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풀어두는 일 조차 노력해야 하다니
친구를 만났다. 갑자기 우울감이 밀려와 한탄했다. 사는 게 참 허무하게 느껴진다고.
지난 몇 주 좀 스트레스 받던 일이 해소되면서 살짝 아쉬우면서도 날아갈 것처럼 시원하기도 했는데, 생물학적 영향인지 그냥 정신적인 현상인지 뒤늦게 한쪽 가슴에 구멍히 휑 뚫린 것처럼 공험감이 밀려왔다.
그에 더해, 책을 읽어도 집중력이 떨어져 기분 전환이 필요한데 도서관이라는 도서관은 다 문을 닫는 바람에 방구석 책상만 붙들고 있어야 하는 처지이어서인지 하루를 흡족할 만큼 충실하게 보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닌 것도 한 몫했다.
"아니, 뭘 꼭 그렇게 (성취)해야 돼? 그냥 아무 것도 안 하고(특별한 성과 없이) 살면 안 돼?!" 친구가 버럭했다.
"아니, 성취가 아니라 그냥 하루가 가는 게 허무해." 내가 다시 설명했다.
"아, 사실 그건 나도 그래. 요즘 동 틀 때 자고 오후에 일어나는데, 눈 뜨고 조금 있으면 신랑이 퇴근해 들어와. 그럴 때마다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한 것 같아." 친구가 수긍했다.
그래도 친구는 그런 자기에게 채찍질을 휘두르지는 않는다. 심한 우울증을 앓고 난 덕인지, 자기는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편하게 살기로 했다고. (자기 자신을 이상적인 모습에 끼워맞추려고 애쓰지 않는 대신 자기가 그리는 모습에 맞지 않는 가족을 불만스러워 하지만.)
올해 내 다짐은 나 자신에게 죄책감 갖지 않기였다. 계획대로, 생각대로 실천하지 못하더라도 나 자신을 다그치지 않기로. 1/4분기가 다 되가는 지금 문득 점검해 보니, 새 해 다짐이란 걸 했었나 싶게 형편 없다. 책 쓰기 등 혼자 일을 하려면, 누구보다 독하게 마음을 먹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어영부영하는 나 자신을 매일 순간순간 혼내고 있었다. 그러니 더 너덜너덜해지고.
코끼리 다루는 방법을 알고 있지만, 그 조차 마음을 긴장하고 있어야 하는 일이다. 올해는 그것도 놓아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먹고 싶은대로 먹어 봐야 그래도 자기 최대 몸무게 이상으로 늘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듯이, 완전히 욕구대로 해봐야 내 최소 성과치 또는 내 생활의 주관적 만족도를 알 수 있을 테니까.
마음을 놓는 일 조차 마음 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나를 풀어두는 일 조차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