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적인 언어 표현의 가능성과 개인주의 문화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순우리말 주장 따위의 순혈주의를 수긍하기 어렵다. 당장 일상에서 한국어 표현의 한계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를 표현하는데 걸림돌이 되어, 내가 예민한 건지 모르겠지만, 불만과 짜증을 유발한다.
탁재훈이 여러 상품을 광고하는 걸 소재로 재미를 유발하는 유투브 '을지로 탁사장'에는 광고를 의뢰하는 다양한 업체의 마케팅, 홍보 담당자 또는 사장이 등장한다. 그걸 보고 있으면, 요즘 한국의 많은 기업이 얼마나 수직적 위계 권위주의 문화를 탈피하려고 노력하는지가 드러난다. 의뢰하는 업체 측에서 항상 두 명의 직원이 나오는데, 하는 일이나 직책 그리고 서로의 관계에 대해서 물어보면 (다날의 사장과 직원 빼고는) 과거 일반적으로 알고 있던 형태로 대답하는 경우가 없다. 가장 최근에 나온 신세계푸드 대기업조차 대리와 과장을 파트너라고 부르는 등 생소한 호칭을 사용하고, 벤처처럼 작고 젊은 기업은 심지어 각자 영어 이름을 만들어서 그 영어 이름으로 서로를 부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박명수의 유투브에서도 그런 모습이 있었다. 화장품 회사 에뛰드에서 인턴으로서 자기를 소개할 때 박명수는 폴로, 다른 직원들도 각자 다른 영어 이름으로 인사했다. 영어 회화 학원에서 쓰던 영어 이름이 회사로 탈출한 것이다.
한국식 이름이 전부 미국식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서구식 이름의 간편함이 부럽다. 처음 이런 생각을 한 게 미드 '하우스 오브 카드'를 보면서였다. 대통령이 된 케빈스페이시가 회의실 문을 열고 차례로 들어오는 각료를 맞이하는데 인사가 아주 간단하다. 호스트로서 들어오는 사람 눈을 마주치고 살짝 목을 까딱거리면서, '존' '메리' '엘런' '케빈' 이런 식으로 그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그런 모습은 그런 장면에서 뿐만 아니라 일상의 모습에서도 자주 나온다. 악수를 하면서 허리를 숙이지 않아도 각자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면서 그를 개별적으로 다 특별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걸 표현한다. '하이'는 어쩌면 모르는 사람과 인사할 때 쓰고, 서로 아는 사이에서는 상대 이름이 '하이'를 대신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식의 인사법 또한 개인주의 문화의 하나일 것이다. 아니, 개인주의 문화의 영향으로 이런 식의 인사법이 등장한 것일 수 있지만, 거꾸로 간편하고 효율적인 언어 구조 덕에 이런 문화가 가능하고 촉진되는 것일 수도 있다.
반면, 한국어 이름은 이게 안 된다. 이름만 부르는 게 익숙하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두 음절 조합이 대개 발음할 때 끊어진다. 서구식 이름과 달리 한 번에 자연스럽게 발음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거기에 아무리 어색해도 적어도 '씨'를 붙여야 조금이라도 자연스럽다. 그런데 더구나 '씨'는 또 요즘엔 낮춰 부르는 호칭이 되어버린 지경이고.
회사에서 영어 이름으로 서로를 부르는 현상을 그저 미국 문화 영향 탓으로 치부하면 정말 시대착오적인 편협일 것이다. 그건 미국 문화 때문이 아니라 한국어에 근대의 자유민주주의 체제 나아가 자본주의 체제에 어울리지 않는 면이 많기 때문인 것이다. 한국어 이름은 점점 문서에서나 존재하는 형식으로 변하고 일상에서는 영어식 이름을 사용하는 변화를 기대한다면 또 한국인으로서 자존심 없고 줏대없는 태도일까.
이름 말고도 아쉬운 표현이 또 있다. 영어의 쏘리와 익스큐즈 미..다. 쏘리는 한국말로 미안하다,인데..두 단어의 사용 범위는 전혀 다르다. 미안하다,에는 반드시 '내가 잘못했다'라는 사죄의 의미가 들어가 있다. 반면, 쏘리는 그렇지 않다. 사죄의 의미로도 쓰이지만, 상대가 어떤 슬픈 일, 힘든 일을 겪을 때 공감과 위로의 의미도 있다. 아마 후자의 의미가 더 많이 쓰이지 않을까. 미안하다,에 디폴트로 사죄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건 그렇다 치자. 그렇다고 해서 상대가 처한 힘들고 어렵고 슬플 상황에 대해서 공감하고 위로하는 일상적이고 쉬운 표현이 있는가하면, 그렇지도 않다. 유감이다? 오래 전에 한 번, 내가 유감이라고 했더니 상대방이 황당해해서 난처했던 적이 있다.
익스큐즈미..도 쏘리와 비슷한 의미지만, 훨씬 가벼운 의미다. 길에서 다른 사람과 몸이 맞닿을 것 같을 때, 양해를 구할 때 일상적으로 쓴다. 일본에 여행할 때마다 더욱 아쉬움을 갖는 건 일본어에도 정확히 이 단어에 상응하는 표현이 있다는 사실이다. 스미마셍. 너무 간단하고 편리하게 상대에게 가벼운 예의를 갖추고 내 품위를 지킬 수 있는 표현. 실례합니다,도 쓸 수 있다. 일본 여행할 때처럼, 여기서도 지하철이나 길에서 쓰는데, 실례합니다라는 단어와 태도에 둔감하기도 하거니와 사실 그 단어는 그 자체로 무거운 뉘앙스를 갖고 있다.
이름은 영어식으로 쓰고, 미안하다 대신 쏘리라고 말하고, 길에서는 스미마셍이라고 하면..안 될까?!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오염시키는 건가?! 한국인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 나 개인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일까?