 있는 소를 공격할 수 없었다. 이처럼 케렌시아는 소가 잠시 쉬어가듯 인간도 현실에서 생존을 위해 일을 하고 난 후 자신만의 케렌시아에서 휴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린 시절 나에게 케렌시아는 책상 밑 공간과 붙박이장이었다. (케렌시아 점수로는 40점 정도) 내 방이 있어도 방엔 언제든 가족들 중 누군가가 들어올 수 있어 신경 쓰였다. 그래서 책상 위에 이불을 얹고, 책상 아래로 흘러내리는 이불을 의자로 받쳐 나만의 케렌시아 영역을 만들었다. 이 공간에 있는 동안엔 누군가 방에 들어오더라도, 이불이라는 장애물로 인해 나를 바로 마주하지 않아도 되는 안전한 곳이었다.


또, 책상 밑 공간을 만들기 귀찮거나 어려울 땐 붙박이장(이불장)에 들어갔다. 차곡차곡 쌓인 이불 위의 공간에 벌러덩 누워 멍하니 어둠 속을 바라보았다. 나중엔 나름의 여유를 즐기기 위해 몰래 야광별을 한쪽에 붙여두기도 했다. 붙박이장(이불장) 속은 독립적이면서도, 은밀한 나의 안식처였다.


어린 시절이 지나고, 성인이 되었을 때 한동안 나의 케렌시아는 '기숙사'였다. (케렌시아 점수로는 55점 정도) 이전까지는 가족들과 함께 살았기 때문에 집에만 가면 북적거려 방안에 방을 만드는 일을 선택해야 했지만 기숙사는 룸메이트가 없을 때면 아무런 방해 없이 있을 수 있는 곳이었다. 뭐, 함께 있어도 대화하다가도 자연스럽게 각자의 시간을 즐기니 혼자 있는 것과 큰 차이는 없었다.


하지만, 기숙사는 오랫동안 지낼 수 없었기에 내 물건보다 기본으로 제공되는 가구로 채워져 있었다. 6개월마다 떠나야 하는 처지기에 물건을 많이 두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어차피 떠나야 할 곳. 기숙사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 평온하면서도 불안정한 이유였다.


그리고 지금 나의 케렌시아는 '카페'와 '책방'이다. (케렌시아 점수로는 70점 정도) 생각이 복잡할 때, 우울할 때, 무언가 하고 싶은 데 그림이 그려지지 않을 때 향한다. 보통 극에 치달았을 때 선택한다. 부정적인 감정에 생각보다 둔해서 켜켜이 묵어 쉰내가 나는 된장이 돼야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카페의 가장 큰 장점은 누군가 만들어놓은 멋진 공간을 아지트가 필요할 때마다 잠시 빌릴 수 있다는 것이다. 소유할 수 없어도 존재할 수 있다. 5-6평짜리 방 하나에는 내 생존을 위한 물건들만 들어서도 방이 가득 차있고, 취향보다 생존으로 뒤덮인 방안에서는 미래보단 현실을 보게 된다. 하지만, 카페 안에서 만큼은 그 생존과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다. 카페에 내가 들고 갈 수 있는 물건, 내 취향의 공간, 나의 에너지원이 될 음식까지 모두 맞춤형으로 고를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나의 케렌시아를 생각했을 때, 점수를 각각 매겨보면 여전히 부족하다. 공간이 너무 좁거나, 임시적이거나, 입장료를 내거나, 시간제한이 있다. 과거의 나에게 좋았던 공간이면서도 한편으로 아쉬운 이유다. 지금 당장 나만의 케렌시아를 생활권과 분리해서 만들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언젠가 내 취향이면서도 입장료를 내지 않는 케렌시아를 만들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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