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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간의 해방, 그리고 다시 돌아온 목줄 생활

짧았던 자유를 회상하며

by 홍천밴드

내 주인은 산책은 잘 안 시켜 주지만 친절한 편이고 밥도 잘 챙겨준다. 늘 밥이 부족하지만 요즘 들어 기초대사량이 줄어서 그런지 살도 금방 찌니 적게 먹는 게 좋으니 만족한다. 그리고 옆에 내 짝꿍도 있다. 밖에서 생활해서 겨울엔 조금 춥긴 하다. 하지만 주인 양반이 개집을 기밀성 좋게 만들어 줘서 이것도 만족한다. 늘 개줄에 묶여있는 것만 빼고. 요즘은 리드 줄이라고 마당을 넓게 활동할 수 있는 것도 많이 나왔는데 주인은 이런 것은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다. 산책이라도 시켜주면 좋겠지만 일 년에 한 번 시켜줄까 말 까다. 뭐 늘 바빠 보이긴 하는데 이런 시골에서 산책할 시간도 없다고 하는 건 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우리 집 앞에는 개울도 흐른다. 가끔 오리나 새들도 오는데 너무 가보고 싶다. 여러 냄새들을 맡고 싶은데 늘 내 집 냄새를 맡는 건 고역이다.


그런데 나에게도 자유가 찾아오는 날이 왔다.


때는 바야흐로 설연휴전날이었다. 주인 양반은 명절에는 자식네 집에 갔다. 자식들은 이런 시골까지는 안 오는 모양이다. 명절 전날에는 밥을 잔뜩 주고 간다. 나눠 먹으라고 주는 것 같은데 나눠 먹는 건 쉽지 않다. 이번 명절엔 나눠먹어야지 결심을 해보지만 옆에 짝꿍이 있어 그렇게 하더라도 이 놈이 다 먹을 것 같아 벌써부터 스트레스다.


주인이 준 밥을 보고 이번엔 한 일주일은 없는 모양이다. 꽤 양이 많다. 어떻게 먹을지 고민하고 있는데 마침 개울에 오리가 보였다. 본능적으로 그쪽으로 다가가 신나게 짖었다.


그런데, 탁 소리와 함께 개줄이 끊어지면서 나에게 자유가 찾아왔다. 처음에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가보고 싶은 개울은 왠지 위험한 곳처럼 느껴졌다. 내 옆 짝꿍은 내가 부러운지 더 심하게 짖어댔다. 어서 동네를 돌아다녀봐야겠다. 동네 뒷산, 동네 집들의 냄새들이 궁금하다. 뒷산을 신나게 뛰어다니면서 냄새를 신나게 맡으며 나의 영역 표시를 마구 휘갈겼다. 이런 게 자유인가?


동네에 다섯 집이 있는데 모두 돌아다니면서 영역표시를 조금씩 했다. 끝에서 3번째 집에 가서 영역 표시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창문이 열리면서 어떤 여자가 뭐라 뭐라 소리 질렀다. 일단 피하자. 성질이 안 좋아 보이네. 다 돌아다녔더니 배가 고팠다. 집에 돌아와서 내일 먹으라고 했단 밥을 먹었다. 옆에 짝꿍은 뭔 일이냐며 나를 엄청 부러워했다. 자기도 풀어달라고 했다. 나는 그건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빨로 줄을 끊어 달라고 하는데 안 그래도 요즘 이가 안 좋아 그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대신 뭐라도 물어다 준다고 약속했다. 이번엔 아까 가본 쪽 다른 쪽으로 가본다. 이 동네는 차가 별로 안 다니지만 그래도 혹시 지나다닐 수 있으니 앞뒤로 잘 살피면서 영역표시를 했다. 사람들은 내가 한 덩치 해서 그런지 그렇게 호의적이진 않는다. 내가 나타나면 엄청 놀래면서 뒷걸음질한다. 나는 지금 당신들이 궁금하지 않는다고!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집에 돌아와서 다시 밥을 먹었다. 그렇게 돌아다니다 보니 금세 곯아떨어졌다. 그다음 날이 됐는데도 여전히 주인은 오지 않았다. 오늘은 좀 더 멀리 나가보기로 한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주인 양반이 줬던 밥은 4일째 되는 날 다 없어졌다. 배가 너무 고파서 이제는 밥을 구하려고 집을 나선다. 무서워 보이던 개울에 가서 오리라도 잡아보려고 했는데 영 사냥실력은 없다. 생각대로 되는 건 없다. 오리는 저만치 도망가있다. 이렇게 하다가는 에너지가 바닥이 날 것 같다. 그냥 쉬어야겠다. 그래서 언덕에 앉아서 주인 차를 기다려 본다. 드디어 명절이 끝났는지 차가 들어온다. 주인이 내가 풀려있어서 엄청 놀라면서 바로 목줄을 개집에 연결하고 밥을 줬다. 처음으로 내 자유를 억압했던 목줄이 좋아졌고 안도감을 느꼈다. 그렇게 나의 완전한 일탈은 막을 내렸다. 주인 양반이 뭔 바람이 들었는지 그 이후에 산책을 자주 시켜줬다. 내가 휘갈겼던 영역 냄새를 맡으니 그때의 자유로움이 떠올랐다.


지난 명절에 우리 집에 갑자기 와서 영역 표시 한 강아지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써봤다. 강아지한테 뭐라 뭐라 한 사람으 나다. 강아지 인터뷰는 해보지 못했고 나의 상상으로만 쓴 내용이라 전부 허구에 가깝다.

자유로운 강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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